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파경 (破 鏡)
(破:깨뜨릴 파, 鏡:거울 경)
깨어진 거울. 부부의 금실이 좋지 않아 이혼하게 됨
남북조시대 남조의 마지막 왕조인 陣(진)이 隋(수)나라에 망하게 되었을 때 시종신(侍從臣)이었던 서덕언(徐德言)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면 여자들의 운명은 뻔했다. 더구나 서덕언의 아내는 미모와 재주를 함께 지닌 여인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누이 낙창공주가 아니던가. 수나라 대군이 몸 가까이 닥쳤을 때 서덕언은 아내를 불렀다.
"이제 다 틀렸소. 당신은 틀림없이 고란의 집으로 넘어갈 것이요. 생전에 다시 만나지 못할지 모르나 혹시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날지도…"
말을 잇지 못한 서덕언은 갖고 있던 손거울을 반으로 쪼개어 한쪽을 아내에게 건네 주었다.
"이 것을 잘 지니고 있다가 정월 보름날 시장에서 파시오. 내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그 거울 반쪽을 찾으리다"
결국 낙창공주는 수나라의 일등공신 양소(楊素)의 손에 넘어갔다. 낙창공주는 재색)(才色)으로 양소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남편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약속한 정월 보름날 사람을 시켜 시장에 나가 거울을 파는 시늉을 하게 했다. 서덕언은 아내의 심부름꾼과 접촉, 갖고 있던 거울 반쪽과 심부름꾼이 갖고 나온 반쪽을 마춰 보았다. 두 조각이 딱 들어맞았다. 맞추어진 거울 뒤쪽에 시 한수를 써주었다.
거울과 사람이 함께 갔는데(鏡與人俱去)
거울은 돌아왔건만 사람은 오지 않네(鏡歸人不歸)
심부름꾼이 거울을 가지고 돌아가자, 서덕언의 아내는 울기만 하고 식음을 전폐했다. 그 사실을 안 양소는 두 사람의 애정에 감동되어 그녀를 서덕언에게 돌려보내 주었다.
이 고사처럼 이별한 부부가 다시 결합하는 것을 破鏡重圓(파경중원), 이혼하게 됨은 破鏡이라고 하게 되었다.
파경중원(破 鏡 重 圓) 깨진 거울이 다시 둥근 모습을 되찾았다. 생이별한 부부가 다시 결합한 것.
파과지년(破 瓜 之 年)
(破:깨뜨릴 파. 瓜:오이 과. 之:어조사 지. 年:해 년)
여자의 나이 16세. 첫 경도가 있게 되는 나이를 의미함. 남자의 나이 예순 네 살을 이르는 말
<破瓜之年>은 천계(天癸:월경)가 열리는 시기라고 했다. 이 시기가 되서야 비로서 처녀로 변모한다. 즉 어른이 되는 첫 관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열 넷(14세)로 여기기도 하나 대체적으로 열 여섯의 나이를 일컫는다.
푸른 구슬 참외를 깨칠 때/ 님과 사랑으로 넘어져 뒹굴었네
님에게 감격하여 부끄러움을 전연 몰라/ 몸을 돌려 님의 품에 안겼네
위의 내용이 진(晉)나라 때에 손작이 쓴 파과시(破瓜詩)다. 《황제내경》에는 남녀가 어른이 되는 시기를 구분해 놓고 있다. 여자는 열 여섯 살이고 남자는 열넷이다. 그렇다면 왜 여인의 몸에서 경도가 나오는 시기를 열 여섯으로 구분했는가?
그것은 중국인 특유의 파자법 때문이다. 과(瓜)는 파자법상으로 보면 팔(八)을 두 개 겹친 모습이다. 그러므로 열 여섯 살이라 한 것이다.
《황제내경》이라는 의서에는 여자는 7의 수에 따른다고 했다. 7세가 되면 신기(腎氣)가 형성되는데 그에 대한 표현으로 영구치가 돋고 머리에 숱 또한 무성해지고 길어진다. 나이가 14세가 되면 생식능력이 생긴다. 임맥이 완전히 유통되고 충맥도 성대하므로 월경이 정기적으로 내리게 된다.
