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범이네할배 2019. 5. 31. 19:41

박물군자 博物君子 온갖 사물에 정통한 사람이란 뜻.

薄氷如履(박빙여리) 엷은 얼음을 밟듯이 세상의 처세에 조심함.

璞玉渾金(박옥혼금) 璞玉은 갈고 닦지 않은 옥, 渾金은 아직 제련하지 않은 금. 곧 검소하고 질박한 사람을 칭찬하는 말

박이부정 博而不精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함. .

박장대소 拍掌大笑 손뼉을 치면서 극성스럽게 크게 웃는 웃음.

薄酒山菜(박주산채) 맛이 변변치 않은 술과 산나물. 자기가 내는 술과 안주의 겸칭.

薄志弱行(박지약행) 뜻과 행실이 약하여 어려운 일을 견디지 못함

박학다식 (博 學 多 識 )

[ 넓을 박/ 배울 학/ 많을 다/ 알 식 ] : 학문(學 問 )이 넓고 식견(識 見 )이 많음.

반계곡경(盤 磎 曲 徑 )

[ 소반 반/ 시내 계/ 굽을 곡/ 지름길 경 ] : 길을 돌아서 굽은 길로 간다는 데서, 일을 순리(順 理 ) 대로 하지 않고 옳지 않은 방법을 써서 억지로 함을 말함.

반 골 (反 骨)

反:거꾸로 반. 骨:뼈 골

뼈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말로, ①모반을 뜻함.②어떤 세력이나 권위 따위에 굽히지 아니하고 저항하는 기골, 또는 그런 사람.

삼국시대 촉나라에 위연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용맹하고 호탕하며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자기 재주를 과신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를 장수로서의 능력을 인정하여 한중의 태수로 임명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은 장비가 임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갈량도 위연이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위연의 성품과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목덜미에 이상한 뼈가 거꾸로 솟아 있는 것(反骨)을 보고 장래에 반드시 모반할 인물임을 짐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위연 역시 제갈량을 겁쟁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음을 한탄했다.

어느 날 위연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래서 행군사마 조직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젯밤에 내 머리에 뿔 두개가 거꾸로 나 있는 꿈을 꾸었소. 이것을 해몽해 주시오."

조직은 말했다.

"기린의 머리에도 뿔이 있고, 청룡의 머리에도 뿔이 나 있습니다. 변하여 하늘로 올라갈 상으로 천하에 보기 드문 길몽입니다."

조직의 해몽은 사실과 달랐다. 사실 뿔은 칼을 사용한다는 뜻이므로 꿈을 꾼 자의 목이 잘린다는 나쁜 꿈이었던 것이다.

위연은 이 꿈 해석을 믿고 모반을 꾀하려고 했다. 그런데 위연의 모반을 미리 알아본 제갈량은 자신이 주기 전에 이런 일을 대비하여 계략을 세워 두었다. 그래서 결국 위연은 군권을 장악하려다가 양의가 보낸 마대의 칼에 목이 잘렸다. 그리고 삼족이 멸해졌다.

그러나 진수는 위연의 본래 뜻이 결코 촉나라를 모반하려 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는데, 어쨌든 그 진위를 떠나 '반골'의 의미는 이런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

반근착절 (盤 根 錯 節)

盤:서릴 반. 根:뿌리 근. 錯:섞일 착. 節:마디 절

얽히고 설킨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형세

盤根(반근)은 槃根으로도 쓴다.

후한의 安帝(안제)가 13세로 즉위하자 어머니 鄧(등)태후가 섭정을 하면서 오빠 등즐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당시 강족과 흉노족의 세력이 강하여 서북 변경 지방인 幷州(병주)와 凉州(양주)는 여러 번 침략을 당했다. 등즐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양주를 포기하고 병주만 방어하자고 주장했다.

대신들은 모두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던 등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우허만이 고개를 저었다. 早失父母(조실부모)한 그는 뛰어난 인재여서 일찍이 관리로 추천 받았으나 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면서 거절하다가 할머니 死後(사후) 郎中(낭중)의 벼슬에 오른 인물이다. 우허의 반대 의견은 이랬다.

"예로부터 양주는 열사와 무장이 많이 배출되는 곳입니다. 이런 땅을 오랑캐에게 넘기다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대신들도 우허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어 등즐의 주장은 뒤엎어졌다. 스타일을 구긴 등즐은 이때부터 우허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되었다.

때마침 조가현에 수천명의 폭도가 들고 일어나 현령을 죽이고 노략질을 하자 등즐은 우허를 조가현 현령으로 임명했다. 물론 전날의 수모에 대해 앙갚음하려는 인사 조치였다. 이건 死地(사지)로 떠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우허의 친구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도 우허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얽히고 설킨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반근착절)를 만나지 않고서는 날카로운 칼도 그 값어치를 알 수 없는 법이야"

조가현에 부임한 우허는 용기와 지혜로 폭도를 평정함으로써 등즐의 기대를 보란듯이 배반했다.

半途而廢(반도이폐) 일을 도모하다가 중도에 그만둠.

反面敎師(반면교사)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음을 이르는 말.

半面之交(반면지교) 일면짜리도 못되는 교분 (겨우 알기만 함 아직 교제가 긴밀하지 못함)

반면지분 半面之分 얼굴 만은 아는 사이라 할지라도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 사이라는 뜻.

半面之識(반면지식)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 서로 알아보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사이

반목질시(反 目 嫉 視 )

[ 되돌릴 반/ 눈 목/ 미워할 질/ 볼 시 ] : 눈을 뒤집으며 질투하는 투로 봄. = 백안시(白眼視).

반문농부 (班 門 弄 斧)

[나눌 반/뭄 문/ 희롱할 농(롱)/도끼 부]

자기보다 실력이 현저히 앞선 대가 앞에서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를 한다는 뜻.

춘추시대 노나라의 이름난 丈(장)人(인) 魯(노)班(반)은 도끼를 다루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문 앞에서 도끼 솜씨를 자랑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답니다. 이 한심스러운 광경을 두고 반문농부라 일컬었다고 합니다.

반복무상 反覆無常 말과 일을 이랬다 저랬다 하여 일정한 주장이 없음을 뜻한다.

반생반사 半生半死 죽을지 살지 모를 만큼 다 죽게 된 처지를 뜻함.

반생불숙 半生不熟 반쯤은 설고 반쯤은 익었다는 말이다.

반식자우환 半識者憂患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도리어 근심거리가 된다.

반식재상(伴食宰相)

伴:짝 반. 食:밥 먹을 식. 宰:재상 재. 相:서로 상.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대신)을 비꼬아 이르는 말.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玄宗)을 도와 당대 최성기(唐代最盛期)인 '개원(開元)의 치(治)'를 연 재상은 요숭(姚崇)이었다.

개원 2년(713), 현종이 망국의 근원인 사치를 추방하기 위해 문무 백관의 호사스런 비단 관복을 정전(正殿) 앞에 쌓아 놓고 불사른 일을 비롯, 조세와 부역을 감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형벌 제도를 바로잡아 억울한 죄인을 없애고, 농병(農兵) 제도를 모병(募兵) 제도로 고친 것도 모두 요숭의 진언에 따른 개혁이었다.

이처럼 요숭은 백성들의 안녕을 꾀하는 일이 곧 나라 번영의 지름길이라 믿고 늘 이 원칙을 관철하는 데 힘썼다. 특히 정무재결(政務裁決)에 있어서의 신속 적확(迅速的確)함에는 그 어느 재상(宰相:大臣)도 요숭을 따르지 못했는데 당시 황문감(黃門監:환관 감독부서의 으뜸 벼슬)인 노회신(盧懷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회신은 청렴 결백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으나 휴가중인 요숭의 직무를 10여일간 대행할 때 요숭처럼 신속히 재결하지 못함으로 해서 정무를 크게 정체시키고 말았다. 이 때 자신이 요숭에게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한 노회신은 매사를 요숭에게 상의한 다음에야 처리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회신을 가리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伴食宰相]'이라고 냉평(冷評)했다.

반신반의 (半信半疑) 거짓인지, 참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믿음과 의심이반반 이어서 진위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

反臣逆當(반신역당) 동탁이 낙양 부호들의 금전을 약탈하기 위해 여포로 하여금 反臣逆當 깃발을 들고 다니라고 하였다.

半僧半俗(반승반속)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다. 분명하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

반의지희 斑衣之戱 지극한 효성

얼룩 반 / 옷 의 / 갈 지 / 놀 희

중국의 노래자(老萊子)란 사람이 늙은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반의(斑衣:색동저고리,

어린애들의 때때옷)를 입고 기어가는 놀이를 했다는 데서,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孝誠)을 말함.

反哺報恩(반포보은)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

반포지효 反哺之孝

反:돌이킬 반, 哺:먹일 포, 之:어조사 지, 孝:효도 효

어미새를 먹여 봉양하는 까마귀의 효의 뜻으로, 지극한 효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까마귀를 흉조(凶鳥)로 여긴다. 특히 울음 소리는 '죽음'을 象徵하기도 한다. 즉 아침에 일면 아이가, 낮에 울면 젊은이가, 오후에 울면 늙은이가 죽을 徵兆며 한밤에 울면 殺人이 날 徵兆라고 여겼다.

또 까마귀는 시체를 즐겨 먹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그 자체로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도 인도와 티베트에서는 조장(鳥葬)이 盛行하고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내다버려 까마귀에게 뜯어먹도록 하는데 그래야만 죽은이가 승천(昇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의 [本草綱目]에 의하면 새끼가 어미를 먹여 살리는데는 까마귀만한 놈도 없다. 그래서 이름도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라고 했다.

곧 까마귀의 되먹이는 習性에서 '反哺'라는 말이 나왔으며 이는 '지극한 孝道'를 의미한다. '反哺之孝'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효조(孝鳥)'이기도 한 셈이다.

" 연로한 어버이 / 진수성찬도 대접 못해 드리네 / 미물(微物)도 사람을 감동시키련만 / 숲속의 까마귀 보면 눈물 흘리네 " 朝鮮朝 光海君때의 문신(文臣) 박장원(朴長遠)이 쓴 [反哺鳥]라는 시다. 까마귀를 보고 자신의 不孝를 反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겉은 검어도 속은 흰새'다. 안팎이 온통 검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반후농다 飯後濃茶 밥을 먹은 뒤에 진하게 달인 차를 마신다는 뜻이다.

발묘조장 拔苗助長 일을 도와서 두드러지게 만들다. 일을 도와서 나쁜 방향으로 이끌다.

발본색원 (拔 本 塞 源)

拔:뺄 발. 本:근본 본. 塞:막을 색. 源:근원 원

뿌리를 뽑아 근원을 막는다. 곧 근본적으로 폐해를 일으키는 근원을 제거하다.

中國에서 天子(천자)와 諸候(제후)는 엄격한 주종관계였다. 그래서 天子로부터 땅을 하사받은 제후는 자국을 다스리면서 天子를 받들고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이같은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매년 일정한 때에 정중한 의식 절차를 가졌다. 그러다 天子의 권위가 떨어지고 제후국이 강성해지면서 天子를 업신여기는가 하면 서로 싸우고 天子의 지위를 넘보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때가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이다.

기원전 533年 春秋時代 때의 일이다. 周(주)나라와 晋(진)나라가 손바닥만한 땅을 가지고 다투었다. 이 사이에 晋나라가 병력을 동원해 周나라를 치자 景王(경왕)이 신하를 보내 점잖게 꾸짖었다.

"지금 우리와 그대는 임금과 백성의 관계로 이를 비유하자면 마치 의복과 모자, 나무의 뿌리와 물의 샘과 같다고 하겠소. 그럼에도 갓을 찢어버린다거나 관을 부수고 나무의 뿌리를 뽑아내며(拔本) 샘물의 원천을 틀어막아 버린다면(塞源) 이는 根本(근본)을 송두리째 허무는 행위로 비록 오랑캐라도 우리를 섬기겠소?" 이 말을 들은 晋의 대부 韓宣子(한선자)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땅을 되돌려주어 양국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디 拔本塞源이라면 '根本을 망치는 行爲'였는데, 지금은 폐단의 근원을 '根本的으로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발분망식 (發 憤 忘 食)

發:일어날 발. 憤:분낼 분. 忘:잊을 망. 食:밥 식

분발하여 무엇을 하는데 끼니조차 잊는다는 말로, 무엇에 열중하기를 좋아한다는 뜻

초(楚)나라 섭현(葉縣)의 장관 심제량(沈諸梁:보통 섭공이라 부름)이 하루는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물어 보았다.

