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사가망처(徙家忘妻) 이사할 때 자기의 妻를 깜빡 잊고 데려가지 않음. 잘 잊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사계 四計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한 평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고 한 집안의 계획은 화목함에 있다는 사람의 네가지 계획.
사고 四苦 사람의 네가지 괴로움. 즉 生·老·病·死를 말한다.
사고무친 (四 顧 無 親) :사방을 돌아보아도 친한 사람이 없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전혀 없음.
사군이층(事君以忠) 충성으로 임금을 섬김.
사궁 四窮 인간 생활에서의 네 가지 궁한 것. 환과고독(鰥寡孤獨),
사귀신속 事貴神速 일을 함에 있어서는 빨리 할수록 좋다는 말 .
사근취원 捨近取遠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데 것을 가짐이니 일 의 차례나 순서를 뒤바꿔 할 때를 말한다.
사기종인 (舍己從人)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타인의 선행을 본떠 행함.
사기충천 (士氣衝天)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음.
사농공상 (士農工商) 선비·농부·장인·상인의 네 가지 신분을 아울러 일컫는 말.
사단취장 (捨短取長) 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취함.
사려분별 (思慮分別) 사려는 여러 가지로 생각을 짜내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
사마난추(駟馬難追) 駟馬는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로써 엄청나게 빠른 것을 비유한다. 입조심을 하라는 뜻
사면초가 (四 面 楚 歌)
四:넉 사. 面:낯(대할) 면.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곧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받음의 비유.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 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時不利兮 不逝(시불리혜추불서)]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 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사면춘풍 四面春風 두루 춘풍. 누구에게나 모나지 않게 다 좋도록 처세하는 일. 또, 그런 사람. 팔방미인( 八方美人).
사문난적(斯文亂賊) 이단적인 언사로 유교를 어지럽히거나 유학의 본류를 어그러뜨리는 글을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
사반공배 (事 半 功 倍))
事:일 사. 半: 반 반. 功:공 공. 倍:배 배
일은 반만 하고 공은 배로 세움. 포악한 군주 뒤에 선정을 베풀면 사반공배 격이 된다는 말.
무력으로 여러 나라를 제압하면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은 패자(覇者)다. 패자는 반드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은나라의 탕왕은 70리, 주나라의 문왕은 백리 사방 밖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덕으로 남을 복종시킨 탓이다. 그러므로 《詩經》에,
서에서 그리고 동으로부터
남이나 북이나 가릴 것 없이
고개 숙여 모두 무릎을 꿇다
이렇게 노래한 것은 그것을 말함이다. 즉 어려운 일을 당하여 어진 정치를 하면 공은 반드시 배가 된다.
전국시대에 초(楚)나라가 진(陳)나라를 공격했다. 그러자 오나라에서 구원병을 보냈다. 초와 오는 30리 간격을 두고 서로 대치했다. 비가 왔다. 처음엔 부슬거리던 빗발은 10여일이 지나서야 밤하늘에 별빛을 그려냈다. 초나라 좌사 이상이 자기(子期)장군에게 말했다.
"장군, 비가 열흘이나 내렸으니 군대와 장비가 정돈되었을 것입니다. 분명 오나라 군대가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즉시 방비의 진용을 짰다. 과연 오나라의 군병이 밀고 왔다. 그들은 초나라가 방비의 진용을 갖췄다고 보았는지 즉시 물러갔다. 다시 좌사가 말했다.
"그들은 먼길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다 그들은 60리를 가야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60리라, 하면?"
"우리는 30리만 가면 쉴 수 있습니다."
"30리?"
"그렇습니다. 장군, 우리가 가서 기다리면 됩니다. 그들은 60리를 오면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면 됩니다. 분명 사반공배(事半功倍)가 될 것입니다."
자기 장군은 그 말대로 했다. 여지없이 좌사의 계책은 들어맞아 오나라 군대를 크게 깨뜨렸다.
사분오열 (四 分 五 裂)
四:넉 사. 分:나눌 분. 五:다섯 오. 裂:찢어질 렬
넷으로 나누어지고 다섯으로 분열됨. 힘이나 세력이 여러 가닥으로 분산되는 것을 말함
《戰國策(전국책)》은 주나라 원왕으로부터 진시황에 이르는 유세가들의 변론을 나라별로 기술한 책이다. 이 책에는 '소진(蘇秦)이 합종을 설하다'와 '장의(張儀)가 연횡을 설하다'라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위책(魏策)>에 의하면 소진이 조나라를 위해 합종을 하려고 위나라를 찾아와 양왕을 설득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왕의 영지는 남으로는 홍구에서 무소의 땅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만리의 장성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북으로는 하외에서 산조에 이르는 땅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방 천리에 이르는 땅은 민가가 즐비하고 우마를 사육할 여지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연횡가(連橫家:장의와 같음)가 왕을 속이고 포악한 진나라와 외교를 맺게 했습니다.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면하여 진을 섬기고 스스로 동번이라 이름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나라의 모든 제도를 답습하고 그대로 이어받고자 합니다.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닙니까. 월왕 구천은 지쳐 있는 3천의 병졸로 오왕 부차를 간수에서 사로잡았고, 주나라의 무왕은 3천명의 병졸과 3백승의 전차로 은나라 주왕(紂王)을 목야에서 깨뜨렸습니다. 지금 대왕의 병력은 구천이나 무왕의 병력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런데도 진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대신들도 진나라를 섬기라고 하는 작자들은 모두 간신 모리배들입니다. 대왕마마, 초근(草根)은 어릴 때에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론은 6국이 종친을 하나로 합하면 강대국인 진나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로 연횡하지 않으면 4분5열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양왕은 무릎을 치며 즐거워했다.
"나는 무례한 놈이지만 이렇듯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대는 조왕의 가르침을 내게 알렸다. 나는 삼가 국운을 그대에게 걸고 따르겠노라!"
사불급설 駟不及舌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마차라도 혀의 빠름에 미치지 못한다 함이니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사불범정 邪不犯正 요사스러운 것이 바르고 정당한 것을 범하지 못한다는 말로 정의가 이긴다는 뜻.
사불여의(事不如意)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
사사오입 (四捨五入) 반올림
사상누각 砂上樓閣 모래 위에 지은 누각. 어떤 일이나 사물의 기초가 견고하지 못함을 이름.
사생관두 死生關頭 죽기 살기 결판이 날 위대한 고비.
사생취의 捨生取義 목숨을 버리고 의를 좇음.
사서삼경 (四 書 三 經 )
[넉 사/ 쓸 서/ 석 삼/ 날 경 ] : 유학(儒 學 )의 대표작인 경전(經 傳 ). 사서(四 書 )는 논어(論 語 )·맹자(孟 子 )·대학(大 學 )·중용(中 庸 )을 말하고, 삼경(三 經 )은 시경(詩 經 )·서경(書 經 )·주역(周 易 )을 말함. 삼경에 예기(禮 記 )·춘추(春 秋 )를 합하여 오경(五 經 )이라 함.
사서지경(四書之經) 사서의 경전. 사서는 논어·맹자·대학·중용의 네 가지 책.
사석성호(射石成虎)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것.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화살이 꽂혔다는 말.
사석위호(射石爲虎)
射:쏠 사. 石:돌 석. 爲:할 위. 虎:범 호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말로,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뜻.
이광은 양가의 자제로서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궁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신체가 장대하고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다. 그가 활쏘기에 능한 것도 선천적인 것으로서, 그의 자손이나 남들이 아무리 궁술을 배워도 이광에게 미치지는 못하였다. 이광은 말재주가 없었으며 말수도 적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땅에 줄을 그어 진형을 그리거나 활을 쏘아 원근을 비교하여 지는 자에게 벌주를 먹였다. 그의 활 쏘는 법은 적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수십보 이내라도 활시위 소리와 동시에 적이 쓰러졌다. 그래서 그는 병사를 거느리고 작전을 수행할 때 자주 곤경에 빠져 고생하였으며, 맹수를 쏘는 경우에도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오로지 활쏘기를 낙으로 삼아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광은 청렴하여 상을 받으면 항상 그의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음식은 병졸들과 같은 것을 먹었다. 이에 병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일찍이 농서, 북지, 안문, 대군, 운중의 태수를 지냈는데, 어느 곳에서나 용감히 전투에 임하여 명성을 드높였다. 이광은 특히 흉노와의 싸움에서 남다른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선우와의 싸움에서 많은 부하를 잃고 적에게 생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기도 하였다. 이때 형리는 그를 참수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판결을 내렸는데, 속죄금을 내고 평민이 되었다. 이광은 그후로 몇 년 동안이나 집에 은거하며 사냥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가 다시 침입하여 요서군의 태수를 죽이고 한안국 장군을 격파하였다. 그리하여 천자는 이광을 다시 불러들여 우북평군 태수로 임명하였다. 이광이 우북평군에 부임하자 흉노는 이 소식을 듣고 한나라의 '비장군'이라고 부르며 수년 동안 감히 우북평군을 침입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이광이 사냥하러 갔다가 풀 속의 돌을 호랑이로 보고 화살을 쏘았더니 명중하여 화살촉이 깊숙이 박혔는데(射石爲虎),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쏘아 보았으나 끝내 화살촉은 다시 박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광은 부임한 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친히 나가 쏘아 잡았다
사숙 (私 淑)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배우거나 따름.
사시춘풍 (四 時 春 風) 언제나 누구에게나 좋은 낯으로 대하고 무사태평한 사람을 뜻함.
사실무근 (事 實 無 根) 뿌리도 잎도 없는 것. 전혀 사실에 근거 하고 있지 않은 것.
사승습장 (死 僧 習 丈) 죽은 중의 볼기를 친다는 말로 대들 힘이 없는 사람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위엄을 부린다.
사양지심 (辭 讓 之 心)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仁의 근본이다.
사여귀가 (死 如 歸 家) 죽음을 마치 집에 가는 것처럼 담담히 받아들임
사이비(似 而 非)
[似:같을 사. 而:어조사 이. 非:아닐 비]
①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름. ② 진짜같이 보이나 실은 가짜임.
전국 시대, 아성(亞聖)으로 불리던 맹자에게 어느 날 만장(萬章)이라는 제자가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을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을 가리켜 '향원[鄕原:지방의 토호(土豪)]는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들어서 비난할 것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으나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 또 집에 있으면 충심(忠心)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 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는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자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느니라.
'사이비한 것[似而非者]을 미워한다…‥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아악(雅樂)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사이비자(似 而 非 者)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으나 실지로는 아주 다른 가짜.(=似而非)
사이후이(死 而 後 已) 어떤 사업을 함에 있어서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만둔다. 그만큼 뜻이 굳음을 말한다.
사인여천(事 人 如 天) 東學思想으로 사람 대하기를 하늘같이 떠받들라는 말.
사자후(獅 子 吼)
[獅:사자 사. 子:아들 자. 吼:울 후]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이란 뜻으로, 크게 부르짖어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이르는 말.
불가(佛家)에서 부처님의 위엄스런 설법(說法)을 말함. 사자가 포효해서 백수를 놀라게 하는 위력에 비유해서 하는 말로, ① 크게 열변을 토하는 것. ②질투심이 강한 여자가 남편에게 암팡스럽게 욕설을 퍼붓는 것의 비유
①《전등록(傳燈綠)》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는 태어나자 곧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7보를 돌더니 사방을 바라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우주 가운데 나 하나만이 존귀하다)"이라고 말했다.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한 석가의 말을 "사자후"라고 표현했다.
"모니불(牟尼佛)이 도솔천 욕계육천(慾界陸天)의 넷째 하늘이 태어나서 손을 나누어 천지를 가리키며, 사자후의 소리를 들었다."
《유마경(維摩經)》에도 석가의 설법이 당당하고 사자후와 같으며, 마치 천둥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듣는 이의 가슴에 스며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설법하여 두려움이 없음이 사자후와 같다. 그 강설하는 바, 곧 우레가 진동함과 같다."
이처럼 사자후라는 말을 석가의 설법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고부터는 일반적으로 열변을 토하는 것을 사자후라고 하게 되었다.
②또 질투심이 강한 여자가 체면 불고하고 남편에게 고함을 지르는 것도 사자후라 한다.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친구인 오덕인(吳德仁)에게 보낸 시 가운데에 역시 친구인 진계상(陳季常)의 하동(河東) 유씨(柳氏)가 남편을 매도하는 소리를 표현하여 사자후라 한 것이 그 시초이다.
龍丘居士亦可憐(용구거사역가련) 용구의 가사 또한 가련하다
談空說有夜不眠(담공설유야불면) 있는 일 없는 일 얘기하며 밤을 새는데
忽聞河東獅子吼(홀문하동사자후) 갑자기 하동의 사자후 소리가 들려온다
柱杖落水心茫然(주장낙수심망연) 지팡이도 손에서 떨어지고 마음이 망연하도다
용구의 거사란 진계상을 말한다. 그는 열렬한 불교도로 동료를 모아 밤을 지새우며 공(空)이니 유(有)니 하고 논하고 있었다. 처는 하동 유씨의 딸로 이를 못마땅히 여겨 큰소리로 남편에게 대들었다. 그러자 진계상은 간이 콩알만해져서 진리도 간데없고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도 놓쳐 버리고 그저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할 따름이라는 뜻의 희시(戱詩)이다.