21세가 되면 신기가 온몸을 균등하게 돈다. 따라서 사랑니가 나고 치아가 완전히 구비된다. 28세가 되면 근골이 단단해지고 모발도 많아진다. 여성으로서는 신체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다. 35세가 되면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는 등 쇠퇴의 징후가 보인다. 약간씩 모발이 빠진다. 49세가 되면 임맥이 공허하여 충맥도 쇠퇴한다. 혈이 적어지므로 마침내 월경도 끝난다. 따라서 의서에서 말한 파과지년은 14세의 나이를 뜻한다.
파라척결(爬 羅 剔 抉) 손톱으로 후벼 파내듯이 남의 비밀이나 약점을 들추어냄. 숨은 인재를 널리 찾아 냄.
파란곡절( 波 瀾 曲 折 )
[ 물결 파/ 물결 란/ 굽을 곡/ 꺽을 절 ] : 크고 작은 물결의 굴곡(屈 曲 ). 곧, 사람의 생활 또는 일의 진행에 있어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變 化 )와 곤란(困 難 ).
파란만장(波 瀾 萬 丈 )
[물결 파/ 물결 란/ 일만 만/ 어른 장 ] : 크고 작은 물결이 만 발이나 된다는 데서, 사건의 진행에 변화가 심함을 말함.
파란중첩(波 瀾 重 疊 )
[물결 파/ 물결 란/ 무거울 중/ 겹쳐질 첩 ]: 크고 작은 물결이 겹친다는 데서, 사건의 진행에 여러 가지 변화(變 化 )와 난관(難 關 )이 겹쳐 있음을 말함.
파렴치 (破 廉 恥)
[破:깨어질 파, 廉:청렴할 렴, 恥:부끄러울 치]
염치가 없어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름
廉恥(염치)는 淸廉(청렴)하고 羞恥(수치)를 아는 마음이다. 따라서 破廉恥(파렴치)하면 그 반대의 뜻으로 잘못을 범하고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라 하겠다. '沒廉恥(몰염치)한 사람', '厚顔無恥(후안무치)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管鮑之交(관포지교)로 有名한 管子의 牧民篇(목민편)에 보면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德目이 나온다. 禮義廉恥(예의염치)가 그것으로 一名 '四維(사유)'라고도 한다. 그런데 四維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뒤집어지고, 모두 없으면 그 나라는 파멸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곧 禮義廉恥는 나라를 존재케 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 덕목인 셈이다. 그러니까 破廉恥가 판을 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후에 오면 여기에다 孝 悌 忠 信(효제충신) 네 德目(덕목)을 합쳐 八德이라 했다. 앞서 四維가 나라를 떠받치는 데 필요한 덕목이라면 八德은 人間關係에서 지켜야 할 네가지 덕목인 셈이다. 곧 四維 八德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 도덕률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八德을 妄覺(망각)한 者는 '忘八'이라 하여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忘'이 가장 흔한 性씨인 '王'과 발음이 같아 그런 사람을 '놈'이라는 뜻의 '蛋'을 덧붙여 '왕팔단(王八蛋-왕빠딴)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중국에서는 가장 심한 辱(욕)이 되고 있다.
破廉恥나 王八蛋은 사람이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缺如(결여)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뒤따르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파부침선(破 釜 沈 船)
[破:깨트릴 파, 釜:가마솥 부, 沈:잠길 침, 船:배 선]
밥 짓는 가마솥을 부수고 돌아갈 배도 가라앉히다. 결사의 각오로 싸움터에 나서거나 최후의 결단을 내림을 비유하는 말
秦(진)나라가 말기 증세를 보이자 각지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가 하면 제후들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초나라 때부터 장군의 전통을 이어온 項羽(항우)와 그의 삼촌 項梁(항량)도 반기를 들었다. 호응하는 사람들로 세력을 크게 불린 항량과 항우는 곳곳에서 진나라 군대를 무찔렀다. 그러나 봉기군은 定陶(정도)에서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크게 패해 봉기군 총수 항량도 목숨을 잃었다. 장한은 승세를 몰아 조나라의 수도였던 한단을 격파하고 조왕이 있는 鋸鹿(거록)을 포위했다.
조왕의 구원 요청을 받은 초왕은 宋義(송의)를 상장, 항우를 차장으로 앉혀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송의는 군대를 安陽(안양)까지 진격시키고는 40여일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작전상 그렇게 했지만 몇번이나 진군을 재촉해도 송의가 듣지 않아 항우는 송의의 목을 베었다.