"그대의 스승 공자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자로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공자의 인품이 너무도 위대하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옳은 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질문의 취지가 엉뚱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나중에 들은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은 학문에 발분하면 식사를 잊고, 도를 즐겨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그런 인물이라고(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發憤忘食'은 공자가 학문을 몹시 좋아함을 말한다. 문제를 발견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뜻을 두는 것이 發憤이다.

《史記》<孔子世家>에는 發憤忘食 앞에 "학도불권 회인부염(學道不倦 誨人部厭)", 즉 "도를 배우되 싫증내지 않고, 사람을 깨우쳐 주되 마다하지 않는다"는 두 구가 덧붙어 있다.

발산개세 [拔 山 蓋 世]

[뺄 발 / 메 산 / 덮을 개 / 인간 세]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음. 기력이 웅대함을 이르는 말.

발산개세는 <사기(史記)의(항우본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초나라를 일으킨 항우와 한나라를 일으킨 유방은 중원을 두고 다투던 당대의 최고의 장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긴 전쟁을 거치는 동안 전쟁의 승세는 유방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끝내 항우는 유방의 전술과 부족한 식량 때문에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다했다고 판단한 항우는 최후의 만찬을 벌였습니다. 술 몇 잔을 단숨에 들이킨 항우는 초라해진 자신을 바라보며 슬픈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항우는 노랫말에 아름다운 자신의 부인인 우미인과 항상 타고 다니던 준마를 넣어 불렀습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도다(拔山蓋世). 때가 이롭지 아니함이여! 준마도 달리지 않도다. 준마가 닫지 아니함이야 어찌 할 수 있지만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너를 어찌할꼬! 발산개세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고도 부릅니다.

발췌초록 (拔 萃 抄 錄) 여럿 가운데 뛰어난 것을 뽑아 간단히 적어 둔 것.

발 호(跋 扈)

跋:밑동(통발) 발. 扈:넓을 호

통발을 뛰어 넘다.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뜻함

후한은 전기에만 해도 세습 호족들이 지배할 수 있었으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외척과 환관들이 황제의 권력을 능가하는 일이 나타났다. 앞서 나타난 인물이 두씨였으며 나중의 순제 때에 나타난 인물이 양기(梁冀) 형제였다.

양기란 자는 건달이었다. 그의 누이가 황후가 되면서 그의 세도는 탄력이 붙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부친 양상(梁商)은 집금오, 양기는 양읍후에 봉해졌다. 그러나 상서령 좌웅의 간언에 의해 양기는 양읍후의 자리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나라에 변란이 일어났다. 85장(丈)이나 땅이 벌어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순제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이고(李固)가 간언했다.

"이것은 정치가 문란함을 하늘이 노여워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환관의 권한을 축소했다. 양상이 죽자 양기는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아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다. 이로부터 3년 후 서른 살의 나이로 순제가 죽자 두 살짜리 조카 유병을 즉위시켜 충제가 되었다. 그러나 충제 역시 다음 해에 죽으니 이번에는 여덟살 짜리 질제(質帝)를 즉위시켰다.

어느 때인가 문무 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어린 황제는 한 마디 뱉었다.

'이 사람은 발호장군(跋扈將軍)이로구만."

여덟 살 배기 어린 황제의 눈에도 양기의 전횡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질제는 그 마을 한 탓에 독살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발호장군 (跋 扈 將 軍) 양호가 통발을 뛰어넘어 도망친 큰 물고기처럼 방자함을 비유 (폭풍을 의미한다)

방방곡곡 (坊 坊 曲 曲) 어느 한 군데도 빼놓지 않은 모든 곳. 到處.

방약무인 (傍 若 無 人)

傍:곁 의지할 방. 若:갈을 약. 無:없을 무. 人:사람 인.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함을 이르는 말.

전국 시대도 거의 막을 내릴 무렵, 즉 진왕(秦王) 정(政:훗날의 시황제)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포학 무도한 진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 중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 출신으로 독서와 검도를 좋아했다. 위나라 원군(元君)이 써주지 않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연(燕)나라에서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를 만났다. 이 고점리는 비파의 명수였다. 술을 좋아하는 형가와 고점리는 곧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매일 저자에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감회가 복받치면 함께 엉엉 울었다.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그 후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으로 진(秦)의 시황제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죽었다.

방예원조 (方 枘 圓 鑿) 모난 자루와 둥근 구멍이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서로 맞지 아니함을 비유한 말.

方長不折(방장부절) 한창 자라는 나무는 꺾지 않는다.(잘 되어 가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

方底圓蓋(방저원개) 네모난 바닥에 둥근 뚜껑. 사물이 서로 맞지 않은 것.

方寸已亂(방촌이란) 마음이 이미 혼란스러워졌다는 말로,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는 어떠한 일도 계속할 수 없음

방휼지쟁(蚌鷸之爭) 조개와 도요새의 다툼. 서로 버티고 물러서지 않고 싸움.

배달민족 倍達民族 역사상으로 우리 겨레를 일컫는 말.

배반낭자 (杯 盤 狼 藉)

杯:잔 배. 盤:쟁반 반. 狼:이리 어지러울 낭. 藉:어지러울 자.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곧 ① 술을 마시고 한창 노는 모양. ② 술자리가 파할 무렵 또는 파한 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

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淳于 )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환담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이어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樂極 生]'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왕은 그후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순우곤을 옆에 앉혀 놓고 마셨다고 한다.

배수지진 背水之陳 (배수진 背水陣)

[등 배/물 수/강 지/진칠 진]

적과 싸울 때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친 진. 위태함을 무릅쓰고, 필사적인 단판걸이로 성패를 다투는 경우.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나라의 명장 한신은 유방의 명령에 따라 조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조나라의 장군은 재상에게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한나라 군사를 공격하자고 건의하였으나 기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재상은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한신의 군대가 성문 가까이 다다른 뒤에야 조나라 군사를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한신은 도망치는 척 강을 등지고 진을 쳤습니다. 기세를 제압하였다고 판단한 조나라 군사는 한신을 맹렬히 추격했습니다. 때를 노릴 한신은 매복시켜 둔 군사에게 조나라의 성을 점령하도록 하였고, 나머지 군사들은 배수진을 친 곳에서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결사적인 항전에 지친 조나라 군사가 견디지 못하고 성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한나라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한신의 승리로 끝난 것입니다. 이처럼 배수진이란 고사는 한신의 전술에서 유래했습니다.

背暗投明(배암투명)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으로 나오다. 그른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나아가다.

배은망덕 背恩忘德 남한테 입은 은덕을 잊고 저버림. 은혜를 모름.

배중사영(杯中蛇影)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스스로 고민함

徘徊顧眄(배회고면) 목적 없이 이리저리 거닐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百家爭鳴(백가쟁명)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일

백계무책 百計無策 아무리 생각하여도 별도리가 없다는 뜻.

백골난망 白骨難忘 백골이 되더라도 잊기 어려움을 뜻 하는 말로, 입은 은혜가 커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미

백구과극 (白 駒 過 隙)

白:흰 백. 駒:망아지 구. 過:지날 과. 隙:틈 극

흰 망아지가 틈새로 지나가는 시간. 인생의 지나감이 빠름을 나타내는 말

《史記》의 <유후세가>에는 여태후가 유후(留侯:장량)에게 탄식하며 한 말에 나온다.

장량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나라의 재상직을 맡아 왔었다. 한나라가 멸망했을 때 나는 만 금의 재산을 털어 원수인 진나라에 보복을 감행, 천하를 놀라게 한 바도 있다.

오늘날에는 이 세 치의 혀끝으로 제왕의 참모가 되었으며 1만 호의 땅을 받고 제후의 자리에도 앉아 있다. 한낱 서민으로까지 떨어져 버렸던 몸으로서 이보다 더한 영달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속세를 버리고 적송자(赤松者:전설적인 신선)처럼 살고 싶구나."

그리고는 곡식으로 만든 일체의 음식을 끊고 신선술을 배워 몸을 가볍게 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고조(劉邦)가 승하하고 태자가 뒤를 잇자, 장량을 은인으로 존대하던 여태후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제발 식사를 취하라고 몇 번이나 권했다.

"인생이라는 한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흰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白駒過隙)처럼 빠른가. 어허, 무엇을 바라기에 어찌 스스로를 괴롭히시는지 알 수 없소."

이게 장량은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식사를 취하기 시작했다.

《莊子》는 <지북유편>에서 말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흰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순간일 뿐이다."

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가. 그렇게 본다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귀야행 百鬼夜行 온갖 잡귀가 밤에 웅성댄다. 흉악한 짓을 하는 놈들이 덤벙대고 돌아다님을 가리키는 말.

百年佳期(백년가기) 젊은 남녀가 한 평생을 함께 살자는 언약.

백년가약 百年佳約 남녀가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아름다운 언약(言約).

백년대계 百年大計 먼 훗날까지 고려한 큰 계획.

百年之計(백년지계) 백 년 동안의 계획. 곧, 오랜 세월을 위한 계획.

백년하청 (百 年 河 淸 )

百:일백 백. 年:해 년. 河:물 하. 淸:맑을 청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 곧 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사물(事物)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의 비유. ② 확실하지 않은 일을 언제까지나 기다림의 비유.

춘추 시대 중반인 주(周)나라 영왕(靈王) 7년(B.C. 565), 정(鄭)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초(楚)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친 것이 화가 되어 초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곧 주신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은 초나라에 항복하자는 화친론(和親論)과 진(晉)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리며 싸우자는 주전론(主戰論)으로 나뉘었다.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대부인 자사(子駟)가 말했다.

"주나라의 시에 '황하의 흐린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진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린다는 것은 '백년하청'일 뿐이오. 그러니 일단 초나라에 복종하여 백성들의 불안을 씻어 주도록 합시다."

이리하여 정나라는 초나라와 화친을 맺고 위기를 모면했다. 원래 백년하청은 진나라의 도움 따위는 아무리 기다려도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쓰여졌다.

백년해로 (百 年 偕 老) 부부가 화합하여 함께 늙도록 살아감

백두여신 (白 頭 如 新)

白:흰 백. 頭:머리 두. 如:같을 여. 新:새로울 신

머리가 파뿌리처럼 되기까지 교제하더라도 서로 마음이 안통하면 새로 사귀기 시작한 사람과 같다

추양(鄒陽)은 전한(前漢) 초기의 사람이다. 그는 양(梁)나라에서 무고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는데, 옥중에서 양나라의 왕에게 글월을 올려 사람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했다.

형가(荊軻)는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의협심을 존경하여, 그를 위해 진(秦)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갔었다. 그러나 태자 단도 형가를 겁쟁이라고 의심한 일이 한 번 있었다.

또 변화(卞和)는 보옥의 원석을 발견하여 초나라 왕에게 바쳤는데, 왕이 신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을 기만하는 자라 하여 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발을 베는 형에 처했다.

이사(李斯)는 전력을 기울려 지나라 시황제를 위해 활동하고 진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나 마지막에 2세 황제로부터 극형에 처해졌다. 정말 백두여신(白頭如新) 말대로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제하더라도 서로 이해하지 못함은 새로 사귄 벗과 같다.

양나라 왕은 이 글을 읽고 감동하여 그를 석방했을 뿐만 아니라, 상객으로 맞이해 후히 대접했다.

백락일고 (伯 樂 一 顧)

伯:맏 백, 樂:즐거울 락, 一:한 일, 顧:돌아볼 고

백락이 말을 한번 뒤돌아다 봄, 현자에게 능력을 인정 받음

화씨벽(和氏璧)은 중국에서 국보중의 국보로 여겨 왔던 구슬이다.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주울 때는 평범한 바윗돌 같았다. 이 때문에 王에게 바쳤다가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두 발을 잘려야 했다.

세상에 千里馬는 꽤 있었다. 주목왕(周穆王)의 팔준마(八駿馬)나 項羽의 오추마(烏騶馬), 여포(呂布)의 적토마(赤兎馬)가 그것이다. 그러나 千里馬는 그것을 알아 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世上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던들 아마 수레나 끌면서 마굿간에서 一生을 마쳤을런지도 모른다.

주(周)나라의 백락(伯樂-본명 孫陽)은 말을 알아 보는 名手였다. 하루는 길을 가다 소금 수레를 끌고 가는 말을 만났다. 伯樂은 통탄했다. 용장을 태우고 천하를 누벼도 시원치 않을 千里馬가 일개 필부(匹夫)의 수레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참고:기복염거(驥服鹽車)]

어느날 名馬를 가진 사람이 伯樂을 찾아왔다. 팔려고 내놓았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다면서 감정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伯樂이 말을 저자거리로 끌고 나와 찬찬히 뜯어 보았다. 과연 名馬가 틀림 없었다.