사족 (蛇 足)
蛇:뱀 사. 足:발 족.
뱀의 발. 곧 ① 쓸데없는 것. 무용지물(無用之物)의 비유. ② 있는 것보다 없는 편이 더 나음의 비유. ③ 공연히 쓸데없는 군일을 하다가 실패함의 비유.
전국 시대인 초(楚)나라 회왕(懷王)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 잔을 내놓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신다면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세."
하인들은 모두 찬성하고 제각기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 들고 말했다.
"이 술은 내가 마시게 됐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하인이 그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 '사족'은 제(齊)나라를 방문한 진(秦)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이 제나라 민왕( 王)의 요청으로, 초나라 재상 소양(昭陽)을 만나 제나라에 대한 공격 계획을 철회하라고 설득할 때 인용한 이야기임.
※사족(蛇足)을 화사첨족(畵蛇添足)이라고도 한다. 畵蛇는 뱀을 그리는 것. 添足은 발을 덧붙여 그리는 것. 뜻은 蛇足과 같다. 화룡점정(畵龍點睛)고는 정반대되는 말이다.
사 지(四 知)
四:넉 사. 知:알 지
하늘과 땅과 너와 내가 안다. 즉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뜻
사지(四知)라는 말은 천지(天知)·지지(地知)·아지(我知)·자지(子知)이다. 이 넷을 간추려 '사지(四知)라고 하는데 이것은 천지간에 비밀이 없음을 뜻한다.
후한(後漢)시대의 조정은 환관들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들은 황제 위에 군림하며 권도를 무자비하게 휘둘러 댔다. 정치와 관료가 문란하고 부패했던 시대였으니 백성들의 살림이 어려웠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때라고 하여 맑은 선비나 관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6대 안제 때에 해박한 지식과 청렴결백으로 출중한 인격의 소유자인 양진(楊震)이 그런 인물이다.
그는 당시 사람으로부터 관서공자(關西公子)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청렴결백했다. 어느 때인가 양진이 동래군(東萊郡) 태수로 부임할 때였다. 임지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창읍(昌邑)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게 되었다. 객사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을 때에 그 지방 현령으로 있는 왕밀(王密)이라는 사람이 밤늦게 찾아왔다.
그가 형주자사로 있을 때, 왕밀을 발탁한 일이 있었다. 그의 천거로 인해 왕밀은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둘은 지난날의 여러 얘기들을 나누며 밤이 깊어진 것까지 잊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에 왕밀은 황금 열 냥을 꺼내 양진의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갑자기 준비한 것이라 변변찮습니다. 약소하지만 시생의 성의로 아시고 받아 주십시오."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는데, 그대는 나라는 인간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이게 무슨 짓인가?"
"깊은 밤의 일이니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발 받아 주십시오."
"그 무슨 소리. 자네와 내가 알고 하늘과 땅이 알고 있잖은가.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왕밀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사지무책 (思 之 無 策) 아무리 생각하여도 별 방법이 없다.
사직지신(社 稷 之 臣) 사직(왕조)을 지탱할 만한 신하.
사 취(私聚)
私:사사로울 사. 聚: 모을 취
사사로이 모음. 자기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사로이 재물을 모으는 것을 말함
동탁(董卓)은 감숙성 임조 사람이다. 그는 강궁(强弓)을 잘 쏘고 완력이 그만하여 강(羌)과 흉노를 상대로 공을 세워 인망을 떨쳤다. 이때 동탁이 천자를 옹위하고 돌아오자 그 세력은 낙양을 위압할 정도였다고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동탁은 진번·두무 등 당고의 화로 희생된 당인들의 명예와 직위를 회복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동탁은 스스로 승상이 된 후 다시 상국이 되었다. 전한(前漢)을 건국한 공신 소하가 상국이 된 이래 전한과 후한을 통해 상국이 된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나 동탁은 금기까지 무시하며 자신이 정권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도읍의 귀족 · 부호의 저택을 마음대로 불지르고 재물과 부녀자를 약탈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날이 갈수록 동탁의 잔학상은 그 도를 높여 갔다. 그는 자신의 세력이 강해지자 서방의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이동을 감행했다.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으며 부호의 재물을 약탈하는 등의 만행을 거침 없이 저질렀다.
동탁이 상국이 되자 맨 처음 서둘렀던 것은 후일을 대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것은 미라는 땅에 마을 하나를 만들고 그곳에 사적으로 곡식을 모았다(私積聚穀)
"천하를 도모하다 만년에는 이곳으로 들어와 지키리라."
그러나 여포(呂布)에게 죽임을 당한 후 시체를 시장에 널어놓으니 그의 꿈은 아침 이슬처럼 덧없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살이 통통하게 찐 동탁의 배꼽에 큰 초를 세우고 불을 질렀는데 며칠간 탔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삼국지에 전한다.
사친이효(事 親 以 孝) 효도로 부모를 섬김.
사통오달 (四 通 五 達 )
[ 넉 사/ 통할 통/ 다섯 오/ 통달할 달 ] : 길이나 교통망·통신망 등이 사방으로 막힘없이 통함.
사통팔달(四通八達)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통해 있어 교통이 편리한 것. 도로나 지하철 등 교통망이 발달 된 모습.
사필귀정 (事 必 歸 正 )
[일 사/ 반드시 필/ 돌아갈 귀/ 바를 정 ] :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임시로 기승을 부리는 것 같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마침내 올바른 것이 이기게 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해동포(四海同胞)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형제.
사해형제(四海兄弟) 사방이 형제라고 풀이되며 마음과 뜻을 같이 한다면 누구나 형제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
사회부연(死灰復燃)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 혹은 곤경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후약방문 (死後藥方文) 소렴(小殮) 후에 약 공론. 때가 이미 늦었음을 이르는 말.
산고수장 (山高水長) 인자(仁者)나 군자(君子)의 덕이 길이 길이 전함을 뜻하는 말이다.
산궁수진(山窮水盡) 막다른 골목의 경우.
산류천석 (山溜穿石) 졸졸 흐르는 냇물이 바위를 뚫는다 함이니 끊임없이 열심히 하면 무슨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음을 뜻한다.
산림처사(山林處士) 관직이나 세속을 떠나 산 속에 파묻혀 글이나 읽고 지내는 사람.
산상수훈(山上垂訓) 예수가 산꼭대기에서 행한 설교. 예수의 사랑의 윤리가 표현되어 있음
산자수명 (山 紫 水 明 ) : 산은 단풍 들어 붉고 물은 맑다. 아름다운 자연.
산전수전 (山 戰 水 戰 )
[ 뫼 산/ 싸울 전/ 물 수/ 싸을 전 ] : 산에서 싸우고 물에서 싸웠다는 뜻으로, 세상 일에 경험이 많음을 말함.
산진수궁 山盡水窮 산골짜기가 더 나갈 수 없이 다 되고 물이 막혔다 함이니 아주 막다른 지경에 부딪쳐 나갈 길이 막혔다는 뜻이다.
산천의구 山川依舊 산과 강은 옛 모양 그대로 변함이 없음.
산해진미 (山 海 珍 味 )
[ 뫼 산/ 바다 해/ 보배 진/ 맛 미 ] : 산과 바다에서 나는 물건으로 만든 맛좋은 음식.=수륙진미(水陸珍味).
살생유택(殺生有擇) 산 것을 가려서 죽임.
살신성인 (殺 身 成 仁 )
殺:죽일 살. 身:몸 신. 成:이룰 성. 仁:어질 인.
몸을 죽여 어진 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 또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말.
이 말은 춘추 시대, 인(仁)을 이상의 도덕으로 삼는 공자(孔子)의 언행을 수록한《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志士仁人(지사인인)]
삶을 구하여 '인'을 저버리지 않으며 [無求生以害仁(무구생이해인)]
스스로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 [有殺身以成仁(유살신이성인)]
공자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인'의 도는 제자인 증자(曾子)가《논어(論語)》<이인편(里仁篇)에서 지적했듯이 '충(忠)과 서(恕)'에 귀착한다.
부자(夫子:공자에 대한 경칭)의 도는 '충''서'일 뿐.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부자지도 충서이이의)]
'충'이란 자기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정신이고, '서'란 '충'의 정신을 타인에게 미치게 하는 마음이다. 증자는 공자의 '인'이 곧 이 '충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주] 증자: 춘추 시대 의 유학자(儒學者). 이름은 삼(參), 자(字)는 자여(子與). 높이어 증자(曾子)라고 함.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으나 효성이 지극하고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온후 독실(溫厚篤實)해서 죽을 때까지 몸에 작은 상처 하나 남기지 않았다고 함. 공자의 덕행과 학설
살풍경(殺風景)
殺:죽일 살. 風:바람 풍. 景:경치 경
경치를 파괴하는 행위. 도덕적인 기본 질서를 무시하거나 꼴불견의 행위를 하는 경우, 또는 그런 사람
당나라 후기에 유미주의(唯美主義) 정신으로 난해한 시를 쓴 이상은의 《雜纂(잡찬)》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눈살를 찌푸리게 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자체와 인간의 행위는 별개의 것이라 했다. 선행은 당연히 칭찬을, 악행은 비난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행위자는 악인이든 선인이든 간에 그 행한 경우대로 존경을 받거나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상은은 《잡찬》에서 여섯 가지의 살풍경(殺風景)을 제시했다.
첫째는 청천탁족(淸泉濯足)이다. 약수터에서 발을 씻는행위다.
둘째는 화상건군(花上乾裙)이다. 아름다운 꽃 위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행위다.
셋째는 배산기루(背山起樓)이다. 산을 등지고 집을 지어 산세를 조망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다.
넷째는 분금자학(焚琴煮鶴)이다. 거문고를 불쏘시개 삼아 학을 삶아 먹는 행위다.
다섯째 대화상차(對花嘗茶)이다. 꽃을 감상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고 차만 홀짝거리는 행위다.
여섯째 송하갈도(松下喝導)이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소나무 아래에서 쉴 때에 불현듯 사또 행차를 알리고 지나가는 행위다.
다시 말해 살풍경은 한마디로 은근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가위질해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간초가(三間草家) 세 간이 되는 초가. 썩 작은 집.
삼강 三綱 '三綱'은 君臣·父子·夫婦 사이에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삼강오륜(三綱五倫) 유교에 있어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
삼고지례(三顧之禮) 유비가 제갈양의 초옥을 세 번 찾아가 간청하여 제갈양을 군사로 맞아들인 일화에서 나온 말
삼고초려(三顧草廬)
三:석 삼. 顧:돌아볼 고. 草:풀 초. 廬:초막 려.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간다는 뜻. 곧 ①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진심으로 예를 다함[三顧之禮] ② 윗사람으로부터 후히 대우 받음의 비유.
후한 말엽, 유비[劉備:자는 현덕(玄德), 161∼223]는 관우[關羽:자는 운장(雲長), ?∼219] 장비[張飛:자는 익덕(益德), 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軍師)가 없어 늘 조조군(曹操軍)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에게 군사를 천거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伏龍)이나 봉추(鳳雛)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후 제갈량[諸葛亮:자는 공명(孔明), 181∼234]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저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 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유비는 그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三分)하고 한실(漢室)의 맥을 잇는 촉한(蜀漢)을 세워 황제 [소열제(昭烈帝), 221∼223]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이 되었다
삼년불비 우불명 (三年不飛又不鳴)
三:석 삼. 年:해 년. 不:아니 불. 飛:날 비. 又:또 우. 鳴:울 명.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춘추시대 초엽, 오패(五覇 )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B.C. 613∼591)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酒色)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어서 내보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亂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전에 나아가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오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 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 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삼라만상 森羅萬象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수많은 현상.
삼령오신(三令五申)
三:석 삼, 令:명령할 령, 五:다섯 오, 申:펼 신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을 거듭 말하다. 같은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명령하고 계고(戒告)하다
춘추시대 말엽 吳(오)나라와 越(월)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병법가 孫武(손무)가 쓴 '孫子(손자)'를 읽어 본 吳王(오왕) 합려는 감탄한 나머지 저자를 초빙했다. 오왕이 물었다.
"여기 있는 궁녀들을 가지고 당신의 병법을 시험 삼아 보여줄 수 있겠소?"
손무가 가능하다고 대답하자 오왕은 궁녀 180명을 선발하여 손무에게 훈련시키도록 했다. 손무는 두 후궁을 양 진영의 대장으로 삼아 훈련에 들어갔다. 훈련의 기본인 制式訓鍊(제식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 요령을 몇 차례 거듭 설명한 손무는 궁녀들을 향해 알겠느냐고 묻자 입을 모아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막상 훈련을 시작하여 손무가 "좌로 돌앗"하고 號令(호령)을 하자 궁녀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깔깔거리고 웃기만 할 뿐 아무도 호령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손무는 자신을 책하여 "호령이 철저하지 않음은 지휘관인 나의 책임"이라면서 다시 한번 거듭해서 설명해 주었다(三令五申). 그리고 나서 다시 "우로 돌앗"하고 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궁녀들은 여전히 자지러지게 웃을 뿐이었다. "호령의 내용을 훤히 알면서 이에 따르지 않는 것은 두 대장의 책임이다" 이렇게 말한 손무는 두 후궁을 斬首(참수)하려고 했다. 오왕은 깜짝 놀라 죽이지 말라고 간청했으나 손무는 듣지 않았다.