상장이 된 항우는 전군을 이끌고 黃河(황하)를 건넜다. 전군이 강을 건너자 항우는 '타고 온 배를 전부 가라앉히고 가마솥과 시루를 부수고(皆沈船 破釜甑·개침선 파부증)' 진영을 불태운 뒤 사흘분 군량미만 지급함으로써 결사적으로 싸울 것을 지시했다.
과연 전장병은 결사의 각오로 싸웠다. 이 싸움에서 항우군은 일당백의 용맹을 떨쳐 조왕을 구원하러 온 다른 제후들의 군사들은 그저 입을 딱 벌리고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끝나자 제후의 장군들이 항우의 진영에 모였는데 모두 머리를 숙이고 무릎걸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 싸움으로 反秦(반진)연합군 가운데서 항우는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파사현정(破 邪 顯 正) 사한 것을 버리고 정도를 드러냄
파안대소(破 顔 大 笑)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웃음.
파죽지세 ( 破 竹 之 勢 )
[破:깨뜨릴 파. 竹:대나무 죽. 之:갈 지(…의). 勢:기세 세.]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 곧 ① 맹렬한 기세. ② 세력이 강대하여 적대하는 자가 없음의 비유. ③ 무인지경을 가듯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진군함의 비유.
위(魏)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무제(武帝:265∼290)라 일컫고, 국호를 진(晉)이라고 했다(265년).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 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280년) 2월(음력),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업[建業:남경(南京)]으로 쇄도(殺到)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吳王) 손호(孫晧)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나라는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주] 두예 : 진(晉)나라 초엽의 명장 정치가 학자. 자는 원개(元凱). 진나라의 초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오(吳)를 정벌하고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무공을 세움.《춘추(春秋)》《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도 유명함. 저서로는《좌전집해(左專集解)》《춘추석례(春秋釋例)》등이 있음. (222∼284).
파천황(破天荒)
[破:깨뜨릴 파. 天:하늘 천. 荒:거칠 황]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된 상태인 天荒을 깨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뜻으로, 인재가 나지 아니한 땅에 처음으로 인재가 나거나, 아무도 한 적이 없는 큰 일을 제일 먼저 한 것을 비유해서 쓰는 말임
중국에서 관리가 되려면 먼저 지방 정부의 시험인 향시(鄕試)를 치르고 여기에 합격하면 회시(會試)라는 중앙정부의 시험을 치른다. 이렇게 합격한 자를 거인(擧人)이라 하며 두 시험을 거쳐야만 비로소 의젓한 관리가 될 수 있었다.
당(唐)나라 형주(荊州)에는 해마다 많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갔지만 아직 擧人이 나온 일이 없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말했다.
"형주는 천황(天荒)의 지방이라 인지(人智)가 발달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유세(劉稅)라는 어느 집 서생이 형주의 鄕詩에 합격하고 이어 중앙 정부의 會詩에도 합격하여 보기 좋게 처음으로 擧人이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기뻐 말했다.
"파천황(破天荒)이다. 드디어 형주도 개명(開明)될 때가 왔다.
파탄 (破 綻)
[破:깨뜨릴 파, 綻:옷깃터질 탄]
그릇따위가 깨지고 옷이 터짐. 일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중도에서 그릇됨
破(파)는 돌(石)의 껍질(皮)을 벗기는 것이며,綻(탄)은 絲로 고정(定)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옷이 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綻의 본디 뜻은「해진 옷」이며 옷이 해져 속살이 허옇게 드러나는 것이 綻露(탄로)다. 곧 破綻(파탄)은 「그릇 따위가 깨지거나 옷이 해지는 것」으로「틈」「허점」을 말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사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금은 '일이 그르치게 되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中國 삼국시대 赤壁大戰(적벽대전)이 있기 직전의 일이다. 吳(오)의 周瑜(주유)는 曹操(조조)의 百萬大軍을 목전에 두고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명한 詐降計(사항계-거짓 항복하는 계략)다. 周瑜는 咸澤(함택)을 시켜 詐降書(사항서-거짓 항복문서)를 바치게 한다. 그러나 詐降書를 읽어본 曹操는 오히려 책상을 치면서 벽력같이 화를 냈다.