날이 저물어 돌아오면서도 몇 번이고 뒤돌아 보았다. 그러자 그 말의 값은 순식간에 열 배로 뛰어 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伯樂이 있고 나서 千里馬가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영웅호걸을 千里馬에, 명군현상(名君賢相)을 伯樂에 비유하곤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이재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주]백락 : 본명은 손양(孫陽). 백락은 원래 天馬를 맡은 별의 이름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손양이 말을 잘 감정하여 백락이라고 하였다

백락자 (伯 樂 子)

伯:맏 백. 樂:즐거울 락. 子:아들 자

백락의 아들이란 말로, 어리석은 자의 비유

주(周)나라 때 백락(伯樂)이라는 사람은 말(馬)의 감정을 잘 하였다.

어느 날 백락이 아들을 앞에 앉혀 놓고 말을 감정하는 법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불쑥 나온 이마에 툭 튀어 나온 눈, 누룩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말발굽이어야 한다.."

백락의 아들은 말을 보는 법을 배운 후 그 방법을 손에 적어 가지고 명마를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백락의 아들은 커다란 두꺼비를 잡아 들고 와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명마 한 마리를 구했습니다.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명마의 관상과 같습니다. 불쑥 나온 이마에 툭 튀어 나온 눈, 그런데 말발굽만은 누룩 쌓아놓은 것 같지 않습니다."

백락은 두꺼비를 명마라며 가져온 아들을 보자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었다. 동시에 그 어리석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이 말이 잘 뛰겠다만 수레는 끌지 못하겠구나."

백룡어복 (白 龍 魚 服)

白:흰 백. 龍:용 룡. 魚:물고기 어. 服:입을 복

흰 용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는 말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민의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미행하는 것을 비유함.

오나라 왕이 백성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했다. 이때 오자서가 간언하여 말했다.

"마셔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흰 용이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와 물고기로 변한 일이 있습니다. 어부 예저는 그 눈을 쏘아 맞추었습니다. 흰 용은 하늘 위로 올라가 하느님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에 하느님은, '그 당시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흰 용은 대답하기를 '저는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가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말하기를, '물고기는 진실로 사람들이 쏘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예저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무릇 흰 용은 하느님의 귀한 가축이고, 예저는 송나라의 미천한 신하입니다. 흰 용이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면 예저 또한 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만승(萬乘)의 지위를 버리고 포의(布衣)의 선비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하십니까? 신은 예저의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왕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또한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장자> "잡편" '외물'에도 있다.

송나라의 원군이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머리를 풀어 해친 한 남자가 쪽문으로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로의 못에서 왔습니다. 청강의 사자로 하백에게 가다가 어부 예저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원군이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이 꿈을 점치게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건 신귀입니다."

그래서 원군이 어부 중에 예저라는 자가 있는지 물으니 과연 있었다. 원군은 예저를 조정으로 불러 들여 물었다.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

"흰 거북이가 제 그물에 걸렸습니다. 크기가 사방 다섯 자나 됩니다."

원군이 그 거북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어부로부터 받은 거북을 죽여야 할 지 살려 주어야 할 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거북을 가르고 귀갑을 지져 72 번이나 점을 치니 길흉이 모두 들어맞았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귀는 원군의 꿈에 나타날 수 있었지만, 예저의 그물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지력은 72 번의 점에 어긋남이 없을 정도였지만 창자가 도려내지는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대 우리나라 임금들도 화려한 곤룡포 대신 평민들의 옷을 갈아 입고 미행을 했었다. 임금의 미행은 무엇보다도 민심을 살펴 정사에 반영하려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보고하는 것만으로써는 백성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리부미 (百 里 負 米)

百:일백 백. 里:이 리. 負:질 부. 米:쌀 미

백 리나 떨어진 먼 곳으로 쌀을 진다는 말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봉양을 잘하는 것을 뜻함.

춘추시대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나있었다.

하루는 자로가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거운 물건을 지고 먼 곳으로 갈 때에는 땅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쉬게 되고, 집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모실 때에는 봉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관리가 됩니다. 옛날 제가 두 부모님을 섬길 때는 항상 명아주잎과 콩잎과 같은 나쁜 음식을 대접 하여, 직접 쌀을 백 리 밖에서 져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남쪽의 초나라에서 관리가 되었을 때는 수레는 백 대나 되었고, 창고에 쌓아 놓은 쌀이 만 종이나 되었으며, 깔개를 포개 놓고 앉아 솥을 늘어놓고 먹었는데, 명아주잎과 콩잎을 먹고 직접 쌀을 지고 가기를 원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마른 물고기를 묶어 놓은 것은 어찌하여 썩지 않습니까? 두 양친의 수명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간일 뿐입니다."

공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자로가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살아 계실 때는 힘을 다해 섬기고, 죽은 후에는 그리움을 다하는구나."

백리지재 (百 里 之 才)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 노숙이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하면서 방통을 이에 비유하였다.

백마비마 (白 馬 非 馬)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말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백면서생(白 面 書 生)

白:흰 백. 面:얼굴 면. 書:글 서. 生:날 생.

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젊은이를 이르는 말.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424∼453) 때 오(吳:절강성) 땅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를 닦아 그 기량이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317∼420)의 유신(遺臣) 손은(孫恩)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일단(一團)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453∼464) 때는 도읍인 건강(建康:南京)을 지키는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 후 또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北魏:386∼534)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먼저 심경지는 북벌(北伐)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밭갈이는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 출병을 '백면서생'과 논의하려 하시나이까?"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백문불여일견(百 聞 不 如 一 見)

百:일백 백. 聞:들을 문. 不:아니 불. 如:같을 여. 一:한 일. 見:볼 견.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

전한(前漢) 9대 황제인 선제(宣帝:B.C. 74∼49)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이 쳐들어왔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인 병길(丙吉)에게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을 찾아가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 보라고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일찍이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휘하 장수로 흉노 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100여 명의 군사로써 혈전(血戰) 끝에 포위망을 뚫고 전군을 구출했다. 그 공으로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그는 이때부터 오랑캐 토벌전의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조충국을 찾아온 병길은 이렇게 말했다.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랍시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디 노신(老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또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軍事)란 실지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金城郡:감숙성 난주(甘肅省蘭州) 부근]으로 보내 주시 오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다음에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했다. 그 후 이 계책이 채택됨으로써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주] 둔전병 : 변경(邊境)에 주둔(駐屯) 토착(土着)시켜 평상시에는 농사도 짓게 하던 군사.

백 미 (白 眉)

白:흰 백. 眉:눈썹 미.

흰 눈썹[白眉]을 가진 사람이 가장 뛰어났다는 뜻. 곧 ①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②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일컫는 말.

천하가 위(魏) 오(吳) 촉(蜀)의 세 나라로 나뉘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삼국 시대의 일이다. 유비(劉備)의 촉나라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마량(馬良)이라는 이름난 참모[후에 시중(侍中)이 됨]가 있었다. 그는 제갈량[諸葛亮:자는 공명(孔明)]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사이로, 한번은 세 치[三寸]의 혀 하나로 남쪽 변방의 흉포한 오랑캐의 한 무리를 모두 부하로 삼는데 성공했을 정도로 덕성(德性)과 지모(智謀)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마량은 형제가 다섯 명이었는데, 다섯 형제가 모두 자(字)에 '常(상)'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馬氏五常'이라 불렀다. 오형제 중 맏이인 마량은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백미(白眉)'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들 오형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유명한 마속을 포함하여 모두 재주가 비범했는데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 씨(馬氏)네 오형제 중에서 '백미'가 가장 뛰어났다며 마량을 특히 칭송해 마지않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 이 때부터 '백미'란 같은 부류의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백발백중 (百 發 百 中)

[일백 백/ 펼 발/ 일백 백/ 가운데 중]

‘백 번을 쏘면 백 번 맞춘다.’ 라는 뜻으로, 계획이나 예상한 일이 딱 들어맞거나 하는 일마다 실패 없이 잘됨을 이르는 말.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때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나라 왕은 진나라 장수 위기가 쏜 화살에 한쪽 눈을 잃어 위기에 대한 원한이 아주 컸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장수중 명궁인 양유기를 부러 두 대의 화살을 주며 복수를 부탁하였습니다. 얼마 후 전투에 참가한 양유기는 화살 한 대로 위기의 말을 쏘아 죽이고 , 나머지 한 대는 왕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무렵, 반당이라고 하는 사람도 명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양유기기가 반당을 찾아가 승부를 정하였습니다.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출 수 있는 실력이라면 명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 한데 과연 당신이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

양유기의 말에 기분이 상한 반당은 버드나무 잎 세 개를 골라 양유기에게 백 보 떨어진 곳에서 차례대로 맞춰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양유기가 힘차게 세 개의 화살을 날렸고 모두 잎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양유기의 활 솜씨를 가리켜 “백발백중”이라고 하며 칭찬하였습니다. [출전 사기(史 記 )

백발삼천장 (白 髮 三 千 丈)

白:흰 백. 髮:터럭 발. 三:석 삼. 千:일천 천. 丈:길 장.

흰 머리털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뜻으로, 중국 문학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

'백발 삼천장'이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추포가(秋浦歌)〉17수 중 한 수인 오언절구(五言絶句)에서 나온 말이다.

흰 머리털이 (자라 어느새) 삼천 길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근심으로 인하여 이처럼 길어졌네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알지 못해라 밝은 거울 속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이 시는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추포(秋浦:안휘성 내)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서 지은 연작(連作) 중 한 수이다. 이 유명한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표현은 중국 문항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인데 요즈음에는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백발백중 (百 發 百 中) 총이나 활을 쏘면 어김없이 맞음. 또는, 예상한 일이 꼭 들어맞음.

白雪亂舞(백설난무) 휜 눈이 어지러이 춤을 춤. 눈이 흩날리는 모양의 비유.

百世之師(백세지사) 백세후에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큼 훌륭한 사람을 일컬음.

白手乾達(백수건달)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白首北面(백수북면) 재주와 덕이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스승 앞에서 北向하고 앉아 가르침을 바란다는 뜻.

백아절현 (伯 牙 絶 絃)

[伯:맏 백. 牙:어금니 아. 絶:끊을 절. 絃:악기 줄 현]

백아가 거문고의 줄을 끊었다는 뜻. 곧 ①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知己]의 죽음을 이르는 말. ② 친한 벗을 잃은 슬픔.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친구 종자기(鐘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그려내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율이고 있던 종자기의 입에서는 탄성이 연발한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솟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군."

"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군."

두 사람은 그토록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으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켜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백안시 (白 眼 視)

白:흰 백. 眼:눈 안. 視:볼 시.

흰 눈으로 보다는 뜻으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

위진 시대(魏晉時代 : 3세기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노장(老莊)의 철학에 심취하여 대나무숲 속에 은거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에 완적(阮籍)이 있었다. 완적은 여러 가지 책들을 널리 읽고, 술을 좋아했고, 거문고를 교묘하게 탈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예의 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때 조문객들이 와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침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물끄러미 손님들을 응시하고, 조문객에 대한 예절인 곡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기쁨과 성냄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지만, 검은 눈동자와 흰자위로 외면하였다. 통속적인 예절을 지키는 선비를 만나면 흰 눈으로 흘겨보았다.

어느 날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의 형 혜희가 완적이 좋아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이 흰 눈으로 흘겨보며 업신여기고 상대해 주지 않자 혜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도망가듯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들고 찾아가자, 완적은 크게 기뻐하며 검은 눈동자를 보이면서(靑眼視) 환영했다.

이처럼 상대가 친구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청안시(靑眼視)하지 않고 '백안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를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백안(白眼)이란 눈의 흰 부분을 말하며, '사람을 싫어하여 흘겨보는 것' 또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백안시(白眼視)라고 말하게 되었다.

백약지장 (百 藥 之 長) 백 가지 약 중에 으뜸이라는 뜻으로, 술을 좋게 이르는 말.

백어입주 (白 魚 入 舟) 백어가 배로 뛰어들어 은나라가 항복한다는 조짐을 보였다는 데서 온 말로 적이 항복함을 비유

백왕흑귀 (白 往 黑 歸)

白:흰 백. 往:갈 왕. 黑:검을 흑. 歸:돌아올 귀

겉이 변한 것을 보고 속까지 변했을 거라고 오판하는 것. 양포지구(楊布之狗)라고도 함.

한비자(韓非子)가 <說林 下>에 등장시킨 양주(楊朱)라는 이는 전국시대 중엽의 사상가인 묵자(墨子)와 대조적인 사상을 주창했다. 묵자가 겸애(謙愛)를 주장한 반면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내세웠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말했다.

"양주란 자는 부모도 없고 오직 나 뿐이다. 그리고 묵자는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하니 군주가 없다. 아비가 없고 군주가 없으니 이는 들짐승이나 길짐승과 무에 다를 것이 있는가."