"저는 전하로부터 장군으로 임명 받았습니다. 군대에서는 장군의 권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휘를 위해서는 왕명도 듣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단호하게 말하고 난 뒤 그는 두 후궁의 목을 가차없이 베어버렸다. 그런 다음 새로이 대장을 임명하고 다시 호령했다. 이번에는 전원이 진지한 얼굴로 정연하게 호령에 따랐다.
三令五申(삼령오신)에도 듣지 않으면 秋霜(추상)같은 제재가 따라야 한다.
삼마태수(三馬太守) 청백리을 가리킴
삼매 三昧 잡념이 없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쏟는 일심불란의 경지. = 삼매경(三昧境).
삼방순욱(三房荀彧) 조조가 순욱을 세 번 방문한 끝에 그를 얻었다는 데에서 비롯된 고사성어.
삼복백규(三復白圭)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는 말로, 말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삼불거 三不去 돌아갈 친정이 없을 때, 아내가 부모의 삼년상을 치렀을 때, 집안을 일으켰을 때. 이를 어기면 태형 80대이다.
삼불혹 三不惑 술과 여자와 재물에 대한 욕심은 정도에서 벗어나기 쉬우니 이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삼삼오오(三三五五) 셋 또는 대여섯이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함께 일을 하는 모양.
삼생유행(三生有幸) 삼생의 행운이 있다는 말이다.
삼성오성 (三 省 吾 身 ) : 자신에 대해 스스로 하루 세 가지로 반성하다.
삼세지습지우팔십 三歲之習至于八十 세 살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삼순구식 三旬九食 한 달에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다는 뜻으로, 가세가 지극히 가난함을 이르는 말.
삼십육계 (三十六計) 곤란할 때는 주저하지 말고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다.(=檀公三十六計走爲上策)
삼십육계 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
十:열 십. 六:여섯 륙. 計:꾀할 계. 走:달아날 주. 爲:할 위. 上:위 상.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에서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란 뜻으로, 일의 형편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남북조 시대, 제(齊:南齊, 479∼502)나라 5대 황제인 명제(明帝) 소도성(蕭道成)의 종질(從姪:사촌 형제의 아들)로서 고제의 증손(曾孫)인 3대 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簒奪)한 황제이다. 그는 즉위 후에도 고제의 직손(直孫)들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잡아 죽였다.
이처럼 피의 숙청이 계속되자 고조 이후의 옛 신하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개국 공신인 회계(會稽) 태수 왕경측(王敬則)의 불안은 날로 심해졌다. 불안하기는 명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 장괴(張壞)를 평동(平東)장군에 임명하여 회계와 인접한 오군(五郡:강소성 내)으로 파견했다. 그러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읍 건강(建康:南京)을 향해 진군하여 불과 10여 일 만에 건강과 가까운 흥성성(興盛城)을 점령했다. 도주에 농민들이 가세함에 따라 병력도 10여 만으로 늘어났다.
한편 병석의 명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패전 보고서를 받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단장군(檀將軍)의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너희 부자(父子)에게 남은 건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이 말은 '단장군이 위(魏:北魏)나라 군사와 싸울 때 도망친 것을 비방한 것이다'라고 주석을 붙인 책도 있다.
그 후 관군에게 포위 당한 왕경측은 난전중(亂戰中)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주] 단장군 : 송(宋:420∼479)나라 무제(武帝:420∼422)의 건국(建國)을 도운 명장
삼십이립(三十而立) 孔子가 한 말로 나이 삼십에 이르러 비로소 학문상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
삼악삼토(三握三吐)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을 때 손님이 오면 먹던 밥은 뱉고, 감던 머리는 쥐고 바로 나가 마중함
삼여지공(三餘之功) 독서하기에 가장 좋은 ‘겨울, 밤, 음우(陰雨)’를 일컬음.
삼위일체(三 位 一 體) 세 가지의 것이 서로 연관, 통합하여 목적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일.
삼인성호 (三 人 成 虎)
三:석 삼. 人:사람 인. 成:이룰 성. 虎:범 호.
세 사람이 짜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진실처럼 곧이듣는다는 말.
전국 시대, 위(魏: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龐 )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 방총 :《韓非子》에는 방공(龐恭)이라고 되어 있고《戰國策》에는 방총이라고 되어 있음.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가는 곳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본받아 배울 만한 사람이 있다.
삼일유가 三日遊街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동안 온 거리로 돌아다님
삼일천하 三日天下 짧은 동안 정권을 잡았다가 곧 실패함을 이름. 영화를 누리는 시기는 매우 짧은 것.
삼종지도(三從之道)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곧 어버이, 남편, 아들을 좇는 일.
삼종지의(三從之義) 여자가 지켜야 도리. 어려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음.
삼척동자 三尺童子 신상이 석자에 불과한 자그마한 어린애. 어린 아이.
삼천지교 三遷之敎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집을 세 번 옮긴 일을 이름. = 맹모삼천(孟母三遷).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리나라에서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
삼한사온(三寒四溫) 사흘 가량 추운 날씨가 계속되다가, 나흘 가량 따뜻한 날씨가 계속하는 주기적인 기후 현상.
상가지구(喪家之狗)
喪:초상 상. 家:집 가. 之:어조사 지. 狗:개 구
상갓집 개. 초라한 모습으로 먹을 것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는 사람
공자(孔子)가 정(鄭)나라에 갔을 때였다. 우연한 일로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헤어지게 되었다. 공자는 동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제자들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길 가던 정나라 사람이 보았는데, 공자의 제자들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글세, 그 사람이 당신네 스승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이마는 요(堯)임금과 비슷하고 목덜미는 고요(순과 우를 섬긴 어진 재상)시 같았고 어깨는 자산(공자보다 먼저 나온 정나라의 재상)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허리께에서 그 아래로는 우에 미치지 못함이 세 치가 되고 지쳐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상갓집의 개(喪家之狗)와 같습디다."
"그래요? 그렇다면 틀림없는 우리 스승님이십니다."
제자들이 동문으로 달려가니 과연 거기에는 공자가 있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정나라 사람의 말을 공자에게 전했다. 빙그레 웃은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모습에 대한 비유를 전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를 상갓집의 개라고 한 것만은 적절한 표현 같구나."
공자는 이렇게 떠돌아 다녔지만 그를 인정해 주는 군주를 만나지는 못했다. 흉중에 품고 있는 사상을 온전히 펼치지도 못한 채 마치 상갓집 개처럼 천하를 떠돌아다니다 노나라로 돌아갔다.
상궁지조 (傷 弓 之 鳥)
傷:상할 상, 弓:활 궁, 之:어조사 지, 鳥:새 조
활에 다친 새. 화살을 한번 맞아 혼이 난 새처럼 어떤 일로 크게 놀란 사람은 하찮은 일에도 두려워함
전국(戰國)시대 말엽 여섯 나라가 합종(合縱)하여 강대국 진(秦)나라와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조(趙)나라 왕은 위가(魏加)라는 신하를 초(楚)나라에 보내어 초나라 승상 春申君과 군사문제에 대한 협의를 하게 했다. 춘신군을 만난 위가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귀국에는 쓸 만한 장군이 있습니까?"
"있고 말고요. 우리는 臨武君을 총지휘관으로 내정하고 있지요"
이말을 들은 위가는 그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임무군은 진나라와 싸워 참패한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진나라를 두려워한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가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넌지시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활쏘기에 비유해서 한 말씀 드리지요"하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옛날 위나라에 경영이라는 明弓이 있었죠. 어느날 임금과 같이 있을 때 기러기 한 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화살을 메기지 않은 채 시위를 당겼죠. 그런데 맨 뒤에 날아가던 기러기 한마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임금이 그 연유를 묻자 명궁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떨어진 놈은 전에 저의 화살을 맞아 다친 적이 있는 기러기(傷弓之鳥)죠.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우는 소리가 유난히 슬펐고 맨 뒤에 가까스로 따라가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시위만 당겼는데도 그 소리에 놀라 높이 날려다가 상처가 터져서 떨어진 거죠. 그러니까 진나라에 혼이 난 적이 있는 임무군은 진나라에 대항해 싸우는 장군으로 기용하는 건 적절치 못한 것 같군요."
상덕돈화(象德敦和) 큰 덕은 화를 돈독히 한다.
상마지교(桑麻之交) 뽕나무와 삼나무를 벗 삼아 지낸다. 즉 전원에 은거하여 농군들과 사귀어 지낸다는 말
상분(嘗糞)
嘗:맛볼 상. 糞:똥 분
변을 맛봄.①지극한 효성. ②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에게 아첨하는 것
① 옛날에는 孝를 오륜(五倫)의 으뜸이자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여겼던 만큼 이에 관한 설화도 많다.
남북조(南北朝)때 유검루(庾黔縷)는 이름난 효자였다. 그의 효행에 감동해 평소 출몰하던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그가 잔릉(棧陵)의 현령(縣令)으로 있을 때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즉시 관직을 파하고 돌아갔다.
"병세(病勢)를 알기 위해서는 변의 맛을 봐야 하오."
의원(醫員)의 말에 검루는 즉시 손가락으로 변을 찍어 맛보았다. 마침 아버지는 이질에 걸려 심한 설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달고 매끄러운 것이 여간 심상치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매일 밤 북진(北辰·북극성)에 빌었다.그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소리가 들려왔다.
"수명은 다했다. 다만 너의 효성을 봐서 이 달말까지만 연장해 주겠다."
과연 아버지는 그달 그믐에 죽었으며 검루는 삼년간 시묘(侍墓)했다. 이때부터 상분(嘗糞)은 지극한 효성을 뜻하게 되었다.
②상분(嘗糞)은 또한 「아첨의 극치」를 뜻하기도 한다.
당(唐)나라에 곽홍패(郭弘覇)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시어사(侍禦史)라는 벼슬에 있을 때였다. 상관인 대부(大夫) 위원충(魏元忠)이 병으로 앓고 있었다. 상관이 병으로 몸져 누워 있자 동료들은 빠짐없이 병문안을 갔다. 그런데 곽홍패만은 나중에 혼자 몰래 병문안을 갔다. 그가 상관에게 말했다.
"대변의 즙을 보여 주십시오."
이윽고 가져온 대변 즙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달면 병은 낫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님의 것은 씁니다. 그러니 곧 쾌차하실 겁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위원충은 그의 이 낯두꺼운 아첨에 배알이 뒤틀렸다. 그 후 병이 나아 조정에 나가자, 위원충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사실을 폭로해 버렸다.
상사병(相思病)
相:서로 상. 思:생각 사. 病:병들 병
사랑을 이루지 못해 생긴 병이라는 뜻으로, 남녀 사이에 서로 애틋하게 생각하는 병
중국 춘추 시대의 송(宋)나라는 강왕(康王)의 포악으로 인해 망하고 말았다. 이 강왕은 그의 뛰어난 용맹으로 한때 영토를 확장하는 등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그래서 그런지 강왕은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교만함을 가지고 분수에 벗어난 짓을 마구 하였다.
강왕은 술로 밤을 새우고 여자를 많이 거느리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이를 간하는 신하가 있으면 모조리 사형에 처했다.
강왕의 시중에 한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 하씨(河氏)가 절세미인(絶世美人)이었다. 우연히 그녀를 보게 된 강왕은 하씨를 강제로 데려와 후궁으로 삼았다.
한빙이 원망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자 강왕은 한빙에게 죄를 씌워 변방으로 보내 낮에는 도둑을 지키는 군사가 되고, 밤에는 성을 쌓는 인부가 되는 고된 벌을 내렸다.
아내 하씨는 강왕 몰래 남편 한빙에게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其雨淫淫 비는 그칠 줄 모르고
河大水沈 강은 크고 물은 깊으니
日出當心 해가 나오면 맞겠다
그런데 이 편지는 남편이 아닌 강왕의 수중에 들어갔다. 소하(蘇賀)라는 자가 편지를 해석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찌할 길 없으나 방해물이 너무 많아 만날 수 없으니 죽고 말 것을 하늘에 맹세합니다는 내용입니다."
얼마 후 한빙은 자살했다. 그러자 하씨는 자신의 옷을 썩게 만들었다가 성 위를 산책하는 척하다 몸을 던졌다. 신하들이 급히 옷소매를 잡았으나 소매만 끊어지고 하씨는 떨어졌다. 소매에는 이런 유언이 적혀 있었다.
"임금은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나는 죽는 것을 다행으로 압니다. 저의 시체를 한빙과 같이 묻어 주십시오."
노한 강왕은 고의로 무덤을 서로 떨어지게 했다. 그러나 밤 사이에 두 무덤에서 각각의 나무가 자라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뿌리가 서로 얽히고 가지가 맞닿았다. 이른바 연리지(連理枝)다. 그리고 나무 위에 한 쌍의 원앙새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한다.
송나라 사람들은 이를 슬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했는데, 相思病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상사불망(相思不忘) 서로 그리워하여 잊지 못함.
상산구어(上山求魚)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다. 당치 않은 데 가서 되지도 않는 것을 원한다는 말이다.