"네놈들은 술책을 부리고 있다. 내 네 놈들의 그 破綻(허점)을 알려 주지. 왜 항복시간을 명시(明示)하지 않았느냐. " 그러나 咸澤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주인을 배반하는 데 어찌 시간을 정한단 말입니까. 병법을 익혔다면서 승상(承相)께서는…. "
그제서야 曹操는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그러나 그것이 周瑜의 꾀였을 줄이야. 破綻(허점)까지 눈치챈 조조였지만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군사에게 대패하고 만다.
파투쌍미(巴 偸 雙 美) : 파나라와 충칭이 모두 아름답다는 뜻
팔년풍진(八 年 風 塵)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함.
팔달지부(八 達 之 父) 사마의의 부친인 사마준의 별칭. 그의 아들 여덟의 자가 모두 '달'자 돌림이다
팔방미인(八 方 美 人) 여러 방면의 일에 두루 능통한 사람
패가망신(敗 家 亡 身) : 가문을 욕되게 하고 신세를 망쳐 망신 당하다.
패군지장(敗 軍 之 將)
[敗:패할 패, 軍:군사 군, 之:어조사 지, 將:장수 장]
패배한 군대의 장수. ①패군지장은 용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②패군지장은 병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③일단 전투에 실패하면 구구한 변명을 하지 않는다.
조나라로 진격한 한신(韓信)의 가장 큰 골치거리는 정형의 좁은 길이었다. 이 길은 반드시 통과해야 되는 통로지만 너무 좁아 긴 대열로 행군하다가 불시에 협공을 당하면 천하의 한신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한신이 우려한 대로 조나라의 탁월한 전략가 이좌거(李左車)는 성안군에게 진격해 오는 한신의 군대를 이곳에서 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성안군은 이좌거의 전략을 비겁하고 졸렬한 속임수라며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난관을 뜻밖에 쉽게 돌파한 한신은 여세를 몰아 조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이때 한신은 이좌거를 생포하도록 명했고, 마침내 끌려온 그의 결박을 풀어주고 극진한 예로 맞이했다. 그리고 정중하게 물었다.
"앞으로 연과 제를 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이좌거의 대답은 이랬다.
"저는 싸움에 패한 장수는 용맹에 대해 말해서는 안되며(敗軍之將不可以言勇) 나라를 망친 대신은 나라를 보존하는 일을 도모해서는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포로가 되어 있는 몸입니다. 어찌 큰일을 꾀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패군지장은 용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이좌거의 말에서 [패군지장은 병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敗軍之將不語兵)]는 말이 파생되었다.
한신의 열의와 끈질긴 간청은 마침내 이좌거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이좌거는 계책을 말하기 전에 이렇게 서두를 꺼냈었다.
"일천 번을 생각해도 한 번의 실수는 있고(千慮日失),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의얻음(千慮一得)이 있습니다
패류잔화(敗 柳 殘 花) 잎 떨어진 버드나무와 시든 꽃(아름다움을 잃은 미인, 권세를 잃은 고관대작)
패역무도(悖 逆 無 道) 패악하고 불순하여 사람다운 데가 없음.
팽두이숙( 烹 頭 耳 熟 )
[ 삶을 팽/ 머리 두/ 귀 이/ 익을 숙 ] :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삶아진다는 데서, 중요한 것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됨을 말함.
平沙落雁(평사낙안) 평탄한 모래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단정하고 맵시 있게 쓴 글씨.
平地突出(평지돌출)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옴.
平地波瀾(평지파란) 평평한 땅에 파도가 일어난다. (잘되던 일을 일부러 어렵게 만들거나 또는 분쟁을 일으킬 때)
평지풍파(平 地 風 派)
[平:평평할 평. 地:땅 지. 風:바람 풍. 派:물결 파]
고요한 땅에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다. 공연한 일을 만들어 사태를 시끄럽게 만듦
유우석(劉禹錫)은 자(字)가 몽득(夢得)이다. 지금의 하북성 출신으로 박학굉사의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는 왕숙문을 따라 탁지원외랑의 벼슬에 올랐으나, 숙문이 정치에서 밀려난 후 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백난천과 깊이 사귀었으며 시명(詩名)이 높았다.
그가 지은 <竹枝詞 9수>에 이런 내용이 있다.