맹자의 혹평대로 세상 사람들은 양주를 지독한 낙천주의자로 생각했다. 그것은 도가(道家)의 사상이 무위 이화에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점 때문에 한비자는 양포(楊布)의 개를 우화적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어느 날 양주의 동생 양포가 흰 옷을 입고 외출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올 때 비가 너무 와서 하얀 옷은 뗏국물이 자르르 흘러 검은 빛을 띄게 되었다. 그러자 집에서 기르던 개가 그인 줄도 모르고 막 짖어 댔다. 양포는 화를 내며 개를 때릴려고 했다. 그러자 양주가 그를 말리며 말했다.

"여보게, 때리면 안 되네. 자네도 마찬가질세. 만약에 이 개가 나갈 때 희었다가 돌아올 때 검어졌다면, 자넨들 수상히 여기지 않겠는가?"

백운고비 (白 雲 孤 飛) 멀리 떠나는 자식이 어버이를 그리워한다.

백의종군 (白 衣 從 軍) 벼슬이 없는 사람이 군대를 따라 전쟁터로 나감.

백일몽 (白 日 夢) 대낮에 꿈을 꾼다. 허황된 공상을 비유한 말.

백의천사 (白 衣 天 使) 흰옷을 입은 간호사를 일컫는 말.

백전노장(百 戰 老 將 ) : 아주 경험이 많아 노련한.

많은 싸움을 치른 늙은 장수. 모든 일에 노련한 사람.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사람을 뜻한다.

백전백승 (百 戰 百 勝)

百:일백 백. 戰:싸울 전. 勝:이길 승.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주] '백(百)'이란 단순한 숫자상의 '100'이 아니라 '삼(三)' '구(九)' '천(千)' '만(萬)'등과 마찬가지로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것임

백전불태(百 戰 不 殆) 백번 싸워서 백번 이김

백절불굴 (百 折 不 屈)

[ 일백 백/ 꺽을 절/ 아니 불/ 굽을 굴 ] :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는다는 데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을 비유함.

백절불요 (百折不撓)

[일백 백/ 꺾을 절/ 이닐 불/ 어지러울 요(뇨)]

어떠한 난관에도 결코 굽히지 않음, 백 번 꺾어도 굽히지 않음

중국 한나라 때 청렴하고 악을 미워하는 교현이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현의 아들이 강도들에게 붙잡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관병들은 교현의 아들이 다칠까 봐 강도들에게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교현은 “강도는 법을 무시하고 날뛰는 무리들인데, 어찌 내 아들을 위하느라 그들을 놓아준다는 말인가” 라고하여 강도들을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강도들은 모두 붙잡혔지만 교현의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몸을 던져 악에 대항하는 교현을 존경했습니다. 나중에 채옹이라는 사람이 교현을 “백절불요 라고 칭송하는 비문을 적었다고 합니다. 백절불요와 같은 의미의 고사성어 백절불굴(百 折 不 屈) 이 있습니다.

백주지조(栢舟之操) 共伯의 아내가 共姜이 栢舟라는 시를 지어 맹세하고 절개를 지킨 故事.(아내가 절개를 지키는 것)

伯仲叔季(백중숙계) 佰은 맏이, 仲은 둘째, 淑은 셋째, 季는 막내라는 뜻 네 형제의 차례를 일컫는 말.

백중지간 (伯 仲 之 間) : 우열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맞먹는 두 사람을 말한다.

백중지세 (伯 仲 之 勢)

伯:맏 백, 仲:버금 중, 之:어조사 지, 勢:형세 세

세력이 엇비슷함.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듦

옛날에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관례(冠禮)를 行하고 '자(字)'를 내렸다. 두세 자로 만들었는데 그 중 한 字는 형제간의 서열(序列)을 딴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백·중··숙·계(伯仲叔季)가 그것으로 첫째가 伯, 둘째가 仲, 셋째가 叔, 넷째가 季였다.

그래서 字를 보면 그 사람의 항렬(行列)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자(孔子)는 중니(仲尼)이므로 둘째, 충절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각각 맏이와 셋째임을 알 수 있다. 후에는 넷까지 구별하기 번잡스러워 그냥 큰 사람을 伯, 작은 사람을 叔이라고만 불렀다. 그래서 백부(伯父)는 큰아버지, 숙부(叔父)는 작은 아버지를 뜻한다.

백중(伯仲)이라면 첫째와 둘째를 가리킨다. 형제가 많다 보면 兄弟간에 나이 차이도 크게 되지만 아무래도 첫째와 둘째는 엇비슷한 경우가 많다. 또 나이 50이 돼 지천명(知天命)의 경지(境地)에 이르면 兄弟간의 구별은 더욱 애매(曖昧)하게 된다. 그래서 난형난제(難兄難弟)란 말도 나오게 되었다. 따라서 伯仲 또는 백중세(伯仲勢)라면 맏이와 둘째의 구별이 거의 없는 것과 같이 세력이 엇비슷한 경우를 가리킨다.

백척간두 (百 尺 竿 頭 )

[ 일백 백/ 자 척/ 장대 간/ 머리 두 ] : 일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地 境) 에 이름을 일컬음.

백팔번뇌 百八煩惱 불교에서는 인간에게는 108가지 번뇌가 있다고 한다.

百害無益(백해무익) 조금도 이로운 것이 없고 해롭기만 하다.

百花爛漫(백화난만) 온갖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답게 흐드러짐

百花齊放(백화제방) 온갖 꽃이 일시에 핀다는 뜻으로, 갖가지 학문이나 예술이 함께 성함의 비유.

번문욕례 繁文縟禮 번거롭게 형식만 차리어 몹시 까다로운 예문.

벌가벌가기칙벌원 伐柯伐柯其則不遠 가(柯)는 도끼자루, 벌(伐)은 벤다는 뜻, 其則不遠)은 그 법이 멀지 않다는 말이다.

伐齊爲名(벌제위명) 어떤 일을 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다른 일을 함.

법구폐생 法久弊生 좋은 법도 오래 되면 폐해가 생김.

변화무상 (變 化 無 雙) 세상이 변하여 가는 것이 더할 수 없이 많고 심하다.

별무장물 (別 無 長 物)

別:따로 별. 無:없을 무. 長:남을 장. 物:물건 물

필요 이외의 것을 일절 갖지 않는다

동진(東晉) 시대에 왕공(王恭)이라는 유명한 인격자가 있었다. 절조가 높은데다 청렴 공겸하므로 세간의 칭송을 한몸에 모으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왕공은 틀림없이 큰일을 해낼 것이다."

뒤에 왕공은 아버지를 따라 태어난 곳의 회계(會稽:저장 성)에서 수도 건강(建康:지금 난징)으로 갔다. 거기서도 그는 도시의 화려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연전히 간소하고 질박한 생활을 계속했다.

하루는 동족인 왕침(王枕)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대자리 위에서 환담했는데, 그 대자리가 마음에 든 왕침은 그것은 분명 대(竹)의 명산지인 회계에서 가져온 것이니, 여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왕공에게 염치없이 달라고 했다.

왕공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대자리를 왕침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변변찮은 풀로 엮은 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생활했다. 여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왕침이 깜짝 놀라 도로 줄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왕공이 대답했다.

"나에게는 별무장물(別無長物)입니다."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욕심이 없는 태도에 왕침은 새삼 감동되어 왕공에 대한 존경심을 새로이 하고, 오래오래 친교를 맺었다.

병가상사 (兵 家 常 事) 군대에서 늘 있는 일의 뜻. 한번 실수는 兵家之常事라는 말로 전쟁의 지고 이김은 늘 있음

병귀신속 (兵 貴 神 速) 병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신속함이 제일이라는 뜻. 병법에 나와 있는 구절

병문졸속 (兵 聞 拙 速) 用兵할 때는 졸렬하여도 빠른 것이 좋다는 뜻이다

병불염사 (兵 不 厭 詐) 전쟁에서는 모든 방법으로 적군을 속여서라도 적을 이겨야 함

병사지야 (兵 死 之 也) 전쟁이란 사람이 죽는 것이라는 말로, 전쟁은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해야 된다는 뜻이다

병위사지(兵 爲 死 地)

兵:군사 병. 爲:할 위. 死:죽을 사. 地:땅 지

전쟁에 목숨을 건다. 일을 할 때엔 온 힘을 기울인다.

이 말은 조(趙)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사(趙奢)라는 이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병(兵)은 사지(死地)다'라는 것은, 전쟁은 목숨을 던질 각오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는 본시 시골에서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말단 관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워낙 청렴결백하고 공평무사하여 평원군의 귀에까지 들어가데 되었다. 그는 발탁된 후에도 온 힘을 경주하여 공은 세워 마복군(馬服君)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병략가로서도 이름이 높은 그에겐 조괄(趙括)이란 아들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병법을 공부했는데 천하의 병략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부친과 병략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데 오히려 조사가 쩔쩔 맬 정도로 그의 식견은 탁월했다. 우쭐해 하는 아들을 보며 조사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묵묵부답인 남편을 바라보는 그의 아내는 아들의 청산유수 같은 달변에 몹시 만족해하면서도 남편의 행동에 섭섭해하였다.

"여보, 그럴 수가 있어요. 이렇게 똑똑한 아들에게 칭찬 한마디쯤 해 줄 수 있잖아요."

답변을 떨구는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 냉담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병사위지(兵爲死地)'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말이오. 그러나 우리 괄이란 놈은 말뿐이오. 이론만 번지르르하여 실속이 없어요. 만약 저 녀석이 대장이 되어 싸움에 나선다면 일을 크게 그르칠 것이오."

안타까워하는 아내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고 나서 조사는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훗날 효성왕 7년에 조나라에 문제가 생겼다. 상당(上黨)을 합병했던 일이 화근이 되어 진나라와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에는 명장 조사는 이미 타계하고 없었다. 진나라의 모략에 걸려 명장 조사의 아들 조괄이 나섰다. 그는 부친의 우려대로 입술만 달싹이는 탁상공론가였다. 그는 섣불리 공격을 개시하여 단숨에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잃고 말았다.

病入膏肓(병입고황) 몸 깊은 곳에 병이 들었으니 침이 미치지 못하므로, 병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병종구입화종구출 病從口入禍從口出 병은 입을 따라 들어오고 화는 입을 따라 나가는 것이다.

竝州故鄕(병주고향) 당나라 가도가 병주에 살다가 떠날 때 한 말로 오래 살아서 정든 타향을 이름

輔國安民(보국안민) 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보보고승 (步 步 高 升) : 한 단계씩 승진 하는뜻

報讐雪恨(보수설한) 원수를 갚고 한을 씻는다는 뜻.

駂羽之嘆(보우지탄) 너새 깃의 탄식이라는 말로, 신하나 백성이 전역에 종사하여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함

報怨以德(보원이덕) 원수 갚기를 덕으로써 하라.

報以國士(보이국사) 남을 국사로 대우하면 자기도 국사로서 대접을 받는다.

복과재생 (福 過 災 生) 복이 너무 지나치면 도리어 재앙이 생기는 법이다.

伏龍鳳雛(복룡봉추)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으로, 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를 이르는 말

복마전 (伏 魔 殿)

伏:엎드릴 복. 魔 :마귀 마. 殿:전각 전

악마가 숨어 있는 전당. 또는 나쁜 일이나 음모 등이 끊임없이 꾸며지고 있는 곳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전염병이 유행하자 이를 걱정한 인종은 장시 성 신주(信州)의 용호산(龍虎山)에 사는 장진인(張眞人)이라는 도사에게 한시바삐 상경해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기도를 시키기로 했다. 그 사자로 전의 태위(太尉) 홍신(洪信)을 임명했다.

홍신이 용호산에 도착하자 마침 장진인은 외출중이었다. 그는 도관(道觀:도교의 절과 같은 곳) 여기저기를 구경하던 중,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곳 문 위에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문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매달려 있었으며, 문짝의 틈새에는 10여장의 봉함지가 붙어 있었다. 홍태위가 이상히 여겨 물어 보았다.

"이건 무슨 신전이오?" 안내를 해주던 도사가 말했다.

"그 옛날에 노조천사(老祖天師)님이 마왕을 진압하신 어전입니다. 함부로 열어서 마왕을 달아나게 하면 큰일나니 결코 열면 안 된다고 금지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홍 태위는 호기심이 생겨, 꺼림직해 하는 도사를 위협해 억지로 문을 열게 했다. 들어가 보니 안은 텅 비어 있고, 한복판에 돌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돌비 뒷면에 "홍을 만나 연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홍 태위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봐라, 몇백 년 전부터 내가 여기 와서 이걸 연다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생각건대 마와은 이 돌에 있는 모양이다. 어서 마왕을 파내라."