상산사세(常山蛇勢)
常:항상 상. 山:뫼 산. 蛇:뱀 사. 勢:형세 세
상산에 사는 뱀과 같은 형세. 군대가 뭉쳐 있을 때엔 한 개의 유기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또는 긴밀한 문장을 뜻하기도 한다.
상산(常山)에는 솔연(率然)이라는 뱀이 살고 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잠깐 사이'라는 뜻이다. 솔연이라는 뱀은 머리를 치면 꼬리로 덤비고, 허리를 공격하면 머리로 덤빈다. 병사의 움직임도 유기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는 솔거하는 병사 전체의 움직임을 상산의 뱀과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사분란한 유기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산사세(常山蛇勢)'를 설명하면서 그 예로 오월동주(吳越同舟)를 들었다. 생명의 위협에 휩쓸리다 보면 비록 껄끄러운 상대라 할지라도 함께 조력하지 안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필사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상수여수(上壽如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흐르는 물처럼 도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뜻.
상아지탑 象牙之塔 예술 지상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리생활을 떠나 전혀 정직한 예술만을 즐기는 경지.
상자→상재 上梓 글을 판목에 새긴다는 뜻으로, 글을 출판하는 일을 이름.
상전벽해 (桑 田 碧 海 ) :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됨. 세월이 흘러 세상이 몰라보게 변하다.
상중지환(桑中之歡) 임도 보고 뽕도 딴다.
상중지희(桑中之喜) 남녀간의 밀회, 음사, 姦通을 이름.
상탁하부정 上濁下不淨 윗사람이 하는 짓을 아랫사람이 본받음.
상통하달 上通下達 윗사람에게 아랫사람의 뜻이 통하고 윗사람의 뜻이 아랫사람에게 잘 전하여 지다.
상풍고절(霜風高節) 어떠한 난관이나 어려움에 처해도 결코 굽히지 않는 높은 절개.
상풍패속 傷風敗俗 퇴패한 풍속.
상하탱석(上下撐石)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곧 일이 몹시 꼬이는데 임시변통으로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
새옹지마 (塞 翁 之 馬 )
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어조사 지. 馬:말 마.
[원말]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세상 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므로,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길흉화복의 덧없음의 비유.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이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복은 화가 되고 화는 복이 된다. 그 변화의 심원(深遠)함은 헤아릴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는 말은 원(元)나라의 중 희화기(희화기)가 이 이야기에 의거하여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화복여규묵(화복여규묵:화복은 노처럼 꼬인 것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전한 문제(文帝) 때의 문장가 가의(賈誼)의 시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화와 복은 노끈처럼 번갈아 찾아 온다. 결코 한쪽만 찾아온다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생구불망(生口不網)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말
생기사귀(生寄死歸)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며 죽는다는 것은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
생로병사 生老病死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인생이 겪어야 할 네 가지 고통(苦痛).
생면부지 生面不知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 전혀 알지 못한 사람.
생불여사(生不如死) 삶이 죽음만 못 하다는 뜻으로, 아주 곤란한 처지에 있음을 말함.
생살여탈 生殺與奪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음. 대단한 권세를 이름.
생생발전(生生發展) 끊임이 활동하면서 힘차게 발전함
생자필멸 生者必滅 무릇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마침내 죽기 마련이란 뜻.
생전부귀사후문장 生前富貴死後文章 살아서는 부귀를 누리고 죽어서는 좋은 문장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는 뜻.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부터 앎.
서과피지(西瓜皮舐) 수박 겉핥기. 일이나 물건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겉만 아는 척하다. 아무 실속이 없다.
서동부언 (胥 動 浮 言) 거짓말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함
서리지탄(黍 離 之 歎) 나라가 망하여 옛 대궐 터에 기장이 익어 늘어진 것을 보고 탄식함(영고성쇠가 무상함)
서시빈목(西 施 嚬 目)
西:서녘 서. 施:베풀 시. 嚬:눈살 찌푸릴 빈. 目:눈 목.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 ②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 ③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원말]효빈(效嚬)[效:본받을 효. 嚬:눈살 찌푸릴 빈]:찡그린 것을 본뜬다.
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서시(西施)는 원래 월나라의 가난한 나무꾼의 딸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빼어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서시의 미모는 널리 소문에 퍼져 오나라 왕 부차에게 미녀를 바쳐 미인계를 쓰고자 했던 범려가 그녀를 한 번 보고 즉시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서시의 얼굴이 얼마나 예뻤던지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고자 하는 구경꾼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기 때문에 서시를 태운 수레는 길이 막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 겨우 사흘만에 궁전에 도착했는데 그녀를 본 궁전의 경비병이 그 아름다움에 빠져 기절해 버렸다.
그후 서시의 얼굴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범여는 그녀를 구경하는 데 일 전씩 돈을 내도록 했는데 돈이 산처럼 쌓였다. 그 돈은 무기를 만들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범여는 서시를 극진하게 대우해주었으며 3년 간에 걸쳐 문장을 가르치고 예절을 배우도록 하는 특수 훈련을 시켰다.
드디어 서시는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보내졌는데 부차는 첫눈에 서시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후 부차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게 했고, 특히 그녀가 뱃놀이를 좋아 했기 때문에 대운하 공사를 벌였으며 이는 오나라 국력을 낭비시키고 높은 세금과 강제노역으로 백성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서시는 오나라 왕 부차의 넋을 빼앗아 부차는 정사를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환락의 세월을 보내고 되었고 이 틈에 월나라는 무섭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시는 어릴 적부터 가슴앓이병이라는 지병이 있었는데 가슴이 아플 때마다 얼굴을 몹시 찡그렸다. 그러나 그 찡그리는 모습은 오히려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났다. 부차도 그 찡그린 모습에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였다.
이 소문이 궁중 밖으로까지 퍼지자 어느 시골의 아주 못생긴 추녀(醜女)가 자기도 찡그리면 예쁨을 받을까 하여 항상 얼굴을 몹시 찡그리고 다녔다. 그러자 인근 동네 사람들이 그 추녀의 찡그린 모습에 모두 이사를 갔다 하니 이를 효빈(效嚬:찡그린 것을 본뜬다)이라 했다. 또한 빈축(嚬蹙)을 산다'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서자서아자서 書自書我自書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곧 글을 읽되 마음은 딴 곳에 쓴다는 말.
서절구투(鼠竊狗偸) 쥐가 물건을 훔치고 개가 남의 눈을 속이는 것. 남모르게 숨어서 부당한 물건을 취하는 좀도둑을 말함.
서제막급(噬臍莫及) 기회를 잃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
석과불식(碩果不食) 큰 과일은 다 먹지 않고 후손을 위하여 남김. 즉 자신의 복을 버리고 후손의 복을 받들어 줌
석권 (席 卷)
席:자리 석, 卷:말 권
자리를 마는 것과 같이 토지 등을 공략하여 쉽게 차지함
유방의 한(漢)나라와 항우의 초(楚)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다투고 있을 때였다. 위(魏)나라를 평정한 위표는 항우로부터 위왕에 봉해졌다. 그러나 유방이 한중(漢中)으로부터 동쪽으로 진군, 황하를 건어오자 이번에는 유방편에 붙어 팽성에서 항우의 군사를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나중에 유방이 수세에 몰리다가 패하자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편에 붙었다. 기회를 보아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는 위표의 간사스러운 태도에 분개한 유방은 그를 잡아오게 했다. 결국 장군 한신에게 잡힌 위표는 유방의 명령에 따라 죽음을 당하고 만다.
또 당시에 팽월이란 자가 있었는데 유방편에 붙어서 게릴라전으로 항우의 초나라 군대를 괴롭히곤 했다. 그의 공적을 인정한 유방이 그를 양왕(梁王)으로 삼았는데 나중에 항우군을 해하(垓下)에서 격파하는데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5년 뒤 유방이 반란군토벌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데 듣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유방은 팽월에게 반란의 흔적이 있다고 덮어씌워 잡아 죽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위표와 팽월은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천리의 땅을 席卷했는데… 그 명성이 날로 높아졌지만 반란의 뜻을 품다가 결국 잡혀 죽음을 당했다. 두 사람은 지략에 뛰어나 한 몸이 무사하면 나중에 다시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여겨 포로가 되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결국 천리의 땅을 석권한 위표와 팽월은 천하를 석권한 유방의 비위를 건드려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석불반면(石佛反面) 돌부처가 얼굴을 돌린다는 뜻으로, 아주 미워하고 싫어함을 비유 하여 이르는 말.
석전경우(石 田 耕 牛) 자갈밭을 가는 소란 뜻으로, 황해도 사람의 근면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을 평한 말.
선각자(先 覺 者)
先:먼저 선. 覺:깨달을 각. 者:놈 자
먼저 깨달음을 얻은 자. 시대에 앞서서 깨달음을 얻은 자. 또는 사물의 도리를 먼저 깨달은 자
일찍이 맹자는 이윤(伊尹)의 말을 인용하여 스스로를 선각자(先覺者)라고 하였다.
"하늘이 이 세상에 사람을 내놓을 때엔 앞서 진리를 얻은 자가 나중 사람들에게 그것을 자각하도록 촉구하는 일을 맡겼다. 나는 '先覺者'다. 요순(堯舜)의 도로써 백성을 깨우칠 작정이다. 그렇게 할 사람은 나 외는 없다."
이러한 자각은 사회 개혁에 몸을 내던진 맹자 자신의 것이었다.
이윤(伊尹)은 탕왕(湯王) 때 시골에 은거하여 은둔 생활을 즐겼다. 몇 번이나 왕이 불렀으나 결코 응하지 않다가, 수차례에 걸쳐 사자(使者)가 오자 별 수 없이 따라 나섰다. 탕은 이윤의 도움으로 국력을 뻗쳐 나갔다. 이때는 하왕조의 사이계(桀王)의 천하였다. 그는 폭군이었으나 탕은 신하의 도리를 지켜 충성을 다했다. 어떻게든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를 심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을 인정 받아 사이계는 탕을 방백(方伯)으로 임명했다. 이 당시의 방백은 '제후국의 장(長)'이었다. 방(方)이란 어떤 방향의 토지나 지역의 경계를 뜻하는 것이며, 백(伯)은 패(覇)와 같은 것이다. 이렇듯 세력의 가지를 떨친 탕을 도와 이윤은 마침내 폭군의 나라를 뒤엎고 은(殷)나라를 세웠다. 당시 이윤의 자각은 '나는 先覺者다'였다.
선견지명 (先見之明) 앞일을 미리 보아서 판단하는 총명. 앞일을 미리 내다보는 밝은 슬기
선공후사(先公後私) 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사적인 일을 뒤로 미룸
선남선녀(善男善女) 보통사람
선량 選良 選擇賢良 곧 賢良으로 뽑는다는 말의 준말이다. 옛날 한나라때는 孝廉과 賢良方正의 방법으로 관리를 선발했는데 孝廉이란 글자 그대로 효성이 지극하고 행동이 청렴결백한 사람이다. 賢良方正은 文墨才學 곧 시, 문장, 학식 따위의 재주를 가진 자중에서 뽑았으므로 선발인원도 효렴보다 많았고 재능 위주로 뽑았다.
선례후학(先禮後學) 먼저 예의를 배우고 나중에 학문을 배우라는 뜻. 예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
선린정책 善隣政策 이웃 나라와 친선하기 위한 정책을 말한다 .
선발제인(先發制人)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뜻.
선병자의 先病者醫 먼저 병을 앓고 난 사람이 의사라 함이니 무슨 일에나 경험한 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선시선종(善始善終) 처음이나 끝이나 한결같이 잘 함.
선시어외(先始於巍)
先:먼저 선. 始:비로소 시. 於:어조사 어. 鬼(앞에 좌부방이 놓임):높을 외.
'먼저 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일부터 먼저 시작하라.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
전국 시대, 연(燕)나라가 영토의 태반을 제(齊)나라에 빼앗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어느 날, 재상 곽외(郭 )에게 실지(失地)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하므로 왕은 그에게 천금을 주고 그 일을 맡겼나이다. 그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갔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그가 도착하기 몇 일 전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五百金)이나 주고 사 오자[賈死馬骨]' 왕은 진노하여 '과인이 원하는 것은 산 천리마야. 누가 죽은 말뼈에 오백 금을 버리라고 했느냐'며 크게 꾸짖었나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그 뼈조차 거금으로 산다는 것을 안 만큼 머지 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나이다. 과연 그 말대로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전하께오서 진정으로 현재(賢才)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 외부터[先始於 ]' 스승의 예를 받도록 하오소서. 그러면 외 같은 자도 저렇듯 후대를 받는다며 신보다 어진 이가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스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소왕은 곽외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위해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짓고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 일이 제국(諸國)에 알려지자 천하의 현재가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조(趙)나라의 명장 악의(樂毅)를 비롯하여 음양설(陰陽說)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인 극신(劇辛)과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이들의 보필을 받은 소왕은 드디어 제국(諸國)의 군사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고 숙원을 풀었다.
[주] 買死馬骨(매사마골) : 쓸데없는 것을 사서 요긴한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쓸데없는 것이라도 소중히 다루면 현인은 그에 끌려 자연히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선우후락(先憂後樂) 근심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거운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거워함.(어진 사람의 마음씨)
선유자익 善遊者溺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빠져 죽기 쉽다. 재주 많은 사람이 그 재주를 믿고 까불다가 화를 입는다.