구당의 시끄러운 열두 여울
사람들은 말한다네, 길이 예로부터 어렵다고
아, 안타까워라 인심이 물만도 못하니
생각이 부족하여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위의 시는 파촉 일대의 민요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유우석이 새롭게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삼협(三峽)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구당에는 열 둘이나 되는 여울이 있는데 참으로 이곳은 지나 다니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 길은 가파르고 산이 험하니 비가 오면 순식간에 여울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弊袍破笠(폐포파립) 헤진 옷과 부러진 갓.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를 말함(빈궁하여 매우 초라한 모습)
弊風惡習(폐풍악습) 폐해가 되는 나쁜 풍습.
抱頭鼠竄(포두서찬) 무서워서 달아나는 쥐처럼 몰골사납게 얼른 숨음
炮烙之刑(포락지형) 은나라 주왕이 쓰던 형벌로 불에 달군 쇠기둥을 맨발로 걸어가게 하던 형벌
포류지자(蒲柳之姿)
[蒲:갯버들 포. 柳:버들 류. 之:어조사 지. 姿:모양 자]
잎이 일찍 떨어지는 연약한 나무라는 뜻.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것을 비유.
고열(顧悅)은 동진 사람으로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겼다. 343년에 은호(殷浩)가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양주자사(揚州刺使)가 되자 그를 차관으로 삼았다.
은호는 문학적이고 고상한 사람으로 평판은 좋았지만 10여 년이나 공무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실무에 익숙하지 못해 고열의 재간을 기대하고 양주 안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고열은 오랫동안 무리한 탓에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흰머리가 나고 뼈만 앙상했다. 은호는 휴식하도록 충고했지만, 고열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은호가 당시의 간문제(簡文帝)와 그 즉위 전부터 친밀했었기 때문에 고열도 황제와 친밀해져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용무를 보러 간 길에 간문제를 배알했다.
황제는 고열과 같이 30대였는데 아주 젊고 건강했다. 그가 고열의 흰머리를 보고 물었다.
"그대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왜 벌써 머리가 희었느냐?"
고열이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는 송백(松栢)이므로, 서리가 내렸어도 푸르르며, 저는 포류(蒲柳)이므로 가을이 되면 제일 먼저 잎이 지고 마는 겁니다. 할 수 없습니다."
황제는 그의 일하는 태도가 성실한데다 이 멋있는 대답에 아주 탄복하고, 그 후 고열을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발탁해 그 근면과 직무 충실에 보답했다.
蒲柳之質(포류지질)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와 같이 허약한 체질, 혹은 머리가 일찍 희는 약한 체질.
抱腹絶倒(포복절도) 배를 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몹시 웃음
飽食暖衣(포식난의)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음
포신구화(抱 薪 救 火)
[抱:안을 포. 薪:섶(땔나무) 신. 救:건질(구할) 구. 火:불 화]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고 한다. 앞 뒤 경황없이 행동하다가 일을 더욱 악화시킨다. 잘못된 방법으로 재난을 막으려다 반대로 재난이 더 커진다는 말
전국시대 말기 국력이 나날이 강대해진 진(秦)나라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정책으로 가까운 나라를 끊임없이 침략해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기원전 276년에 274년에 걸쳐 진나라는 연달아 세 번 위(魏)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점령했다. 그 후 기원전 273년 진나라는 또다시 위나라에 출병했다. 위나라의 민중은 진나라를 두려워해 저항하지 않았다. 이때 위나라의 장수 단간자(段干子)는 남양(南陽:허난성)을 할양하고 강화를 맺으라고 왕에게 건의했다.
그러자 전술가 소대(蘇代)가 왕에게 충고했다.
"단간자의 본심은 왕위를 뺏는 것이며, 진나라의 목적은 위나라를 병합하는 것이므로 화의를 맺어도 침공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나라에 땅을 할양하는 것은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는 것과 같이, 땔나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땅을 할양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위나라 왕은 소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남양 지구를 진나라에 할양하고 화의를 제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소대의 말대로 침공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위나라 땅을 빼앗았다. 위나라 왕이 죽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진나라는 위나라 성을 일거에 20개나 빼앗아 진나라의 동군(東郡)이라 했다.
