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에서는 흥분하거나 감격할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네 박 서방이 깊은 산에 약초 캐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식이나, 건넛마을 사는 김 서방 딸이 시집도 가기 전에 애를 가졌다는 소문 등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 그
시대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화다닥 놀랄 일도 없었고 크게 감격할 사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많이 다릅니다. 현대인은
‘속도’(speed)에 목숨을 겁니다. Indiana 또는 Daytona ‘500’을 보셨습니까? ‘속도 경쟁’이 어찌 보면 정신 나간 짓
같습니다. 우승하면 상금은 있겠지만 그것이 인류 전체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앞으로 New York - Seoul이 두 기간이면 올 수도
있고 갈 수도 있는 날이 오기 때문에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무실 근처에 ‘one room’을 얻는 게 났지, 제트기 타고
출퇴근은 무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인생은 모두가 불꽃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농사짓던 옛 사람들은 씨 뿌리고 김매고
때가 되면 수확이 가능했지만 오늘 이 산업사회에 사는 사람은, 특히 근로자들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을 기다리는 재미에 산다고 하니 다른 ‘낙’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요? 축구시합에 미치는 것도 자기가 후원하는 구단의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한 골 놓을 때의 감격을 기대하고 시합하는
경기장을 찾아가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불꽃놀이나 다름없습니다.
“순간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가끔 듣지만 밤하늘에 ‘쾅’하고
퍼지는 불꽃이 준 감동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까? 불꽃이 터지는 순간이 얼마나 오래 기억될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FIFA
시합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어 그 유명한 trophy를 받아 번쩍 들어 올리는 그 감격도 잠깐 - 그것도 불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공연히 총질하며 사람들을 쏴 죽이는 그놈도 일종의 불꽃놀이에 미친놈이라고 여겨집니다. 옛날에 어떤 독일 기자가 서울에
와서 취재하다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었는데 어떤 한국인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황급히 가로질러 가기에 “매우 바쁜 일이 있나 보다”
하였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급히 길을 건너가서 옛날 <동아일보> 앞에 서 있던 게시판에 나붙은 그날의 <동아일보>를
읽고 있더랍니다.
너무 급하게 뛰어 다니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 무가치한 ‘불꽃놀이’에 심취하지 않기를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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