선의후리(先義後利) 먼저 의를 따지고 나중에 이익을 추구한다.
선입견(先 入 見)
先:먼저 선, 入:들 입, 見:볼 견
애초부터 머리속에 들어가 있는 고정적인 관념 또는 견해. 미리 보거나 듣거나 한 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의 기준이 되기 쉽다는 말
前漢(전한)의 11대 황제인 哀帝(애제)는 수물두살 난 董賢(동현)을 大司馬(대사마)란 큰 벼슬에 임명하는 등 정치와 사람 쓰는 일에 서툴렀다. 20세에 즉위하여 26세에 죽은 애제는 정치를 외척에게 맡겨 놓다시피 하고 자신은 방종한 생활을 즐겼다. 그 대 애제의 장인과 동향 친구로 息夫躬(식부궁)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소진과 장의 같은 이른바 說客(세객)이었다. 어느날 그는 애제에게 북방의 흉노가 곧 침략해 온다면서 국경지대에 군대를 집결시켜야 한다고 상소했다. 청산유수같은 그의 변설에 애제도 그럴싸하게 여겨 승상인 王嘉(왕가)를 불러 대책을 세우라고 했다.
그러나 왕가는 애제의 말을 듣고 식부궁의 주장이 허황되다고 조목조목 지적한 다음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폐하께서는 망령된 말이나 쓸데없는 변설에 귀를 기울이시면 안됩니다. 秦(진)나라의 목공은 賢臣(현신)인 백리해와 건숙의 말을 듣지 않고 鄭(정)나라를 치려다가 크게 낭패했습니다. 그러나 목공은 뒤에 뉘우치고 巧言(교언)의 무리를 뿌리치고 경험 많은 원로의 말을 존중했기 때문에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옛날의 교훈을 명심하시고 거듭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앞서 들으신 말에 구애되지 마십시오(無以先入之語爲主)"
왕가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얼마 뒤 식부궁은 황제를 우롱한 것으로 드러나 죽음을 당했다.
先入之語爲主는 先入主로 줄여져 쓰이다가 요즘은 先入見(선입견) 혹은 先入觀(선입관)으로 많이 쓴다.
선자옥질 仙姿玉質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이르는 말.
선종외시 先從巍始 어진 사람을 쓰려면 먼저 어리석은 사람부터 우대하라는 뜻.
선종외시(先從隗始)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 큰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선즉제인(先則制人)
先:먼저 선. 則:곧 즉(법 칙). 制:억제할 제. 人:사람 인.
[대응어]∼후즉위인소제(後則爲人所制).
먼저 손을 쓰면(선수를 치면) 남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
진(秦)나라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의 일이다. 진시황(秦始皇)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여 대택향[大澤鄕:안휘성 기현(安徽省 縣)]에서 9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날품팔이꾼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단숨에 기현을 석권하고 진[秦:하남성 회양(河南省淮陽)]에 입성했다. 이어 이곳에 장초(張楚)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진승은 옛 6개국의 귀족들과 그 밖의 반진(反秦)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강동(江東)의 회계군수(會稽君守) 은통(殷通)은 군도(郡都) 오중[吳中:강소성 오현(江蘇省吳縣)]의 유력자인 항량(項梁)을 불러 거병을 의논했다.
항량은 진나라 군사에게 패사(敗死)한 옛 초(楚)나라 명장이었던 항연(項燕)의 아들인데, 고향에서 살인을 하고 조카인 적[籍:항우(項羽)의 이름]과 함께 오중으로 도망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십분 발휘하여 곧 오중의 실력자가 된 젊은이다.
"지금 강서(江西:안휘성 하남성) 지방에서는 모두들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는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코자 하는 시운(時運)이 되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먼저 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後則人制] 했소. 그래서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
은통은 오중의 실력자일 뿐 아니라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항량을 이용, 출세의 실마리를 잡아볼 속셈이었으나 항량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거병하려면 우선 환초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 조카인 적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밖에 와 있는 그에게 환초를 불러오라고 하명하시지요."
"그럽시다. 그럼, 그를 들라 하시오."
항량은 뜰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항우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이렇게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거든 지체 없이 은통의 목을 치도록 하라."
항우를 데리고 방에 들어온 항량은 항우가 은통에게 인사를 마치고 자기를 쳐다보는 순간 눈짓을 했다. 항우는 칼을 빼자마자 비호같이 달려들어 은통의 목을 쳤다. 항량과 항우가 은통에 앞서 '선즉제인'을 몸소 실행한 것이다.
항량은 곧바로 관아를 점거한 뒤 스스로 회계 군수가 되어 8000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 전사하고 말았다. 뒤이어 회계군의 총수가 된 항우는 훗날 한왕조(漢王朝)를 이룩한 유방(劉邦)과 더불어 진나라를 멸망시켰다(B.C. 206). 그러나 그 후 유방과 5년간에 걸쳐 천하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선풍도골 (仙 風 道 骨 )
[ 신선 선/ 바람 풍/ 길 도/ 뼈 골 ] : 신선(神 仙 )의 풍채(風 采 )와 도인(道 人 )의 골격(骨 格 ). 곧, 남달리 뛰어나게 고아(高 雅 )한 풍모(風 貌 )를 말함.
신선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게 깨끗하고 점잖게 생긴 사람을 이르는 말.
선행후교(先行後敎) 선인의 행위를 들어 후학을 가르침.
설니홍조 (雪泥鴻爪) 눈이 녹은 진땅에 큰 기러기가 걸어가 발자취를 남기나 그것은 곧 사라진다.(인생이 허무함)
설망어검 (舌 芒 於 劍 )
[ 혀 설/ 까끄라기 망 / 어조사 어/ 칼 검 ] :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데서加(가), 매서운 변설(辯 舌 )을 일컫는 말임.
설부화용 (雪 膚 花 容 )
[ 눈 설/ 살갗 부/ 꽃 화/ 얼굴 용 ] : 눈같은 살결과 꽃같은 얼굴. 미인(美 人 )을 말함.
설상가상 (雪 上 加 霜 )
[눈 설/위 상/더할 가/서리 상]
눈 위에 서리를 더함. 나쁜 일에 또 어려운 일이 더해지다.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은 송나라의 도원이 1004년에 지은 불서(佛(불)書(서)) ‘경덕전등록’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도일선사의 법사 중에 대양화상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선사라는 중이 인사하러 왔는데, 대양선사가 “그대는 앞만 볼 줄 알고 뒤를 돌아볼 줄은 모르는 구나” 라고 꾸짖었습니다. 남 앞에 드러내기 만을 중시할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수양은 소홀하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었습니다. 이에 이 선사가 “눈 위에 다시 서리(雪(설) 上(상)加(가)霜(상))를 더하는 말씀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서 설상가상은 ‘흰 눈 위에다 다시 흰서리를 더한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참견이나 중복’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뜻이 조금씩 변형되어 지금은 ‘계속해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남’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입니다.
설왕설래 設往設來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함.
설중송백(雪中松柏) 송백은 눈 속에서도 그 색이 변하지 않는다 하여 사람의 節操가 굳은 데 비유하는 말이다.
섬섬옥수 (纖 纖 玉 手 )
[ 가늘 섬/ 가늘 섬/ 옥 옥/ 손 수 ] :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理. 미인의 손.
성경시보(誠敬是寶) 성실 공경 이것이 보배다.
성년불중래 盛年不重來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는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병법의 하나로 동쪽을 친다고 소리 질러 놓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성리학(性理學)[한국사]유학의 한 분류로, 송.명(宋明) 시대의 유학을 말함.
성리학은 ‘성명의리의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로 성명과 의리를 캐는 학문이란 뜻이다. 당나라말 귀족사회가 붕괴되면서 일어난 혼란을 도교와 불교의 사상적 약점에서 찾고, 유학의 재건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데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인종전후(11~12세게)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성리학이 한국적으로 변용 또는 발전한 것은 조선 건국 이후의 일이다. 특히 정도전 권근등은 성리학에 입각해 조선 건국의 이론을 세웠다. 성리학 이론의 탐구가 본격화된 것은 16세기였으며, 이황 이이가 대표적인 학자다. 이들이 남긴 ‘4단 7정(四端七情)에 대한 이기해석론’ 이 대표적인 주제로, 이후 학계는 주리파(主理派). 주기파(主氣派)로 학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중국 성리학의 수준을 넘는 것이었고, 한국 성리학의 특징이었다.
성수불루 盛水不漏 물을 가득히 담아도 샐 틈이 없다 함이니 매우 정밀하다는 뜻.
성인지미(成人之美) 남의 뛰어난 점을 도와 더욱 빛나게 하는 일
성자필쇠 盛者必衰 번성한 후에는 반드시 쇠퇴한다.
성중형외 誠中形外 속마음에 들어 있는 참된 것은 숨기려 해도 자연 밖에 나타나게 된다는 뜻
성즉군왕패즉역적 成則君王敗則逆賊 성공하면 왕이 되고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는 말.
성하지맹(城下之盟) 적에게 성을 정복당하고서 항복하여 맺은 강화(講和)의 맹약(盟約). 대단히 굴욕적인 강화.
성현군자 (聖賢君子) 성인과 현인과 군자, 곧 지식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성호사서 (城狐社鼠) 성 안에 사는 여우와 사단(社壇)에 사는 쥐. 몸을 안전한 곳에 두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
성화요원(星火燎原) 별똥처럼 작은 불이 들을 태우듯 사소한 것을 방치하면 나중에 매우 큰 재난을 가져온다.
세고취화(勢孤取和) 자기편의 세력이 약할 때는 화평을 취하라는 뜻
세답족백(洗踏足白) 상전의 빨래에 종의 발뒤꿈치가 희어진다는 뜻으로 남의 일을 하여 얻어지는 소득
세덕장상(世德長祥) 덕으로 처세하면 길이 상서롭다.
세리지교(勢利之交) 권세와 이익을 얻기 위한 교제.
세무십년 (勢無十年) 세도가 십년을 가지 못한다. 사람의 권세와 영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
세불양립 (世不兩立) 비슷한 두 세력이 공존할 수 없음을 말한다.
세속오계(世俗五戒) 화랑들에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
세속지인 世俗之人 세상 풍속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세여파죽(勢如破竹) 기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도 같다는 뜻.(=破竹之勢)
세척洗滌 깨끗하게 씻음.
세한고절(歲寒孤節) 추운 계절에도 혼자 푸르른 대나무. 겨울.
세한삼우 ( 歲 寒 三 友 )
[ 해 세/ 찰 한/ 석 삼/ 벗 우 ] : 세한(歲 寒 :겨울철)의 송죽매(松 竹 梅 ) 세 가지 나무. 이는 흔히 동양화(東 洋 畵 )의 화제(畵 題 )가 됨./ 추운 겨울철의 세 벗이라는 뜻으로, 추위에 잘 견디는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
세한송백 (歲寒松柏) 추운 겨울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역경(逆境)에도 지조(志操)를 굳게 지킴.
소국과민(小國寡民) 적은 나라 적은 백성, 노자가 이야기하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
소년이로 학난성 (少年易老學難成)
少:젊을 소. 易:쉬울 이. 老:늙을 로. 學:배울 학. 難:어려울 난.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
이 말은 남송(南宋:1127∼1279)의 대유학자(大儒學者)로서 송나라의 이학(理學)을 대성한 주자(朱子:朱熹)의《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권학문(勸學文)〉<偶成>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少年易老 學難成(소년이로 학난성)]
순간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一寸光陰 不可輕(일촌광음 불가경)]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未覺池塘 春草夢(미각지당 춘초몽)]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階前梧葉 已秋聲(계전오엽 이추성)]
도연명의 "盛年不重來/一日難再晨/及時當勉勵/歲月不待人"과 함께 젊은이에게 면학(勉學)을 권장하는 시로 너무도 유명하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외면으로는 웃으면서 온화한 척 하지만, 마음속에는 음흉하게 칼을 품고 있음(=口蜜腹劍)
소복재근(小福在勤) 조그만 복은 부지런함에 달려있다
소생 (甦生) 다시 살아남.
소양지판 (宵壤之判) 그 거리가 매우 멀다는 뜻이다.
소원성취 (所願成就)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음.
소인묵객(騷人墨客) 詩文이나 書畵를 일삼는 사람.
소인지용(小人之勇) 혈기에서 오는 匹夫의 용기.
소진장의 (蘇秦張儀) 매우 구변이 좋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소탐대실 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다 .
소향무적(所向無敵) 이르는 곳마다 맞설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세력을 뜻한다.
속거천리(速去千里) 어서 멀리 가라는 뜻으로 귀신을 물리칠 때에 쓰는 말.
속성속패 速成速敗 갑작스럽게 이루어 진 것은 또 급히 결단난다.
속수무책 束手無策 손을 묶었으니 계획이 없음. 어찌할 도리가 없음.
속수지례(束脩之禮) 묶은 육포의 예절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추는 것
속전속결(速戰速決) 장기전을 피하고 속전으로 전국을 판가름하는 것.
손강영설 孫康映雪 옛날 손강이란 이가 집이 가난하여 기름을 구하지 못하고 쌓인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 .