도사는 할 수 없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 돌을 파내었다. 1미터쯤 팠을 무렵 2미터 사방쯤의 돌 뚜껑이 눈에 띄었다. 홍 태위의 재촉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 뚜껑을 열자, 속에서 굉장한 소리와 함께 한줄기의 검은 연기가 솟아올라, 천장을 뚫고 하늘로 뿜어 오르는가 싶더니, 몇백 줄기의 금빛으로 되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때 장진인이 돌아왔다. 그는 넋빠진 사람처럼 멍청하게 홍 태위에게 말했다.

"당치않은 짓을 하셨군요. 거기에는 36의 천강성, 72의 지살성, 도합 108의 마왕을 가두어 둔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 놓았으니, 마왕들은 머지않아 천하에 소란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습니다."

홍 태위는 겁에 질려 허둥지둥 도성으로 돌아왔으나, 마왕을 풀어 놓은 일은 단단히 입막음해 놓았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철종(哲宗) 때에 장진인이 염려했던 대로 108의 마왕은 송강(宋江) 등 108명의 사나이로 환생하여, 운명의 실에 의해 양산박(梁山泊)으로 끌어들여져 《수호전(水滸傳)》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복배지수 (覆 盃 之 水) 엎지른 물이란 뜻이니 이미 저지른 일은 다시 수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복소무완란 (覆 巢 無 完 卵)

覆:엎어질 복. 巢:새집 소. 無:없을 무. 完:완전할 완. 卵:알 란

엎어진 새집 밑에는 온전한 알이 없다는 말로, 근본이 썩으면 그 지엽도 따라서 썩는다는 말임.

후한시대 공융은 건안칠자의 한사람으로 헌제 때 북해의 상이 되어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가르친 학자이다. 그는 무너져가는 한나라 왕실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 조조에게 간언을 하다가 미움을 사서 피살된 인물 이다.

공융이 일찍이 오나라의 손권에게 체포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공융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아홉 살이고, 작은 아들은 여덟 살이었다. 손권의 부하들이 공융을 체포하러 왔을 때, 두 아들은 마침 장기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하던 놀이를 계속하였다. 공융은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벌은 나 혼자 몸에서 끝나게 해주시오. 두 아이는 다치지 않게 해 주시오."

이때 아들이 공융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어찌 엎어진 새집 밑에 온전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두 아들 또한 체포되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새집이 땅바닥으로 엎어진다면, 그 속에 있던 알은 깨지고 말 것이다. 공융의 아들은 한 집안의 가장이요, 기둥인 아버지가 죄를 지어 체포되어 가는 마당에 자식이 벌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나무의 근본인 뿌리가 썩어 문드러졌다면 어찌 여름날의 푸른 신록을 기대하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과실을 생각할 수 있을까?

복소지란 (復 巢 之 卵) 공융의 두 아들이 한 말.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성할 리가 없다는 뜻.

복수불반분 (覆 水 不 返 盆)

覆:엎을 복. 水:물 수. 不:아니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 곧 ① 이별한 부부 사이는 전과 같이 될 수 없다. ②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의 비유.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한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 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복수불수 覆水不收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어찌 할 수 없음을 이른다. 엎질러진 물(=覆水不返盆)

複雜多端(복잡다단) 일이 얽히고설키어 갈피를 잡기 어려움.

福在積善(복재적선) 복(福)의 근원은 선(善)을 쌓는 데 있다

伏地流涕(복지유체)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림.

복차지계 (覆 車 之 戒)

覆:엎어질 복. 車:수레 차. 之:어조사 지. 戒:경계할 계

앞의 수레가 넘어져 엎어지는 것을 보고 뒷수레는 미리 경계하여 엎어지지 않도록 한다. 곧 앞사람을 거울 삼아 뒷사람은 실패하지 말라는 뜻

前漢(전한) 초기의 名臣(명신) 賈誼(가의)는 대단한 수재로 어려서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하남 태수가 그를 눈여겨 보다가 발탁했는데 소문을 들은 중앙의 文帝(문제)가 서울로 끌어들여 가의가 20세 때 박사가 되게 했고, 1년만에 太中大夫(태중대부)로 파격적인 승진을 시켰다.

문제는 고조 劉邦(유방)의 서자이자 제2대 혜제의 동생으로 諸候(제후)로 있다가 황실 內紛(내분)의 와중에서 帝位(제위)에 올랐기 때문에 세력있는 제후 중에는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자도 있었다. 이를 의식한 문제는 젊은 가의에게 중책을 맡겨 국정을 쇄신코자 했다.

가의는 문제의 뜻에 따라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건의를 했는데 그 중에 이런 대목도 있다.

"앞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은 뒷수레에 교훈이 된다(前車覆後車戒·전차복후차계=覆車之戒)는 말이 있습니다. 저 옛날의 夏(하) 殷(은) 周(주)시대를 되돌아 보면 왜 잘 다스려졌던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옛날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聖人(성인)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과 같아서 오래 영화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秦(진)나라가 일찍 망한 것을 우리는 눈 앞에 보았습니다. 진나라가 망한 까닭은 진나라가 펴온 정책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을 피하지 않으면 앞날이 암담합니다. 그러므로 앞수레의 엎어짐을 보고 국가의 큰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세움이 마땅합니다."

이런 말을 귀담아 듣고 나라를 다스린 문제는 중국 역사상 名皇帝(명황제)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本末顚倒(본말전도) 일의 원줄기를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힘

本然之性(본연지성)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자연의 심성.

本第入納(본제입납)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封庫罷職(봉고파직)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罷免시키고 官庫를 봉하여 잠그는 일.

봉생마중불부이직 蓬生麻中不扶而直 쑥이 삼대 밭에서 자라면 도와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

봉황 鳳凰 앞모습은 기러기, 뒷모습은 기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이마, 원앙의 깃, 용의 무늬,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 부리를 가진 새로 습성이 기이해 竹實만 먹고 碧梧桐에만 서식한다.

부귀생교사 富貴生驕奢 사람이 부귀를 누리게되면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 쉽다.

부귀재천 (富 貴 在 天 )

[ 가멸 부/ 귀할 귀/ 있을 재/ 하늘 천 ] : 부귀(富 貴 )는 하늘에 달려 있어서 인력(人 力 )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뜻.

부기미 (附 驥 尾)

附:붙을 부, 驥:천리마 기, 尾:꼬리 미

천리마의 꼬리에 붙다. 곧 명마의 꼬리에 붙으면 멀리 갈 수가 있다는 말로 훌륭한 인물에 붙좇아 그 덕분에 출세하거나 일을 성취한다는 뜻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의 열전(列傳) 맨 앞대목엔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올라있고 이 대목의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있다.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호랑이를 따르듯 성인(聖人)이 세상에 나타나고야 만물도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백이 숙제는 賢人임에는 틀림없으나 孔子가 그들을 찬양함으로써 더욱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顔淵(안연)도 학문에 충실했지만 공자의 驥尾(기미)에 붙음으로써(附驥尾) 그 품행이 더욱 더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함께 동굴에 숨어 사는 선비라도 나아가고 들어감에 따라 때의 이로움과 이롭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 이름이 묻혀 칭송되지 못하는 수가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촌구석에 살면서 품행을 닦고 이름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덕있는 명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름을 후세에 전할 수가 있겠는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영향력있는 인물이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초야에 묻혀 후세에 이름을 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前漢 말기의 사람인 張敞(장창)도 이렇게 쓰고 있다.

<파리는 열 걸음 거리밖에 날지 못하지만 천리마 같은 발 빠른 말의 꼬리에 붙으면 천리길도 쉽게 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말에게는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고 파리는 다른 것들을 훨씬 멀리 떼어놓을 수가 있다.>

여기서는 큰 인물의 힘을 빌려 출세하고 또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부 마(駙馬)

駙:곁말 부. 馬:말 마.

임금의 사위. 공주의 부군(夫君).

부마(駙馬)의 원래 뜻은 천자가 타는 '예비 수레(副馬)'에 딸린 말이다. 그 말을 관리하는 관직이 부마도위(駙馬都尉)다. 한(漢) 무체 때에 흉노의 한 사람인 김일선(金日禪)이라는 이가 항복해 온 일이 있었다. 그에게 이 직책을 준것이 부마도위의 시초다.

부마도위는 일정한 정원이 없다. 그것이 위진(魏晉) 이후로 공주의 남편이 되는 이들에게 이 직책을 줌으로써 군왕의 사위를 부마라 한 것이다. 진나라 때에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에는 부마에 대해 다음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 농서[ 書:감숙성(甘肅省)] 땅에 신도탁(辛道度)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던 도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하녀가 나와 대문을 열었다.

"옹주로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 줄 수 없겠습니까?"

하녀는 잠시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잘 차린 밥상이 있었는데 하녀가 사양 말고 먹으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

"저는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딸이온데 조(曹)나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을 하고 이제까지 23년 동안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 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그런 고귀한 여인과 어찌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느냐고 극구 사양했으나 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사흘 낮 사흘 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좀더 함께 지내고 싶지만 사흘 밤이 한도예요. 이 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헤어져야 하지만 제 진심을 보여 드릴 수 없는 게 슬프군요. 정표로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여인은 신도탁에게 금베개[金枕]를 건네주고는 하녀에게 대문까지 배웅하라고 일렀다. 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그 큰 기와집은 간데 없고 잡초만이 무성한 허허 벌판에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품속에 간직한 금베개는 그대로 있었다.

신도탁은 금베개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 그후 왕비가 금베개를 저잣거리에서 발견하고 관원을 시켜 조사해 본 결과 신도탁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왕비는 그를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 보니 다른 부장품(副葬品)은 다 있었으나 금베개만 없어졌다. 그리고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 정교(情交)한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이야기와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이야말로 내 사위라며 그에게 '부마도위(駙馬都尉)'하는 벼슬을 내리고 후대했다고 한다.

부부유별 (夫 婦 有 別)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

부부자자 (父 父 子 子)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을 하고, 아들은 아들 노릇을 함.

부생여몽 (浮 生 如 夢) 인생은 항상 허무한 꿈과 같음을 이르는 말이다.

부수반환 (負 手 盤 桓) 뒷짐을 지고 머뭇거린다는 말이니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뜻이다. = 속수무책(束手無策).

부앙불괴 俯仰不愧 하늘을 우러러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음.

부언시용(婦言是用)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 줏대 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

부위부강 (夫 爲 婦 綱 )

[ 지아비 부/ 할 위/ 며느리 부/ 벼리 강 ] : 삼강(三 綱 )의 하나로, 남편은 아내의 모범(模 範 )이 되어야 한다는 말.

부위자강 (父 爲 子 綱 )

[ 아비 부/ 할 위/ 아들 자/ 벼리 강 ] : 삼강(三 綱 )의 하나로, 부모는 자식의 모범(模 範 )이 되어야 한다는 말.

父子有親(부자유친) 부자간에는 친애함이 있어야 함.

부전자전 (父 傳 子 傳)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다.

부족위기 (不 足 爲 奇) 이상히 여길 것이 못된다.

부중생어 (釜 中 生 魚) 솥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란 뜻으로 오래 계속되지 못할 일을 비유함

부중지어 (釜 中 之 魚)

釜:솥 부.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魚:물고기 어

솥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

後漢(후한)말께 20여년간 황제의 외척인 梁翼(양익)형제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 양익이 대장군이 되고 그의 아우 不疑(불의)가 하남 태수가 되었을 때 그들은 여덟 명의 使者(사자)를 각 고을에 파견, 순찰하도록 했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張綱(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烙陽(낙양)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같은 양익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은 도처에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은 양익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광릉군에 부임한 장강은 곧바로 혼자서 도적떼의 소굴을 찾아가 장영에게 간곡히 귀순을 권했다. 장영은 장강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釜中之魚)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 갈 수는 없겠지요."

이리하여 만여 명의 도적들은 모두 항복했고 장강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뒤 모두 풀어주었다.

부지소운 (不 知 所 云) 제갈량의 전출사표에 나오며,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뜻.

부지소조 (不 知 所 措) 어찌 할 바를 모른다.

부창부수 (夫 唱 婦 隨) : 남편의 부름에 아내는 복종해야 한다. 부부의 도리.

부형청죄 (負 荊 請 罪) 형(荊)은 가시나무.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 즉, 사죄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화뇌동 (附 和 雷 同)

附:붙을 부, 和:화할 화, 雷:천둥 뇌, 同:같을 동

우뢰 소리에 맞춰 함께 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남이 하는 데로 따라감

타협과 절충보다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뚜렷한 자기 주관 없이 맹목과 방종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附和雷同(부화뇌동)이다.

