그러나 교회는 가난에 시달리는 인민들을 지켜 주지 못하고, 귀족사회와 왕족사회를 지켜 주는 기구가 되었다. 교회는 오랜 시간동안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직자들은 귀족화 되고, 교회는 상류계급의 현상유지를 뒷받침하여 주는 시녀 노릇에 머물게 되었다.
빈농의 자녀들은 상류사회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길이 열려 있었다. 빈농의 자녀들 중에 탁월한 자녀들에게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여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우수한 빈농의 자녀들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관학교에 들어간 빈농의 자녀들에게 공산주의 세력이 파고들었다. 그들 속에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비밀서클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공산주의를 공부하게 된 사관생도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장교가 되어 군대 안에 비밀조직을 키워나갔다.
그들이 지휘관이 되자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을 일으키자 기독교 계통의 중고등학생들이 공산주의 혁명을 반대하는 데모를 일으켰다. 이에 혁명 세력은 군대를 동원하여 데모하고 있는 학교 전체를 둘러싸고는 전교생을 사살하였다.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요청하였으나,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혁명세력은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에티오피아 공산혁명은 온 나라에 비극을 초래하였다. 통치에 경험이 없는 공산주의 장교들인지라 온 나라를 재난으로 몰아넣었다. 에티오피아가 당하였던 이 비극에는 교회가 큰 책임이 있었다. 평소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빈민, 농민,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어야 했다.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직자들이 귀족대우를 받느라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았던 책임이다.
병든 나라, 병든 교회(2)
에티오피아의 공산혁명은 큰 재난을 가져 왔다. 국가경영에 경험이 없는 공산주의자들이 이데올로기에만 매여 국가를 통치하다보니 온 나라가 고문, 숙청, 기근, 내란 끝없는 혼란으로 나라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지금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굶주림과 질병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백성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에티오피아가 겪은 비극에는 에티오피아 교회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백성들 편에 서서 백성들을 돌보아야 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직자들이 귀족 행세를 하고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하였다.
성경의 가르침,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린 교회는 병든 교회가 된다. 병든 교회는 병든 세상을 낳는다. 병든 세상을 고치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교회가 병이 들었기에 병든 사회와 병든 교회는 공동의 운명을 맞는다. 그래서 병든 에티오피아 교회는 병든 에티오피아 사회와 함께 망하는 길로 갔다.
에티오피아 교회의 이야기는 한국교회에 큰 교훈을 준다. 지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병든 부분이 많다. 이를 고쳐 나가는 사명이 한국교회에 주어져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병이 들면 병든 세상을 고칠 수 없다. 그러기에 건강한 교회는 사회 전체의 희망이다. 국민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지켜 주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우리는 건강한 교회, 건강한 교인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병든 사회, 병든 청소년, 병든 노인, 병든 가정을 고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 그 큰일을 시작하여야 할 최선의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