손순매아(孫順埋兒) 손순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다하기 위하여 아이를 묻었다는 설화.(효심이 지극함)
손자삼요(損者三樂) 驕慢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고, 주색을 좋아하는 것을 말함
손자삼우(損者三友) 사귀면 손해를 보는 벗. 편벽한 사람, 착하지만 줏대 없는 사람, 말만 앞세우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
솔구이발 率口而發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말을 한다.
솔선수범(率先垂範)
[거느릴 솔 /먼저 선 / 드리울 수 / 법 법]
먼저 자신이 본보기를 보이는 것
송구영신 (送 舊 迎 新 )
[ 보낼 송/ 예 구/ 맞이할 영/ 새 신 ] :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
송무백열(松茂栢悅) 소나무가 무성해지니 잣나무가 기뻐한다. 친구의 잘 됨을 기뻐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송백지조(松柏之操)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 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
송양지인 (宋 襄 之 仁)
宋:송나라 송. 襄:도울 양. 之:갈 지(…의). 仁:어질 인.
송나라 양공(襄公)의 인정이란 뜻. 곧 ① 쓸데없이 인정을 베푸는 것의 비유.
②너무 착하기만 하고 수단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이름.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양왕(襄王) 2년(B.C.650),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세상을 떠났다. 환공이 병석에 있을 때 태자인 자부(玆父)는 인덕(仁德)이 있는 서형(庶兄) 목이(目夷)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목이는 굳이 사양했다. 그래서 자부가 위(位)에 올라 양공이라 일컫고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로부터 7년 후(B.C.643), 춘추의 첫 패자(覇者)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고, 송나라에는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이는 패자가 될 징조라며 양공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여섯 공자간에 후계 다툼이 치열한 제나라로 쳐들어가 공자 소(昭:孝公)를 세워 추종 세력을 만들었다. 이어 4년 후에는 송 제 초(楚) 세 나라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목이는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걱정했다.
이듬해 여름, 양공은 자기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통교(通交)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자 그 해 가을,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 양공은 초나라 군사를 홍수(泓水:하남성 내)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으나 전군이 강을 다 건너왔는데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목이가 참다못해 진언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적사오니 적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기 전에 쳐야 하옵니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군자는 어떤 경우든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 법이오."
양공은 초나라 군사가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열세(劣勢)한 송나라 군사는 참패했다. 그리고 양공 자신도 허벅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 악화하는 바람에 결국 이듬해 죽고 말았다.
수간모옥(數間茅屋) 두서너 칸밖에 안되는 띳집. 오두막집.
수구여병 守口如甁 비밀을 잘 지켜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수구초심 (首 邱 初 心 )
[首:머리 수/ 邱:언덕 구/ 初:처음 초/ 心:마음 심]
여우가 죽을 때엔 자기가 살던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고향을 그리워 함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을 도와 패업을 이룬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그는 제나라 왕에 봉해졌으나 계속하여 주나라 황실을 맡아 보다가 죽었다. 그는 주나라 땅에 묻혔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계속적으로 주나라 땅에 보내져 묻히게 되었다. 이러한 인정이 예악의 도였다. 《禮記》에 의하면 음악은,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던 본원(本源)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선조에게 감사하고 생활을 즐기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순(舜)임금은 자기의 왕업이 요(堯)의 덕을 입은 것을 즐거워 하여 그 악(樂)의 이름을 대소(大韶)라 하였으며, 우(禹)는 자신의 왕업이 홍수를 잘 다스려 중국의 땅을 넓혔다 하여 그 악의 이름을 대하(大夏)라 하였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본원을 잊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우가 죽을 때에 자기가 살던 굴이 있던 곳으로 머리를 똑바로 하는 것은, 비록 짐승이지만 근본을 잊지 못하는 본능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견주면 인(仁)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태어난 자리로 돌아가려는 본능적인 행위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수도어행(水到魚行) 물이 이르면 고기가 그 물 속을 가게 된다. 무슨 일이건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의미.
수락석출 (水 落 石 出)
水:물 수, 落:떨어질 락, 石:돌 석, 出:날 출
물이 빠지니 돌이 드러남. 곧 흑막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남.
흐르는 물이 줄어 얕아 졌기 때문에 돌이 수면 위에 드러남. 즉 사건의 진상이 드러남 .
北宋(북송)의 神宗(신종)은 약해해진 국가를 바로 잡을 생각으로 王安石(왕안석)을 등용해 과감한 개혁 정책을 폈다. 유명한 '王安石의 變法(변법)'이다. 이 때 歐陽修(구양수)와 함께 反旗(반기)를 든 사람이 蘇東坡(소동파-蘇軾·소식)였다. 그는 王安石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神宗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던 王安石에게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귀양을 가고 만다.
그가 左遷(좌천)돼 간 곳은 湖北省 黃州(호북성 황주)의 東坡(동파)라는 곳이었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蘇東坡(소동파)라 부르게 됐다. 그는 그곳에서 틈만 나면 주위의 名勝(명승)을 찾아 유람했다. 한번은 赤壁(적벽)을 찾았다. 유명한 赤壁賦(적벽부)는 여기서 나왔다. 본디 赤壁이라면 孫權(손권)의 吳(오)와 劉備(유비)의 蜀(촉)이 연합해 曹操(조조)의 백만대군을 격파했던 곳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찾은 赤壁은 격전지로서의 赤壁(嘉魚縣 소재)이 아니라 黃州의 赤壁이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가 쓴 赤壁賦는 前後 두 편이 있는데, 後赤壁賦(후적벽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산은 높고 달은 기울었으며, 물이 빠지니 돌이 드러나는구나(山高月小 水落石出)"
그렇다. 호수나 강의 물이 빠지고 나면 그 속에 있던 돌은 赤裸裸(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마치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뚝 솟은 산이 雄姿(웅자)를 드러내는 것 처럼.
늦가을 어느 날 물 빠진 강의 모습을 보고 읊은 것을 후세 사람들은 흑막에 가려져 있던 진상이 훤히 드러나는 것도 水落石出에 비유했다. 事必歸正(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어찌 以手遮天(이수차천-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림)할 수가 있겠는가.
수명어천(受命於天) 하늘로부터 명을 받음
수명장수(壽命長壽)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수무석권 手無釋券 손에서 책을 놓을 때가 없다. 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수무족도 手舞足蹈 좋아서 어찌 할 줄을 모른다.
수무푼전 手無分錢 하나도 가진 돈이 없다.
수문수답(隨問隨答) 물으면 묻는 대로 거침없이 대답함.
수복강녕 壽福康寧 오래 살아 복되며, 몸이 건강하여 평안함을 이르는 말.
수불석권 (手 不 釋 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 열심히 공부함. 즉, 열심히 공부함을 일컬음
(손 수, 아닐 불, 놓을 석, 책 권)
중국 삼국시대 일입니다.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은 장수 여몽에게 학식이 부족하니 공부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여몽은 황제에게 전쟁 때문에 바빠서 독서할 겨를이 없다고 대답했답니다. 이에 손권은 여몽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후한의 황제 광무제는 변방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위나라의 조조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이 말을 듣고 큰 개달음을 얻은 여몽은 싸움터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였답니다. 그뒤 손권의 부하 노숙이 옛 친구인 여몽을 찾아갔는데, 여몽이 너무 박식해져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수서양단 (首 鼠 兩 端 )
[首:머리 수. 鼠:쥐 서. 兩:두 량. 端:끝(실마리) 단.]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라는 뜻.곧 ① 진퇴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 ②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봄.
전한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孀)과 6대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田 )은 같은 외척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은 서산 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대장군이었고, 전분은 욱일 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 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가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가 자리를 뜨자 조의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은 화가 나서 한안국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 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수석침류 (漱 石 枕 流)
漱:양치질 수. 石:돌 석. 枕:베개 침. 流:흐를 류.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 곧 ①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씀. 억지로 발라 맞춰 발뺌을 함. ② (남에게 지기 싫어서 좀처럼 체념을 안하고) 억지가 셈의 비유. 자연을 벗하여 사는 생활 취미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진(晉:265∼317)나라 초엽, 풍익 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간에는 속세의 도덕 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처도 죽림 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流漱石]'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수세불통(水泄不通) 물이 샐 틈이 없다. 단속이 엄하여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한다.
수수방관 袖手傍觀 팔짱을 끼고 곁에서 보기만 함. 응당 해야 할 일에 아무런 손도 쓰이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음.
수신제가 修身齊家 행실을 올바로 닦고 집안을 바로 잡음.
수심가지(水深可知) 물의 깊이는 알 수 있으나 사람의 속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뜻
수악지심(羞惡之心) 자신의 그릇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바르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의(義)의 근본이다
수양산음강동팔십리 樹陽山陰江東八十里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까지 뻗친다 함이니 어떤 사람이 잘 되면 친척이나 친구 또는 친지들이 그의 덕을 입는다는 뜻을 비유한 말이다.(속담)
수어지교 (水 魚 之 交 )
水:물 수, 魚:물고기 어,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물과 물고기처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관계. 친밀하여 떨어지기 어려운 우정이나 교제
劉備(유비)가 諸葛亮(제갈량)을 찾던 三顧草廬(삼고초려) 때의 이야기다. 두번이나 허탕치고 세번째에야 비로소 가까스로 만났는데 사실 關羽(관우)와 張飛(장비)는 처음부터 劉飛가 친히 찾아가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했다.
"일개 촌부에 불과한 것 같은데 사람을 보내 불러 오게 합시다." 張飛의 말이었다. 결국 두번째도 허탕치자 이번에는 關羽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두번이나 찾았다면 예를 다한 셈입니다. 보아하니 諸葛亮은 有名無實(유명무실)한 인물이라 일부러 피하는지 모릅니다. 너무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자 張飛도 이때다 싶어 크게 말했다.
"이젠 정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녀석이 안오겠다면 제가 밧줄로 꽁꽁 묶어서라도 잡아 오겠습니다."
결국 劉飛의 정성에 감복한 諸葛亮은 하산해 그를 위해 犬馬之勞(견마지로)를 다한다. 後에 劉飛는 諸葛亮을 師父(사부)로 모시면서 침식을 같이 할 정도로 극진히 모셨다. 물론 關羽와 張飛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신예인데다가 나이 또한 젊은 제갈량이 더 중요시되고 자신들은 업신여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공명은 27세로 유비보다 20세나 연하였다. 이것을 알아챈 劉飛가 관우와 장비를 달래어 말했다.
"나에게 孔明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 두말없기를 바란다(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 願勿復言)." 이처럼 水魚之交는 본디 君臣간의 관계가 친밀한 것을 비유했던 것이 後에는 친구나 심지어 부부간의 관계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극도로 가까운 사이'를 뜻한다.
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니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어 봉양 못함을 슬퍼하는 말
수원수구(誰 怨 誰 咎) :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 누구를 원 망하거나 탓할 수 없다는 말.
수유사덕 水有四德 물은 만물에 삶을 주니 仁이요 더러움을 씻으니 義요, 유하면서 강하니 勇이요, 솟아도 차지 않으니 智라.
수적석천 水滴石穿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는 뜻이니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려운 일이라도 성취한다는 뜻이다.
수적성천 水積成川 소량의 물이 모여 쌓여서 내가 됨. 곧 진합태산(塵合泰山)과 같은 뜻으로서, 조금씩 모인 것이 많이 된다는 말.
수적천석( 水 滴 穿 石 )
水:물 수. 滴:물방울 적. 穿:뚫을 천. 石:돌 석.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 곧 ①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②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
북송(北宋:960∼1127)때 숭양 현령(崇陽縣令)에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관아를 돌아보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한 구실 아치를 발견했다. 당장 잡아서 조사해 보니 상투 속에서 한 푼 짜리 엽전 한 닢이 나왔다. 엄히 추궁하자 창고에서 훔친 것이라고 한다. 즉시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구실 아치는 장괴애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또, 그까짓 엽전 한 푼 훔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 말을 듣자 장괴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 이놈! 티끌 모아 태산[塵合泰山]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 일 전이면 천 날이면 천 전이요(一日一錢 千日千錢), '끊임없이 켜면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繩鋸木斷 水滴穿石)'고 했다."
장괴애는 말을 마치자마자 층계 아래 있는 죄인 곁으로 다가가 칼을 빼어 목을 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상관을 무시하는 구실 아치의 잘못된 풍조를 고치려는 행위였다고《옥림학로(玉林鶴露)》는 쓰고 있다.
[주] '수적천석'은 우리 나라의 속담(俗談) '낙숫물이 댓돌[臺石]을 뚫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고사 성어임.
수족지애(手足之愛) 형제 사이의 우애를 일컫는 말.
수주대토( 守 株 待 兎 )
守:지킬 수, 株:그루 주, 待:기다릴 대, 兎:토끼 토
나무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림의 뜻으로, 노력하지 않고 득을 보려 하지 말라는 비유. 융통성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구습(舊 習 )을 고수(固 守 )한 채 변통할 줄 모르는 것을 비유함.
諸子百家(제자백가)중 가장 대립적인 사상은 儒家(유가)와 法家(법가)였다. 儒家가 복고주의를 주장, 수구적인 입장에 섰다면, 法家는 개혁과 변법을 주장하여 진보적인 입장에 섰다. 이같은 대립으로 나타난 사건이 焚書坑儒(분서갱유)다.