附和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고 아부하는 것을 말하며, 雷同 역시 같은 뜻이다. 굳이 '천둥'을 뜻하는 '雷'자를 덧붙여 雷同이라 한데는 까닭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현상이 그것을 주재하는 어떤 거대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비나, 바람, 이슬, 눈은 물론이고 지진이나 일식, 태풍까지 神의 조화로 돌렸다. 재미있는 것은 천둥과 번개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이야 그것의 발생 원리를 초등학생도 다 알지만 옛날에는 모두 神의 조화로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거대한 천둥소리가 地上에 부딪쳐 메아리 치는 것을 두고 萬物이 그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천둥 소리가 크게 울리면 반응도 크고 작으면 작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만물은 천둥소리에 따라 한치의 착오도 없이 무조건 반응하게 된다. 이처럼 천둥소리에 함께 따르는 것을 雷同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雷同에는 옛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附和든, 雷同이든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므로 좋은 뜻은 아니다. 그것 보다는 自身의 主觀에 따라 堂堂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집과 독선은 곤란하겠지만….

북망산천 (北 邙 山 川) 묘지가 있는 곳.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일컫는 말.

北門之歎(북문지탄) 벼슬은 하였으나 뜻대로 성공하지 못하여 살림이 곤궁함을 한탄하는 말(北門은 궁궐의 상징어)

北山之感(북산지감) 나라 일에 힘쓰느라 부모봉양을 제대로 못한 것을 슬퍼하는 마음(北山은 궁궐의 상징어)

북창삼우 (北 窓 三 友 )

[ 북녘 북/ 창 창/ 석 삼/ 벗 우 ] : 북쪽 창가의 세 친구. 거문고와 시와 술을 일컬음

北風寒雪(북풍한설) 몹시 차고 추운 겨울바람과 눈.

분골쇄신 (粉 骨 碎 身) : 뼈는 가루가 되고 몸은 산산조각이 됨. 곧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함

憤氣沖天(분기충천) 분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 대단함.

분서갱유 (焚 書 坑 儒)

焚:불사를 분. 書:글 서. 坑:묻을 갱. 儒:선비 유.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다는 뜻으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가혹한 법[苛法]과 혹독한 정치[酷政]을 이르는 말.

기원전 222년, 제(齊)나라를 끝으로 6국을 평정하고 전국 시대를 마감한 진나라 시황제 때의 일이다.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자 주(周)왕조 때의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사상 처음으로 중앙집권(中央執權)의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채택했다.

군현제를 실시한 지 8년이 되는 그 해(B.C. 213) 어느 날, 시황제가 베푼 함양궁(咸陽宮)의 잔치에서 박사(博士)인 순우월(淳于越)이 '현행 군현 제도하에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기하기가 어렵다'며 봉건제도로 개체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순우월의 의견에 대해 가부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立案者)인 승상 이사(李斯)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침략전이 끊이지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되어 안정을 찾았사오며, 법령도 모두 한 곳에서 발령(發令)되고 있나이다. 하오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들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심과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醫藥) 복서(卜筮) 종수(種樹:농업)에 관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

시황제가 이사의 진언을 받아들임으로써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속속 불태워졌는데 이 일을 가리켜 '분서'라고 한다. 당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므로, 책은 모두 글자를 적은 댓조각을 엮어서 만든 죽간(竹簡)이었다. 그래서 한번 잃으면 복원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이듬해(B.C. 212) 아방궁(阿房宮)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神仙術法)을 닦는 방사(方士)들을 불러들여 후대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신임했으나 두 방사는 많은 재물을 사취(詐取)한 뒤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시황제는 진노했다. 그 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중의 염탐꾼을 감독하는 관리로부터 '폐하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황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엄중히 심문한 결과 연루자는 460명이나 되었다. 시황제는 그들을 모두 산 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는데 이 일을 가리켜 '갱유'라고 한다.

불가구약 (不 可 救 藥) 일이 이미 실패하여 수습할 길이 없다.

불가구힐 (不 可 究 詰) 내용이 복잡하여 진상을 밝힐 수가 없다.

불가근불가원 (不 可 近 不 可 遠) 가까이도 멀리도 할 것이 못된다. 경계하는 사람은 가깝게 하지도 말고 그렇다 고해서 멀리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불가명장 不可名狀 아주 형용할 수가 없다.

불가사의 不可思議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어 이상하고 야릇한 것.

불가이유 不可理喩 함부로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

不可知論(불가지론) 의식에 주어지는 감각적 경험만이 인식되고, 그 배후에 있는 객관적인 실재는 인식할 수 없다는 설

不可抗力(불가항력)

[아닐 불/ 옳을 가/ 겨룰 항/ 힘 력]

사람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힘.

불간지서 不刊之書 영구히 전하여 없어지지 않는 양서(良書). 불후(不朽)의 책.

不敢生心(불감생심) 힘에 부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함.

불감청고소원 不敢請固所願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본래부터 원하고는 있음.

불고염치 (不 顧 廉 恥) 부끄러움과 치욕을 생각하지 않음. 즉, 염치를 돌보지 않음.

불공대천 (不 共 戴 天)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함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는 같이 살 수 없을 만한 큰 원한(怨恨)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

불괴옥루 (不 愧 屋 漏) 사람이 보지 아니하는 곳에서도 행동을 신중히 하고 경계하므로 부끄럽지 아니함

불구공졸 (不 拘 工 拙) 재주가 좋고 서투름을 가리지 않는다.

불구대천 (不 俱 戴 天)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를 이름.

불구대천지수(不 俱 戴 天 之 讐 )

不:아니 불. 俱:함께 구. 戴:일 대. 天:하늘 천.讐 :원수 수.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란 뜻으로,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

《예기(禮記)》<곡례편(曲禮篇)〉에는 '불구대천지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父之讐 弗與共戴天(부지수불여공대천)]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兄弟之讐 不反兵 (형제지수불반병)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

交遊之讐 不同國 (교유지수부동국)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된다.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에 한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놈'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이 말은《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맹자의 말과 비교가 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 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

불굴불요 (不 屈 不 撓) 여하한 장애와 어려움에도 뜻을 굽히거나 흔들림이 없다.

불궁기마 (不 窮 其 馬)

<순자>라는 고전에 보면 마부가 말을 부릴 때. 너무 말을 몰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不窮其馬라...! 아니 불자에 궁할 궁자, 말 마자, 불궁기마, 유능한 마부는 말을 부릴 때 말을 너무 압박하거나. 몰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혹독하게 말을 부리던 동야필이라는 사람의 말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여 결국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말의 본성을 이해하며. 말을 압박하지 않았던 조보라는 사람의 말은. 여전히 그 능력을 발휘하여. 수레를 잘 끄는 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발톱으로 활키고 수궁즉확이오,

사람도 궁지에 몰리면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인궁즉사라...!

순자는 이 말을 하면서 백성들도 너무 압박하고. 재촉하면 결국 백성들의 마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불로장생 (不 老 長 生)

不:아니 불, 老:늙을 로, 長:길 장, 生:살 생

늙지 않고 오래 산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한결같다. 천하를 손에 넣은 秦始皇(진시황)은 영화를 천년 만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徐福(서복)의 건의로 童男童女(동남동녀) 3000명을 동해의 三神山(蓬萊山, 方丈山, 瀛洲山)에 보내 不老草(불로초)를 구하게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환갑도 못 넘긴 50세의 나이로 夭折(요절)하고 말았다.

그 뒤 西漢(서한)의 漢武帝(한무제)도 晩年(만년)에 神仙術(신선술)에 미혹되어 국고를 탕진했지만 그런대로 장수(70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비록 전설이기는 하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은 彭祖(팽조)는 700세나 살았다니 인간의 수명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이 藏唐京(장당경)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

진시황과 한무제 두 제왕의 죽음으로 중국 사람들은 불로초에 대한 허망한 꿈은 버리게 되었다. 대신 國庫(국고)를 탕진할 필요 없이 매우 경제적으로, 그것도 아주 간편하게 不老長生(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丹藥(단약)의 제조인 것이다.

중국 東漢(동한)말에 출현한 道敎(도교)는 煉丹術(연단술)에 불을 지폈다. 부적과 약물을 통한 災厄(재액) 방지와 만병통치를 구호로 내걸면서 연단술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이후 도가의 養生術(양생술)에는 아예 불로장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지게 되었으며 晉(진)의 葛洪(갈홍)같은 이는 服藥(복약) 僻穀(벽곡) 導引(도인)과 같은 실천 방법까지 제시하게 된다.

丹藥(단약)의 재료는 놀랍게도 水銀(수은), 유황, 납, 丹砂(단사), 砒霜(비상), 초석, 운모 및 약초가 사용되었는데 그 면면을 보면 의아함을 넘어 섬뜻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실제로 1965년 南京 象山(상산)에서 수백 개의 단약이 발견된 적이 있다. 단약이 극성했던 동진시대의 王氏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었는데 성분 조사 결과 역시 수은이 60.9%나 되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단약도 기실은 夭折藥(요절약)이 아닌가.

실제로 역대 수많은 천자들이 단약을 잘못 먹고 不歸(불귀)의 客(객)이 되었다. 당나라의 경우 太宗을 비롯 무려 6명의 천자가 단약을 먹고 죽었다.

연단술이 해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물로 화약이 발명된 것이다. 그 뒤 중국의 연단술은 아랍을 거쳐 12세기에는 유럽에 전파되어 근대 화학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丹藥을 먹고 羽化登仙(우화등선)했다는 기록은 없다. 인간의 불로장생 추구는 한낱 부질없는 짓이라는

불립문자 不立文字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함. 이심전심(以心傳心 )

불망지은 (不 忘 之 恩) 잊지 못할 은혜.

불면불휴 (不 眠 不 休 )

[ 아닐 부/ 잠잘 면/ 아닐 불/ 쉴 휴 ] :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조금도 쉬지 않고 애써 일하는 것을 말함.

불모지 不毛地 중국의 신화에 盤古라는 신인이 천지개벽을 하고 후에 하늘과 땅이 다시 붙을까 두려워 두 손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서있었다. 그의 키는 하루에 한길씩 커졌고 1만8천살을 살았으므로 하늘은 그만큼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가 죽자 입김은 바람과 구름이, 목소리는 천둥이, 왼쪽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으며 피는 강이 되고 힘줄은 길이, 근육은 땅이 되고 털은 풀과 나무가 뼈는 돌이 되었다고 한다.

不毛之地(불모지지) 초목이 나지 않는 메마른 땅.

불문가지 (不 問 可 知 )

[ 아닐 불/ 물울 문/ 옳을 가/ 알 지 ] :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음.

불문곡직 (不 問 曲 直 )

[ 아니 불/ 물울 문/ 굽을 곡/ 곧을 직 ] : 옳고 그른 것을 묻지 않고 다짜고짜로.

불벌부덕 (不 伐 不 德 )

[ 아닐 불/ 칠벌 벌/ 아닐 부/ 덕 덕 ] : 자기의 공적(功績)을 과시(誇示)하지 않음.

不蜚不鳴(불비불명)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말로, 큰일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뜻

불상상하 不相上下 쌍방의 실력이 대등하다. 막상막하(莫上莫下).

불성인사 不省人事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른다. 인사불성(人事不省).

불세지웅 不世之雄 세상에 뛰어난 영웅. 세상에 썩 드물게 나타난 영웅을 뜻한다.

불세지재 不世之才 대대로 드문 큰 재주. 세상에 드문 큰 재주 .

불수진(拂 鬚 塵)

拂:떨칠 불. 鬚:수염 수. 塵:티끌 먼지 진.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준다는 뜻. 곧 ①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아부(아첨)함의 비유. ② 상사에 대한 비굴한 태도의 비유.

송(宋:北宋, 960∼1127)나라의 4대 황제인 인종(仁宗:1022∼1063)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구준(寇準)이라는 정의파 재상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여러 유능한 인재를 발탁, 천거했는데 참정(參政:從二品) 정위(丁謂)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구준이 정위를 포함한 중신들과 회식(會食)을 하는데 음식찌꺼기가 수염에 붙었다. 이것을 본 정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소맷자락으로 공손히 털어냈다. 그러자 구준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허, 참.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어찌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주는[拂鬚塵]' 그런 하찮은 일을 하오?"

정위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 갔다고 한다.

불승매거 (不 勝 枚 擧)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헤아려 말 할 수가 없다.

불식태산 (不 識 泰 山)

不:아니 불. 識:알 식. 泰:클 태. 山:뫼 산

태산을 몰랐다.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다.

태산(泰山)이라면 중국의 오악(五岳) 중 가장 유명한 산으로 山東에 있으며 천자가 봉선(封禪)을 행했던 산이다. 동방의 명산이었던데다 당시만 해도 '하늘 아래 제일 뫼'라고 하여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실제 높이는 1,500여 미터에 불과하다.