法家의 이론을 집대성한 이는 韓非子(한비자)였다. 그랬던 만큼 그는 철저한 개혁 정치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太古時代의 유소씨(有巢氏)나 수인씨(燧人氏)의 생활을 후세 사람들이 따라 한다는 것은 우스운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堯舜時代(요순시대)의 통치 방법을 그대로 답습(踏襲)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진정한 聖人은 무작정 옛 제도를 따르지 않고 시대의 실정에 맞게 적정한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그는 변통(變通)없는 답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다음의 우화를 빌려 설명했다.
옛날 春秋時代 宋의 한 農夫가 밭을 갈고 있는데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밭가의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는 것이 아닌가. 농부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토끼를 잡게 되었다. 그 뒤부터 그는 농사일을 팽개치고는 매일 그루터기만 지켰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다. 宋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옛 聖人들의 정책으로 지금의 시대를 다스린다면 그루터기를 지키고 있는 농부와 같은 꼴이라는 것이다. 守株待兎는 변통(變通)없이 옹색(壅塞)한 사람을 뜻한다.
수주탄작(隨株彈雀) 隨株 수후의 구슬로 날아가는 참새를 쏜다. 적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버림(=小貪大失)
수즉다욕(壽 則 多 辱)
壽:목숨 수. 則:곧 즉(법 칙). 多:많을 다. 辱:욕될(욕) 욕.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망신스러운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말.
전국시대를 살다간 사상가 장자(莊子)의 저서《장자(莊子)》〈천지편(天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그 옛날 성천자(聖天子)로 이름 높은 요(堯) 임금이 순행(巡幸)중에 화(華)라는 변경에 이르자 그곳의 관원이 공손히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수하시오소서."
그러자 요 임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장수하기를 원치 않네."
"그러시면 부자가 되시오소서."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네."
"그러시면 다남(多男)하시오소서."
"그것도 나는 원치 않네. 다남하면 못난 아들도 있어 걱정의 씨앗이 되고, 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이네[壽則多辱].'"
이 말을 들은 관원은 실망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대듯 말했다.
"요 임금은 성인이라고 들어 왔는데 이제 보니 군자(君子)에 불과하군. 아들이 많으면 각기 분수에 맞는 일을 맡기면 걱정할 필요 없고, 재물이 늘면 는 만큼 남에게 나누어주면 될텐데…‥. 진정한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거처를 가리지 않으며 병아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잘 먹고, 새가 날아간 흔적 없는 자리처럼 자유 자재이어야 하는 법. 그리고 세상이 정상이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그 번영을 누리고, 정상이 아니면 스스로 덕을 닦고 은둔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한 100년쯤 장수하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그때 신선이 되어 흰구름을 타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계시는 곳에서 놀면 나쁠 것도 없지…‥."
관원은 말을 마치자 마자 그 자리를 떠났다. 허를 찔린 요 임금은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수지오지자웅 誰知烏之雌雄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랴 ? 두 사람의 흑백(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
수지청즉무어 水至淸則無魚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듯이, 사람도 너무 엄격하면 친할 수 없다는 뜻.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水:물 수. 淸:맑을 청. 無:없을 무. 大:클 대. 魚:고기 어.
[원말]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물을 숨기지 못해)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하지 않음의 비유.
후한 시대 초엽,《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 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영원 14년(102),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至淸則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의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수하친병(手下親兵) 자기에게 직접 딸린 병졸, 자기의 수족처럼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
숙독기사 熟讀記寫 익숙하게 읽고 베껴쓰다.
숙맥불변 菽麥不辨
[콩 숙/ 보리 맥/ 아닐 불/ 분별할 변]
콩인지 보리인지는 분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말한다. 숙맥생면(菽麥生面).숙맥(菽麥).
춘추시대 진의 형이 있었는데 우둔하여 아무 일도 맡길 수가 없었다고 함니다. 그래서 그는 관직이 없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콩과 부리도 구분 못한다 하여 ‘숙맥불변’이라 표현했습니다. 한국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와 같은 뜻입니다.
숙수지환(菽水之歡) 콩을 먹고 물을 마시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즐거움
숙습난당 熟習難 當 일이 손에 익어서 잘하는 사람을 당해내기는 어렵다. 무엇이나 잘 하려면 손에 익혀야 한다.
숙습난방(宿習難防) 몸에 밴 습관은 고치기가 어렵다
숙시숙비 熟是熟非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비가 분명하지 않다.
숙야비해 夙夜非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며 조금도 게으름이 없다.
숙호충비 (宿 虎 衝 鼻 )
[ 묵을 숙/ 범 호/ 찌를 충/ 코 비 ] : 잠자는 범의 코를 찌른다는 뜻으로, 불리(不利)함을 자초(自 招 )한다는 말.
순결무구(純潔無垢)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다.
순망치한 (脣 亡 齒 寒)
[입술 순/ 망핳 망/ 이 치/ 찰 한]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에 어느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
중국 춘추 시대 때 진나라가 괵나라를 치기 위해 괵나라 옆에 있던 우나라 조정에 길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우나라의 중신중 하나가 "진나라가 괵나라를 치면 결국 우리 우나라도 위험에 처하게 되니 이는 곧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게 되는 형국'과 같사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가 건넨 재물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결국 진나라에 길을 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괵나라를 멸하고 돌아가던 진나라 군사는 그 중신의 예언대로 단숨에 우나라를 공략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한 순망치한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를 이를 때 쓰는 말입니다.
순치보거(脣齒輔車) 이와 입술처럼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사이
순치지국(脣齒之國) 이해관계가 밀접하여 입술과 이와의 관계 같은 나라.
순치지세 ( 脣 齒 之 勢 )
[ 입술 순/ 이 치/ 갈 지/ 기세 세 ] : 입술과 이와 같이 서로 의지하고 돕는 형세(形 勢 ).
술이불작(述而不作) '참된 창작은 옛것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태어난다.'는 공자의 말씀
숭덕광업(崇德廣業) 높은 덕과 큰 사업. 또, 덕을 높이고 업을 넓힘.
숭덕변혹 崇德辨惑 덕을 높이어 중히 여기게 하고 미혹됨을 분별하다.
슬갑도적(膝甲盜賊) 남의 시문(詩文)을 표절하여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승기자염(勝己者厭) 속인은 자기보다 재능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는 뜻
승당입실 (升 堂 入 室)
升:오를 승. 堂:대청 당. 入: 들 입. 室:방 실
대청에 올라 방으로 들어가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예술이 차츰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 깊은 경지에 이름을 말함
공자(孔子)에게 자로(子路)라는 제자가 있었다. 용맹 과감하고 무(武)를 좋아하는 호쾌한 선비였다. 그가 하루는 비파를 켜고 있었다. 그 음색은 그의 성격 그대로 호쾌하고 웅장했다. 그것을 들은 공자가 불만스러운 듯이 자로에게 말했다.
"그런 솜씨로는 나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공자가 주장하는 인(仁)과 중용(中庸)에 어그러진 것이다.
공자의 비판을 들은 제자들은 그 후로 자로를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자로가 자랑하는 무용(武勇)은 공문(孔門)에 있어서는 오히려 경멸해야 할 것일 뿐이라며‥‥
그러나 그것을 안 공자는 제자들을 타이르고 자로를 변호하여 말했다.
"자로의 솜씨는 이미 당에 올라 있다(升堂). 아직 실에 들어가(入室) 있지 않았을 뿐이다.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
공자에게 혼난 이들은 반성하고 그 후로 자로에 대한 태도를 고쳐 다시 그를 존경했다.
승두지리 升斗之利 한 되, 한 말의 이익. 대수롭지 아니한 이익.
승상접하 承上接下 윗사람을 받들고 아랫사람을 거느린다. 위아래를 잇는다.
승승장구 乘勝長驅 싸움에서 이긴 기세를 타고 계속 적을 몰아 침
시근종태(始勤終怠)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부지런하나 나중에는 게으름을 피움
시문서화 詩文書畵 시와 문과 글씨와 그림을 말한다.
시불가실 時不可失 기회는 한번밖에 오지 않으니 그것을 잃지 말라.
시비곡직(是非曲直) 옳고 그르고 굽고 곧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 是非之心智之端也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근본이다.
시산혈해(屍山血海)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바다처럼 많음
시시각각(時時刻刻)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각마다.
시시비비 是是非非 옳고 그름을 가리어 밝힘
시오설(視吾舌)
視:볼 시. 吾:나 오. 舌:혀 설.
'내 혀를 보아라'는 뜻. 곧 혀만 있으면 천하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
전국 시대, 위(魏)나라에 장의(張儀)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언변과 완력과 재능이 뛰어난 그는 권모 술수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배웠다. 따라서 합종책(合從策)을 성공시켜 6국이 재상을 겸임한 소진(蘇秦)과는 동문이 된다. 장의는 수업(修業)을 마치자 자기를 써 줄 사람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초(楚)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식객이 되었다.
어느 날, 소양은 초왕(楚王)이 하사한 '화씨지벽(和氏之壁)'이라는 진귀한 구슬을 부하들에게 피로(披露)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연석에서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두가 장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가난뱅이인 장의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그래서 수십 대의 매질까지 당했으나 장의는 끝내 부인했다. 마침내 그가 실신하자 소양은 할 수 없이 방면했다. 장의가 초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래, 이런 변을 당했어요?"
그러자 장의는 느닷없이 혀를 쑥 내밀며 보인 다음 이렇게 물었다.
"'내 혀를 봐요[視吾舌].' 아직 있소, 없소?"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혀야 있지요."
"그럼 됐소."
몸은 가령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상관없으나 혀만은 상(傷)해선 안된다. 혀가 건재해야 살아갈 수 있고 천하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의는 그 후 혀 하나로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연횡책(連衡策)으로 일찍이 소진이 이룩한 합종책을 깨는 데 성공했다.
[주]합종책 : 전국시대,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6국 동맹책.
연횡책 :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귀곡자 :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모사). 성명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반 지식에 통달했다고 함. 그가 숨어살던 귀곡(산서성 내)이란 지명을 따서 호를 삼고 종횡설의 법(法)을 적은《귀곡자(鬼谷子)》3권을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음.
시용승수환이두수 始用升授還以斗受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적게 주고 그 갑절로 많이 받는다.
시야비야(是耶非耶)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를 가림.
시종여일 始終如一 처음이나 나중이 한결같아서 변함없음
시위소찬 (尸 位 素 餐)
尸:시동 시, 位:자리 위, 素:흴 소, 粲:먹을 찬
능력이나 공적도 없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한갓 관직만 차지하고 녹을 받아 먹는 일. 그런 사람
시위의 尸는 尸童(시동)을 뜻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혈통을 이어 받은 어린 아이를 조상의 神位(신위)에 앉혀 놓고 제사를 지냈다는데 이 때 신위에 앉아 있는 아이를 시동이라 불렀다.
이런 방식은 원시적인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조상의 영혼이 천진난만한 후손인 어린아이에게 接神(접신)하여 그 아이의 입을 통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게 한다는 발상에서 나왔을 법하다.
尸位(시위)는 그 시동이 앉아 있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시동이 신위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조상 대접을 받듯이 아무런 능력이나 공적도 없으면서 남이 만들어 놓은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시위라고 한다.
素餐(소찬)은 공짜로 먹는 것을 말한다. 아무런 재능이나 공로도 없이 녹을 타먹는다는 뜻이다. 漢(한)나라 成帝(성제)때도 분수에 맞지 않게 높은 자리에 앉아 하는 일 없이 녹만 타먹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 重臣(중신)이었던 朱雲(주운)은 이렇게 탄식했다.
"요즘 조정의 대신들은 위로는 군주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헛되이 녹이나 축내고 있는 자들(시위소찬)일 뿐이다"
시자조슬(視 子 蚤 蝨)
視:볼 시. 子:아들 자. 蚤:벼룩 조. 蝨:이 슬
사람 보기를 벼룩이나 이를 보듯 한다는 뜻으로, 큰 인물을 본 후에 작은 인물을 보면 벼룩이나 이처럼 보인다는 말
사람의 힘과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임금은 다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하의 일은 신하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의 개인적인 능력에 의지하지 말고 정치적인 기구와 제도를 먼저 완비해야 한다.
송나라의 대부 자어(子圄)가 공자와 송나라의 태재(太宰:재상)를 만나도록 알선했다. 자어가 태재에게 물었다.
"공자는 만나니 어떻습니까?"
태재가 말했다.
"내가 공자를 본 후에 당신을 보니 마치 벼룩이나 이처럼 보입니다(視子蚤蝨). 이제 임금님을 만나도록 주선하겠소이다."
자어는 공자가 임금에게 잘 보일 것을 두려워하며 한마디했다.
"만약 태재께서 공자를 임금님께 보인다면 결과가 좋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생각해 보십시오. 임금님께서 공자를 만나고 난 후 태재를 본다면 마치 벼룩이나 이 처럼 잘게 보일 게 아니오."
그 말을 듣고 태재는 공자를 임금께 데려가지 않았다.
시종일관 始終一貫 처음과 끝이 같음 (=시종여일 始終如一)
시행착오(施行錯誤) 일을 되풀이하면서 고쳐 나감.
식혜종덕(施惠種德) 은혜를 베풀고 덕을 심는다.