불식태산(不識泰山)이란 '태산을 몰랐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泰山은 산 이름이 아니라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노반(魯班)의 제자다. 노반은 공수반(公輸般)이라고도 불렸는데 천하의 세공(細工) 명장(名匠)으로 맹자(孟子)나 묵자(墨子)에도 등장한다. 태산이 갓 木工을 익힐 때였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노반의 맘에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산이 게으름을 피운는 것이 아닌가. 배우려는 의욕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또 틈만 나면 배움터를 뛰쳐나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부근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탁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들 잘 만들었지만 泰山태산만은 엉망이었다. 화가 난 노반은 그를 쫓아내고 말았다.

십여 녀이 지난 어느 날 노반은 시장에서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대나무 가구를 발견했다. 너무도 놀라워 수소문해 본 결과 자기가 쫓아냈던 泰山이 만든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10여년 전 그로부터 배울 때 泰山은 대나무의 유연성에 주목하여 대나무를 익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승이 나무만 고집하니까 하는 수 없이 대나무 숲으로 도망쳐 혼자 익혔던 것이다.

노반은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나는 눈을 가지고도 泰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不識泰山)!' 후에 泰山은 죽공예(竹工藝)의 창시자가 되었다.

불약이동 [不約而同] 사전 약속 없이 우연일치로 행동을 같이 한다.

불언지화 [不言之化] 말로 하지 않고 자연히 덕으로 주는 감화.

불연지돌연하생 [不煙之突煙何生] 아니 땐 굴뚝에 어찌 연기가 날것인가? 근거없는 말은 없는 법이다.

불요불굴 (不 撓 不 屈 )

[ 아닐 불/ 어지러울 요/ 아닐 불/ 굽을 굴 ]

흔들리지도 아니하고 굽히지도 아니한다는 데서, 정신 자세 같은 것이 확고함을 말함.

전한(前漢) 성제(成帝) 때 일이다. 건시(建始) 3년(기원전 30년) 가을, 서울 장안(長安)의 시민들은 홍수가 밀려온다는 소문에 그만 당황 망조하여 갈팡질팡 대혼란이 야기됐다. 성제는 고관들을 소집하여 이 일을 협의했다. 황제의 장인인 대장군 왕봉(王鳳)은 조사도 해보지 않고 수문이 사실이라면 황제에게 황족을 한시바삐 피신시키라고 진언했다. 군신들 모두 왕봉의 의견에 찬성했는데 재상 왕상(王商)만은 헛소문이라며 반대했다.

시간이 지나 장안의 민심은 차츰 가라앉고, 질서도 점점 회복되어 갔다. 조사해 본 결과 홍수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뜬소문임이 판명되어싿. 성제는 왕상이 많은 사람에게 현혹되지 않고 소신을 관철시킨 것을 칭찬했으며, 한편으로는 왕봉을 불신하게 되었다. 왕봉은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하면서도 왕상에게 원한을 품었다.

한번은 왕봉의 일족인 낭야군의 태수 양융(楊융)이 치정을 잘못해 군민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준 일이 있었다. 왕상은 양융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왕봉이 양융을 변호하여 그 실정을 잘 처리해 처벌을 보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으나 왕상은 받아들이지 않고 상주하여 양융을 파면해 버렸다.

《漢書》의 저자 반고(班固)는 이러한 왕상을 평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됨이 질박하고 성격은 不撓不屈했기 때문에 도리어 남의 원한을 사게 된다."

불원천리 (不 遠 千 里 )

[ 아니 불/ 멀 원/ 일천 천/ 마을 리 ] : 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아니함.

불원천불우인 (不 怨 天 不 尤 人) 제 뜻에 맞지 않더라도 하늘이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늘 반성해 발전과 향상 을 꾀한다.

불유여력 (不 遺 餘 力) 있는 힘을 남기지 않고 다 쓴다.

불익이비 (不 翼 而 飛) 물건이 온데 간데 없다.

불 초(不 肖)

不:아니 불. 肖:닮을 초

닮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지 않아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음

《孟子》의 <萬章篇>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만장(萬章)이 물었다.

"요 임금이 천하를 순 임금에게 주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아니다. 천자는 천하를 남에게 주지 못한다."

"순이 천하를 차지한 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

"하늘이 준 것이다."

"하늘이 주었다는 것은 하늘이 천하를 주라고 이리저리 명령을 한 것입니까?"

"아니다. 하늘은 말을 하지 않는다. 행동과 일로써 그 뜻을 보여줄 뿐이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순(舜)이 섭정으로 요(堯) 임금을 28년 동안이나 도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늘이 시킨 것이라고 맹자는 말한다. 요임금이 죽고 3년상을 치른 후 순은 요 임금의 아들을 피해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갔다. 사람들은 요 임금의 '불초(不肖)한 아들(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또한 소송을 하는 사람들은 요 임금의 아들한테 가지를 않고 순에게 갔다. 만약 요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에 군왕의 자리에 순이 올랐다면 그것은 하늘이 준 것이 아니고 찬탈이라고 맹자는 설명을 마쳤다.

불철주야 (不 撤 晝 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함. 조금도 쉴 사이 없이 일에 힘쓰는 모양.

부초지부 (不 肖 之 父) 어리석은 아버지

불출소료 (不 出 所 料)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치하문 (不 恥 下 問) 모르는 것을 아랫사람에게 묻는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이 없다.

불편부당(不 偏 不 黨 )

[ 아니 불/ 치우칠 편/ 아니 부/ 무리 당 ]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정(中正)한 입장을 유지함. 무편무당(無 偏 無 黨 ).

불한이율 (不 寒 而 慄) 춥지 않아도 벌벌 떨 정도로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

불합시의 (不 合 時 宜) 시세와 유행에 뒤떨어진다.

불협화음 (不 協 和 音) 어울리지 않는 음.

불 혹(不 惑)

不:아니 불. 惑:미혹할 혹.

미혹(迷惑)하지 아니함. 나이 마흔 살의 일컬음.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논어》〈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志學) 나는 열 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고

三十而立(而立) 서른 살 때 입신했다.

四十不惑(不惑) 마흔 살 때는 미혹하지 않고

五十而知天命(知命) 쉰 살 때 하늘의 명을 알았다.

六十而耳順(耳順) 예순 살 때는 귀에 따랐고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從心) 일흔 살이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주] 20세 : 약관(弱冠),60세 : 환갑(還甲). 70세 : 고희(古稀),77세 : 희수(喜壽),

88세 : 미수(米壽),99세 : 백수(白壽)

《禮記》<曲禮上篇》에서 공자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생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 열살이 되면 어린이(幼)라 하여 배워야 한다.

스무살이 되면 약(弱)이라 하여 성인식을 해야 한다.

서른이 되면 장(壯)이라 하여 아내를 맞이하고

마흔살이 되면 강(强)이라 하여 벼슬에 나아간다.

쉰이 되면 애(艾)라 하여 정치에 참여하고

예순살이 되면 기(耆)라 하여 사람에게 지시하여 일을 한다.

일흔살이 되면 노(老)라 하여 집안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물려 준다.

그리고 여든살, 아흔살이 되면 모라 한다. 일곱 살은 애처롭다는 뜻으로 도(悼)라 하는데, 도와 모의 나이는 죄를 짓더라도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백살은 기(期)라 하여 부양을 받는다.

불혹지년 (不 惑 之 年) 공자가 나이 사십부터 세상일에 미혹을 갖지 않는다고 하여 쓰이는 말

붕당정치 (朋 黨 政 治) 조선 중기의 당파 싸움.

조선시대 의념과 이해에 따라 이루어진 사람의 집단을 말한다. “붕”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무리, “당”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모임 집단을 가리킨다. 붕당은 선조 8년(1575) 같은 학문계통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지면서 생겨났다. 처음에는 상대 붕당의 비판과 학문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바른 정치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17세기 말부터 변질되어 자기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붕당간의 대립이 심해져 사회문제가 되었다.

(동인 중심인물 퇴계 이황)

붕우유신 (朋 友 有 信) 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붕우책선 (朋 友 責 善) 친구는 서로 착한 일을 권함. 친구라면 나쁜 짓을 못 하도록 권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한다.

양한 장래.

붕정만리 (鵬 程 萬 里 )

鵬:붕새 붕, 程:정도 정, 萬:일만 만, 里:리 리

커다란 붕새가 날아가려는 거리는 말리 저쪽에 있다는 뜻으로, 목표가 웅대하여 전도가 아득히 먼 것. 사나이 대장부의 원대한 포부

莊子(장자)는 허무맹랑한 말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도 허풍이 세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면 「차원이 다르다」고 일축해 버린다. 마치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나 매미에게 가을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는 식이다. 그가 쓴 『莊子』라는 책에 보면 소요유편(逍遙游篇)이 있다. 더 넓은 우주를 아무 거리낌 없이 훨훨 날아 다닌다는 뜻이다. 거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놈이 遁甲(순갑)을 하면 붕(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붕새의 등도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고 날개짓을 하면 颱風(태풍)이 분다. 그 태풍을 타고 9만리를 올라 6개월간이나 날아 남명(南冥·남쪽 어두운 바다)으로 날아간다.

황당무계하기 그지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속세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곧 광대하기 그지 없는 붕새를 빌려 자신의 정신 세계를 아무 구속 없이 마음껏 자유롭게 소요(逍遙·노닐음)하고 싶었던 것이다. 붕새는 곧 자신인 셈이다.

여기에서 鵬은 곧「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라는 뜻이 되어 鵬翼(거대한 날개),鵬飛(거대한 날개짓),鵬圖(원대한 계획),鵬際(붕새가 나는 우주)등과 같은 말이 나왔다. 붕정(鵬程)이라면 붕새가 남쪽의 어두운 바다로 날아가는 길,歷程을 일컫는다. 수만리,아니 수십만리가 넘는다. 따라서 鵬程萬里는 사나이 大丈夫의 遠大한 抱負나 꿈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비견계종(比 肩 繼 踵)

比:가지런할 비. 肩:어깨 견. 繼:이을 계. 踵:발꿈치 종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부딪칠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는 모양. 또 뒤이어 연달아 끊어진 곳이 없음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大夫) 안영은 몸집이 작고 미남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뼈가 가루가 될 정도로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영이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초나라 영왕(靈王)은 자국의 강대함을 교만하게 뻐겼다. 그는 대신들과 상의해 안영에게 모욕을 주려고 계략을 세웠다.

안영이 탄 수레가 초나라 도성의 동문에 접근하자, 성문이 철컥 닫혀 버렸다. 그는 성루에 있는 문지기더러 문을 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문 옆의 조그만 문이 열렸다. 안영이 말했다.

"이건 개나 드나드는 문이 아닌가. 나는 군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 나라는 개의 나라인가 보군."

보고를 받은 영왕이 몹시 놀라며 말했다.

"그를 우롱해 주려고 생각했었는데 거꾸로 우롱을 당했군."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성문을 열게 했다.

이튿날 오전에 안영은 왕궁으로 갔다. 궁전에는 문무 고관들이 쭉 늘어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안영에게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는 그것들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이윽고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영왕은 안영을 보고 놀란 듯이 말했다.

"제나라에는 어지간히 인물이 없는가 보군. 그대와 같은 자를 보내다니."

"거 무슨 말씀이오. 제나라 도성은 3만호. 소매를 뻗치면 하늘을 가리고, 땀을 뿌리면 비를 이루오.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많소. 그런데 어째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영왕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 같은 소인물(小人物)을 보낸 거요?"

안영은 미소지었다.

"제나라에는 사자를 보내는 기준이 있소이다. 대인물은 현군이 있는 나라로, 소인물은 암군(暗君)이 있는 나라로 보내기로 되어 있소. 나는 무능한 소인물이므로 그에 알맞는 나라에 보내진 것이요."

영왕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안영을 새삼스레 재인식하고 예우를 갖춰 대접했다.

[주]안영:춘추시대 제나라 대부. 안자(晏子)는 그의 경칭.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南橘北枳)"고 한 그의 말은 유명함. 《晏子春秋》는 그의 언행록임.

비금도수 (飛 禽 走 獸) 날 짐승과 길짐승.

비례물동 (非 禮 勿 動) 禮가 아니면 행동으로 옮기지도 말아라.

비례물시 (非 禮 勿 視)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보지도 말라는 말.

비례물언 (非 禮 勿 言) 禮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아라.

비례물청 (非 禮 勿 聽) 禮가 아니면 듣지도 말아라.

비명횡사 (非 命 橫 死) 뜻밖의 재난이나 사고 따위로 죽음.

비몽사몽간 (非 夢 似 夢 間) 꿈인지 생시인지 어렴풋한 상태를 말한다.

誹謗之木(비방지목) 헐뜯는 나무라는 말이다.

비변사(備 邊 司) (한국사키워드)

[가출 비 / 갓 변 / 맡을 사] 조선시대에 군대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

변경의 방비를 위하여 중종 때 설치. 처음에는 전시상황에만 운영되던 임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쟁수행을 위한 문무 고관의 회의 기관으로 변모하여 군사 행정, 일반 행정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비변사는 왜란이 끝난 뒤에도 전쟁 수습과 호란으로 인하여 그대로 존속하면서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 기관이 되었다. 이전의 최고 정무기관이던 의정부는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했고 왕권의 악화를 불렀다. 대원군 때에 철폐되면서 의정부가 부활했다. 비변사 회의 내용을 기록한<비변사등록 국보151-2호>이 현재 남아 있다.

悲憤慷慨(비분강개) 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음

比比有之(비비유지) 드물지 않음

匪石之心(비석지심) 내 마음은 돌이 아니므로 굴려서 돌리지 못하듯 결심이 확고하다

比屋可封(비옥가봉) 충신, 효자, 열녀가 많은 까닭에 벼슬에 봉할 만한 집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세상이 평안함.

비육지탄 (脾 肉 之 嘆)

脾:넓적다리 비, 肉:고기 육, 之:어조사 지, 嘆:탄식할 탄

넓적다리에 살리 찐 것을 한탄함. 본의 아니게 안일한 생활을 하며 활약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다.

한(漢)나라 황실의 후예를 자칭하고 의병을 일으킨 유비(劉備)는 한때 조조(曹操)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조조를 죽이려는 계획이 탄로나 간신히 탈출, 기주 여남 등지를 전전하다 형주의 유표(劉表)를 찾아갔다. 유표는 천하를 호령할 그릇은 못되고 자기 영토를 지키기에 급급한 인물이었다. 유비는 그 밑에서 新野라는 작은 성 하나를 맡고 있었다.

유표같은 인물 밑에 있어 가지고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 관우나 장비같은 호걸을 거느리고 있다해도 천하에 웅비할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유비의 나이는 이미 50이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날 유표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변소에 간 유비는 우연히 자기 넓적다리에 살이 많이 찐 것을 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하릴없이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눈물자국을 남긴 채 술자리로 돌아온 유비를 보고 유표가 놀라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유비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전에는 언제나 말을 타고 다녀서 넓적다리에 살이 찔 겨를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아서 살이 많이 올랐군요. 세월은 덧없이 흘러 노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아무런 공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때 유비의 나이는 40세 전후로, 세월의 흐름을 절실히 느낄 때였다.

비일비재 (非 一 非 再 )

[ 아닐 비/ 한 일/ 아닐 비/ 두 재 ] : 한두 번이 아님. 또는, 한둘이 아님. 어떤 일이 자주 일어남을 이르는 말.

비 조(鼻 祖)

코 비. 할아버지 조

일이나 사물의 맨 처음

일이나 事物의 「처음」을 뜻하는 한자 단어에 嚆矢(효시)와 濫觴(남상), 그리고 이번의 鼻祖(비조)가 있다. 먼저 祖부터 보자. 社는 땅(土)의 귀신(示)이라는 의미다. 곧 示는 정성을 「펴 보이다」는 뜻으로 鬼神(귀신)이나 祭祀(제사)를 뜻한다. 祭祀와 祈 · 祝 · 祠 · 神 · 祐 · 祭 · 祥이 그렇다. 祖는 示와 且의 結合으로 且는 紙榜(지방)을 붙여 놓은 位牌(위패) 또는 神主(신주)를 뜻한다. 곧 後孫이 신주(且)를 모셔놓고 제사(示)를 지낸다는 뜻으로 그 대상은 조상이 아닌가. 조상이라면 혈족의 始初(시초)가 된다. 始祖·元祖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코를 뜻하는 鼻자를 사용하여 「처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까닭이 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의 의학 상식으로는 임신을 했을 때 인간의 신체기관 중에서 제일 먼저 형성되는 것이 코라고 여겼다. 의사가 아니라 眞僞與否(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鼻(코)라면 「사람의 始初」라는 뜻이 되어, 중국 사람들은 「맨 처음」이라는 생각을 떠 올린다. 그들은 처음 낳는 아들을 鼻子(비자)라고 한다. 우리의 長子 · 長男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옛날 중국 화가들은 肖像畵(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코부터 그렸다. 그것이 사람의 「처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빈계지신 (牝 鷄 之 晨)

牝:암컷 빈, 鷄:닭 계, 之:어조사 지, 晨:새벽 신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는 뜻. 여자가 남편을 업신여겨 집안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함. 이치가 바뀌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는것.

새벽을 알리는 것은 수탉이 할 일인데 암탉(牝鷄)이 수탉 대신 때를 알리는 것은 음양의 이치가 바뀌어 질서가 없어졌다는 뜻이며 예로부터 집이나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보았다.

은(殷) 왕조 말기. 소(蘇)부락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주공(周公:주문왕의 아들. 무왕의 동생)은 입버릇처럼 미인의 딸을 얻고 싶다고 했다. 무왕은 주공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 청을 이루어 주었다. 미인은 곧 가려뽑은 남자와 혼인하여 딸을 낳았다. 절세의 미녀에게 딸이 태어나자 주공은 그때부터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단(旦)에 계집 녀를 붙여 '달(女+旦)'이라 했다. 그녀는 곧 소부락의 추장에게 보내졌고 그곳에서 성장했다. 본래의 이름이라면 당연히 소기(蘇己)라고 해야 하지만, 워낙 생김생김이 어여쁘고 또 주공과의 관계가 얽히어 달기라 불렀다. 일찍이 소부락에서는 천자인 주왕(紂王)의 비위를 상하게 한 후 화친의 명목으로 달기를 내놓았다. 그녀를 본 주왕은 정신이 오간 곳이 없게 되었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를 세세히 분석한 후 그에 맞추어 훈련을 받아 온 달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가 걷거나 앉거나 웃는 것까지도 모두가 주왕의 눈에는 멋있고 황홀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주왕(紂王)은 절세미녀 '달기'에게 정신을 빼앗겨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놀이와 포락지형이란 가혹한 형벌로 호사와 포악함이 극에 이르렀다. 마침내 주왕은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크게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은나라도 망하고 만다.

[빈계지신]이란 말은 무왕이 주왕과 싸움을 앞두고 주왕의 죄상을 주나라 장병들에게 알리는 가운데 나온 말인데 주왕이 달기의 치마폭에서 달기의 말만 듣고 국정을 망친 사실을 하나 하나 밝히고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길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집안이 망한다(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고 했다. 그런데 은나라 왕은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팽개쳐버리고 같은 조상을 모시는 백이와 숙제의 후손들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죄를 짓고 곳곳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썼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나라를 범죄로 문란해지게 했다."

위의 글에서 말한 암탉이 바로 계략에 얽히어 있던 달기라는 여인이었다.

목야의 싸움에서 승리한 무왕은 조가에 입성한 후 주왕의 시체에 세 개의 화살을 쏘고 경려(輕呂)라는 명검으로 벤 다음 황색 도끼로 목을 잘랐다. 그런 다음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달기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무리 주공이 그녀를 구해 주고 싶었으나 제후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리를 높인 '목야의 맹세'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처형 당할 때 망나니들도 달기의 미색에 홀려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달기를 처형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형장의 대장이 달려왔다. 달기의 목숨이 길지 못해 그랬는지 대장은 자그만치 90대의 늙은이였다. 그런데 이미 청춘을 몇 번이나 거듭 가버린 그 대장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일어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서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비아냥거릴 때도 이 속담은 동원된다.

※포락지형: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 이글거리는 숯불을 피워 놓은 후 구리 기둥 위를 죄인들로 하여금 맨발로 걸어가게 하는 형벌.

빈이무원 (貧 而 無 怨) 가난하면서도 남을 원망하지 않음.

빈자다사 (貧 者 多 事 가난한 자는 일이 많다.

빈자소인 (貧 者 小 人) 가난하면 저절로 졸장부가 됨

빈자일등 (貧 者 一 燈)

貧:가난할 빈, 者:놈 자, 一:한 일, 燈:등불 등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가난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부처님에게 바친 등불 하나가 부귀한 사람들이 바친 만개의 등불보다 공덕이 크다는 것으로 많은 보시(布施)보다도 참다운 마음과 정성이 소중하다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각기 자기 분수에 맞게 석가모니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무 공양을 할 수가 없구나"

난타는 어떻게 해서든 공양하는 시늉이라도 하겠다면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 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손에 넣게 되었다.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기름집으로 가는 난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름을 사서 등불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름집 주인은"겨우 한 푼어치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한 푼어치는 팔지도 않거니와 판다고 해도 조금 밖에 쓰지 못하는 눈곱만한 양이야" 하면서 기름팔기를 거절했다.

난타는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주인에게 털어놓고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주인은 난타의 정성에 감동하여 돈 한푼을 받고 꽤 많은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며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로 가서 석가에게 바치고 불단 앞에 많은 등불 속에 놓아두었다.

난타의 등불은 한밤중 내내 밝게 빛났고 먼동이 틀 때까지 홀로 타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뒤에 석가가 난타의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빈자일등장자만등 (貧 者 一 燈 長 者 萬 燈) 가난한 사람이 등 하나를 절에 바치는 정성은 재산 많은 사람이 등 만개를 바치는 정성보다 못하지 않다는 뜻이다.

貧則多事(빈즉다사) 가난하면 살림에 쪼들려 잔일이 많음

貧賤之交(빈천지교) 가난하고 천한 지위에 있을 때의 사귐.(=貧賤之交不可忘)

빙공영사(憑 公 營 私 )

[ 기댈 빙/ 공변될 공/ 경영할 영/ 사사로울 사 ] : 공사(公 事 )를 빙자(憑 藉 )하여 사리(私 利 )를 도모(圖 謀 )함.

빙기옥골 氷肌玉骨 희고 고운 여자의 살결을 말한다.

氷姿玉質(빙자옥질) 얼음같이 투명한 모습과 옥과 같이 뛰어난 바탕. 용모와 재주가 모두 뛰어남을 비유(=仙姿玉質)

빙청옥결 氷淸玉潔 맑은 얼음과 티없이 깨끗한 옥돌 같이 지조와 덕행이 담박(淡泊)하다.

빙청옥윤(氷淸玉潤) 얼음처럼 맑고 구슬처럼 윤이 난다. 장인과 사위의 인물이 다 같이 뛰어남을 말한다.

빙탄불상용 (氷 炭 不 相 容)

氷:얼음 빙. 炭:숯 탄. 不:아니 불. 相:서로 상. 容:용납할 용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얼음과 숯. 두 사물이 서로 화합할 수 없음

韓武帝 때의 名臣 三千甲子 동방삭(東方朔)은 재치와 해학, 변설에 뛰어나 입을 열면 막히는 법이 없고, 청산유수 같은 달변은 뭇 사람들의 넋을 빼놓기에 족했다. 武帝는 자주 그를 불러 이야기를 청해 듣곤 했다. 그래서 가끔 어전에서 대접이라도 하면 들고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가는 바람에 그의 옷은 늘 더러워져 있었다. 보다 못한 皇帝가 비단을 하사하면 이번에는 어깨에 메고 귀가했다. 또 돈을 하사하면 술집에서 다 써버리고, 미녀를 아내로 삼아 1년도 못 가 바꿔 채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들 그를 반 미치광이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번뜩이는 지혜가 있었다. 그는 곧잘 武帝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에 武帝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활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을 멀리 하시고 참소(讒訴)하는 말을 물리치소서." 사실 그는 조정에서 교활한 자를 은근히 비웃었으며 그들과는 일절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성격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忠節을 지키다 끝내 파직과 귀양으로 불운하게 일생을 보냈던 굴원(屈原)의 爲人과도 恰似하다. 그가 쓴 [七諫]은 屈原에 대한 흠모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중 자비편(自悲篇)에 이런 말이 보인다.

"얼음과 숯불은 함께 할 수 없다(氷炭不可以相幷兮)."

아첨과 참언을 일삼는 간신들과는 공존할 수 없다는 자신의 심경을 밝힌 것이다. 마치 옛날 屈原이 그러했던 것처럼.

※[반의어]빙탄상용(氷炭相容):상반되는 사물이 서로 협조함. 벗이 서로 충고하고 거울로 삼음. 세상에 그러한 예가 전혀 없음의 비유

빙탄지간 (氷 炭 之 間 )

[ 얼음 빙/ 숯 탄/ 갈 지/ 사이 간 ] : 얼음과 숯의 사이처럼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를 말함.

氷壺之心(빙호지심) 백옥으로 만든 항아리에 얼음 한 조각을 넣은 것 같은 마음(지극히 청렴결백한 마음)

빙호추월 氷壺秋月 인품이 담백하고 광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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