식불감미(食不感味)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말)
식불이미(食不二味)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
식소사변 ( 食 少 事 煩 )
食:먹을(밥) 식, 少:적을 소, 事:일 사, 煩:번거로울 번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 생기는 것도 없이 헛되이 분주해 고달픔
유비(劉備)가 죽은 뒤 촉(蜀)나라의 제갈공명이 유선(劉禪)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려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위나라와의 결전에 임했다.
오장원에 진을 친 제갈공명은 위나라 대장군 사마중달과의 싸움에서 빨리 승패를 결정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제갈공명에게 몇차례 혼이 난 사마중달은 지구전으로 촉군이 지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사자(使者)들은 자주 오갔다.
사마중달은 촉나라 사자에게 제갈공명의 일상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제갈공명께서는 무슨 음식을 드시며 하루 식사량은 얼마나 되오?"
"하루에 3, 4홉 드십니다"
"그러면 일처리는 어떻게 하시오"
"매일 20건 이상의 공문서를 직접 보시고 처리하십니다"
그러자 사마중달이 말했다.
"제갈공명이 '먹는 것은 그렇게 적고 일은 많으니 그가 어떻게 오래 살 수 있겠는가(食少事煩 安能久乎)"
과연 얼마 후 제갈공명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공명이 죽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중달은 즉각 촉군을 공격했다. 한참 추격하고 있는데 갑자기 촉군의 깃발이 되돌아오면서 북소리를 요란하게 울려대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신출귀몰하는 공명의 계략에 걸린 줄 안 중달은 지레 겁을 먹고 후퇴했다. 이 해프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내쫓았다(死諸葛走生仲達)고 말했다'
식언 (食 言)
食:먹을 식, 言:말씀 언
말을 삼킨다는 뜻으로, 약속을 번복하거나 지키지 않음. 거짓말을 일삼음
夏(하)의 桀王(걸왕)은 중국의 대표적인 暴君(폭군)이었다. 愛妾(애첩) 抹姬(말희)에게 빠져 온갖 못된 짓을 마다 하지 않았는데 酒池肉林(주지육림)의 故事(고사)는 여기서 나왔다. 그는 또한 暴惡(포악)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어 무고한 충신과 백성을 잡아다 죽이니 민심은 이내 등을 돌렸고 백성은 塗炭(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동쪽의 지도자 湯(탕)은 그를 치기 위해 일어났다.
桀과는 달리 그는 덕을 쌓아 그곳의 백성들로부터 시선을 한곳에 받고 있었다. 桀을 치기에 앞서 그는 병사들을 모아 놓고 出征(출정)의 辯(변)을 밝혔는데 현재 [書經]의 湯誓篇(탕세편)이 그것이다.
"나는 결코 야심에서 군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일어난 것이다. 하늘을 대신하여 부덕한 者를 징계하기 위함이다. 이번에 功을 세운 者에게는 반드시 큰 賞을 내릴 것이니 너희들은 내 말을 의심하지 말라. 나는 내가 한 말을 다시 삼키지는(食言) 않는다. 마찬가지로 너희들 중 내 명령을 거역하는 者에게는 삼족(三族)을 멸하리라."
湯의 군대는 破竹之勢(파죽지세)로 쳐들어가 명조(鳴條)라는 곳에서 격돌했다. 물론 승패는 뻔했다. 사기충천했던 湯의 군사는 桀을 사로 잡고 말았다. 이리하여 4백70여년에 걸쳤던 夏王朝는 망하고 殷이 서게 되었다.
食言이라면 글자 그대로 '말을 삼킨다'는 뜻이다. 곧 먼저 한 約束을 번복하거나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이다.
식자우환 (識 者 憂 患)
識:알 식, 字:글자 자, 憂:근심 우, 患:근심 환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을 사게 된다.
문자를 배우고 학문을 하게 되면 많은 걸 알게 되는데 바로 그 때문에 근심거리도 많아진다는 뜻. 우리 속담에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과 같은 뜻이다.
劉備(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전에는 徐庶(서서)가 軍師(군사)로 있으면서 조조(曹操)를 괴롭혔다. 어떻게 해서든 서서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조조는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한 가지 계획을 꾸몄다.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의 영역인 魏(위)나라에 있는 것을 이용해 그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서의 어머니 衛夫人(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의리를 아는 여장부여서 오히려 한 군주를 섬기라고 아들을 격려하는 형편이었다. 조조는 모사(謀士) 정욱(程昱)의 계책에 따라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내어 급히 위나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서서에게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위부인은 깜짝 놀라 까닭을 물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필체를 본뜬 가짜 편지 때문이었음을 알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글자를 안다는 게 근심거리를 부르는 원인이 되는구나(女子識字憂患)>
세상에는 모르면 괜찮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石蒼舒醉墨堂(석창서취묵당)'이란 시에서 소동파도 이렇게 읊고 있다.
문자를 알게 되면서 사람의 우환은 시작되느니(人生識字憂患始)
제 이름자나 겨우 쓸 수 있다면 편히 쉴 수 있으리(姓名粗記可以休)
識字憂患의 깊은 뜻을 알기에 漢字文盲(한자문맹)이 이 땅엔 이다지도 많은가. 고학력자들의 한심스러운 한자실력은 어제도 오늘도 기사로 보도되고 있고 뜻있는 이들의 '漢盲'에 대한 수 없는 경고도 쇠귀에 경읽기. 한자문화권에 살면서 우리만 漢盲이 되어서 무엇이 좋단 말인가
식전방장(食前方丈) 사방 열 자짜리 상에 차린 잘 차린 음식이라는 뜻으로 호화롭게 많이 차린 성찬
식지동(食 指 動)
食:식지 동. 指:손가락 지. 動:움직일 동
식지가 움직인다는 뜻으로, 음식이나 사물에 대한 욕심을 품는 것을 말함
초(楚)나라의 어떤 사람이 영공(靈公)에게 자라를 바쳤다. 영공은 그 자라를 죽을 끓여 대신들에게 나눠 먹일 생각이었다. 그때 대신 중에 송(宋)이라는 사람이 자가(子家)와 들어섰는데 갑자기 둘째 손가락이 움직였다. 송이 자가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특별한 것을 먹을 것 같네. 내 둘째 손가락이 움직였거든(食指動)."
조회에 들어간 둘은 한쪽에서 자라 요리를 하고 있는 요리사를 보고 웃었다. 조회에 들어올 때에 식지가 움직인 것이 영락없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어찌들 웃는가?"
영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대답은 공자 자가가 넌지시 말했다.
"사실은 이곳에 올 때에 공자 송의 둘째 손가락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음식을 먹을 것이라 담소하며 웃었습니다."
"흐음, 그거 재밌구만. 그러나 말이야, 음식은 짐의 것이거든. 그러니 내가 주지 않으면 손가락이 움직였다 해도 먹을 수가 없어."
영공은 다른 사람에겐 주었지만 공자 송에게만은 자라 죽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송은 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얼른 고기 한 점을 먹었다. 그리고는 왕에게 고했다.
"대왕, 이렇게 먹었으니 내 예측이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얼른 퇴청해 버렸다.
신상필벌 (信 賞 必 罰) : 상과 벌은 반드시 옳고 정당하게 한다.
신언서판 (身 言 書 判 )
[ 몸 신/ 말씀 언/ 쓸 서/ 판가름할 판] : 수려한 용모, 재치있는 말주변, 뛰어난 글 솜씨, 냉철한 판단력으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 인물을 선택하는 네 가지 조건으로, 신수·말씨·글씨·판단력을 말함).
신은구의(新恩久義) 새로운 은혜, 오래된 의리라는 뜻으로, 은혜는 조조에 대한 것이요, 의리는 유비에 대한 것이다
신지무의 (信 之 無 疑 )
[ 믿을 신/ 갈 지/ 없을 무/ 의심할 의 ] : 믿어 의심함이 없음.
신진대사(新陳代謝)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는 일.
신체발부(身體髮膚)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
신출귀몰( 神 出 鬼 沒)
[神:귀신 신, 出:날 출, 鬼:귀신 귀, 沒:숨을 몰]
귀신과 같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없어짐. 자유자재로 출몰하여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일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엮은 《淮南子(회남자)》< 병략훈(兵略訓)>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용병(用兵)에 능한 자의 행동은 귀신이 나타나고 돌아다니는 것(神出而鬼行)과 같이 신속하고 임기응변으로 움직여서 별이 빛나는 듯 하늘이 순환하는 듯하는 것이다. 그 나아가고 물러남과 굽히고 펴는 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고 또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 말은 아군의 세력과 계략 등이 적군에 간파되어 대책을 세울 수 있게 한다면 교묘한 용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황석공이 유방(劉邦)의 공신인 장량(張良)에게 주었다는 병서 《삼략》에도 '神出而鬼行'이라는 말이 나온다. 神出而鬼行은 神出鬼沒과 같은 뜻이겠지만 당나라때의 '戱場語(희장어)에는 제대로 갖춘 표현이 나온다. "머리 두 개에 얼굴이 셋인 귀신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다(兩頭三面 神出鬼神)" 수호지에도 신출귀몰이란 표현이 보이는데 모두 《회남자》나 《삼략》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로 춘추시대 齊(제)나라의 병법과 손무(孫武)의 병서인 '孫子' 軍爭篇에 進退가 바람처럼 신속하다는 '疾如風(질여풍)'이란 표현이 나온다. 전투에 있어서 군의 진퇴는 바람처럼 신속하게 하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질여풍'은 '신출귀몰'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신토불이(身 土 不 二)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뜻으로, 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
신통지력(神通之力) 신통력. 헤아릴 수 없는 변화의 재주를 가진 힘.
실리추구(實利追求)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함
실사구시(實事求是) 있는 그대로의 사실 즉, 실제에 입각해서 그 일의 진상을 찾고 구하는 것을 말한다.
실천궁행(實踐躬行) 말로 하지 않고 실천하며, 남에게 시키지 않고 몸소 행함.
심기일전(心 機 一 轉)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 행동하고 먹었던 마음을 좋은 쪽으로 바꿈
심복지환(心 腹 之 患)
心:마음 심, 腹:배 복, 之:어조사 지, 患:근심 환
인체의 중요한 부분인 가슴과 배에 생긴 병으로 받는 고통. 외부가 아닌 내부의 화근으로 생긴 병폐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이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했다. 왕위에 오른 부차는 백비를 재상으로 삼고 은밀히 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섶 위에서 잠을 자면서(臥薪-와신)' 적개심을 불태우다가 3년 뒤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정벌했다. 부차의 오나라 군사에게 대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월왕 구천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에 포위되어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오나라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항복하여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지금 구천을 치지 않으면 후환을 남긴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구천에게 매수된 백비의 말을 들어 월나라를 속력으로 삼고 구천의 귀국을 하락했다.
5년이 지난 뒤 부차는 만만해 보이는 齊나라를 치려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이를 극력 만류하면서 말했다.
"지금 월나라 구천은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월나라가 우리 속령이라지만 우리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나라를 치기 전에 멀지 않아 화근이 될 월나라를 먼저 정복해야 합니다."
오자서가 부차에게 올린 이 말에서 내부의 화근으로 생긴 병폐를 心服之患이라 일컫게 되었다. 과연 '쓸개를 핥아 그 쓴 맛을 보면서(嘗膽-상담)' 회계의 치욕을 되새기고 있던 구차는 마침내 오왕 부차를 거꾸러뜨린다
심사숙고(深 思 熟 考) 깊이 생각하고 곧 신중을 기하여 곰곰이 생각함
심심상인(心 心 相 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함. 이심전심
심재홍곡(心在鴻鵠) 바둑을 두면서 마음은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쏘아 맞출 것만 생각함(마음은 다른 곳에 씀)
심지무의 (信 之 無 疑 )
[ 믿을 신/ 갈 지/ 없을 무/ 의심할 의 ] : 믿어 의심함이 없음.
십년지계(十年之計) 십년의 큰 계획(나무를 심는 일).
십년지기(十年知己) 여러 해 친하게 사귀어 온 친구.
십년한창(十年寒窓) 십년동안 사람이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한 세월)
십맹일장(十盲一杖) 열 소경에 한 막대기. 어떠한 사물이 여러 곳에 다같이 긴요하게 쓰임을 가리키는 말.
십목소시(十目所視) 열개(여러 개)의 눈이 보는 바와 같음이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다같이 보고 있는 것.
십벌지목 (十 伐 之 木 )
[ 열 십/ 칠 벌/ 갈 지/ 나무 목 ] :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과 같음.
십보방초(十步芳草) 열 걸음 안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있다. 도처에 人才가 있다
십상팔구(十常八九) 열이면 여덟이나 아홉은 그러함
십시일반 (十 匙 一 飯 )
[ 열 십 숟가락 시/ 한 일/ 밥 반 ] :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구제하기는 쉽다는 말.
십일지국(十日之菊) 국화는 9월 9일이 절정이므로 이미 때가 늦었다는 말
십전구도(十顚九倒) 여러 가지 고생을 겪음.
십중팔구(十中八九) 열 가운데 여덟이나 아홉. 거의 예외 없이 그러할 것이라는 추측.
쌍희임문(雙 喜 臨 門) : 경사가 겹쳤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