위나라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진나라의 압박은 점점 더 강화되고, 기원전 225년 마침내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원교근공(遠交近攻):전국시대에 범저가 주창한 외교 정책. 먼 나라와 친히 교제를 맺어 놓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진나라는 이것을 채택해 6국을 멸망시켰음
포의지교(布衣之交) 가난할 때 사귄 교분. 벼슬하지 않을 때의 사귐.
포정해우(포 丁 解 牛)
[포:부엌 포. 丁:사내 정. 解:풀 해. 牛:소 우]
포정이 소를 잡는다는 말로, 어느 분야에 기술이 매우 뛰어난 것을 가리킴.
중국 전국(戰國)시대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칼잡이 명인(名人)인 포정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소를 잡을 때의 몸놀림과 칼놀림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빈틈 없는 손 움직임에 따라 고기가 발라지고 뼈에서 슬슬 떨어져 나간다. 그 리드미컬함이 마치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혜왕이 감탄했다.
"참으로 훌륭하군. 기술을 익히면 그 정도까지 될 수 있는 것이로군"
그러자 포정은 칼을 옆에 놓고 말했다.
"제가 뜻을 두고 있는 것은 도(道)이지 기술이 아닙니다. 저도 처음 소를 잡았을 적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것이 3년이 지나고부터는 겨우 칼을 찔러야 할 곳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관(五官)의 작용은 멎고 정신의 작용에만 좇아서 일을 하고 있는 거지요. 소의 자연스런 결을 따라 칼을 대어 발라내기 때문에 뼈에 붙은 살이나 뼈와 살이 이어진 곳(肯경)은 절대로 다치지 않습니다."
포정의 이야기는 그침 없이 이어졌다.
"솜씨가 뛰어난 칼잡이라면 1년에 칼 한 자루면 충분하지만 보통 칼잡이는 칼을 뼈에 부딪쳐 부러뜨리기 때문에 한 달에 한 자루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칼을 19년동안 썼는데도 이하나 빠지지 않고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포정의 말을 듣고 혜왕은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훌륭하 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
이렇듯 '포정해우'란 어느 분야에 전념하여 거의 달인의 경지에 들어선 경우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긍경(肯경)이란 말이 생겨났는데 肯(긍)은 뼈에 붙은 살, 경은 뼈와 살이 이어진 곳으로 사물의 가장 긴요한 곳 혹은 급소를 말한다.
포호빙하(暴 虎 馮 河)
[暴:사나울 폭(관용) 포. 虎:범 호. 馮:탈 빙. 河:물 하]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걸어서 황하를 건넌다는 뜻. 곧 무모한 행동.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용기의 비유.
공자의 3000여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는 학재(學才)가 뛰어나고 덕행이 높아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라고 한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이를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노하거나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 안회에게 어느 날,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왕후(王侯)에게 등용되면 포부를 펴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를 가슴 깊이 간직해 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는 나와 너 두 사람 정도일 것이다."
이 때 곁에서 듣고 있던 자로(子路)가 은근히 샘이 나서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도를 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약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임할 때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무용(武勇)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자로는 '그야 물론 너지'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대했으나 공자는 굳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거나 황하를 걸어서 건너는 것[暴虎馮河]과 같은 헛된 죽음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나는 행동을 같이하지 않을 것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 마음이 음흉 맞아서 겉과 속이 다름.
표사유피(豹死留皮)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
風紀紊亂(풍기문란) 풍속, 풍습에 대한 규율이 어지러운 것. 특히 남녀 교제 의 절도 의 어지러움을 말함.
풍마우세( 風 磨 雨 洗 )
[ 바람 풍/ 갈 마/ 비 우/ 씻을 세 ] :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김. 비바람에 갈리고 씻김.
풍마우불상급(風 馬 牛 不 相 及)
[風:바람 풍. 馬:말 마. 牛:소 우. 不:아니 불. 相:서로 상. 及:미칠 급]
암내낸 말과 소는 서로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관계가 없음을 뜻함.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의 부인 가운데 채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채땅에서 바친 공녀였다.
하루는 환공이 채희와 함께 뱃놀이를 나갔다. 채희가 성장한 곳은 물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환공을 놀려주고 싶어 일부러 배를 흔들었다. 겁에 질린 환공은 흔들지 말라고 했지만, 채희는 재미있어 더욱더 세게 흔들었다. 이 일로 성이 난 환공은 궁궐로 돌아오자 마자 채희를 친정인 채나라로 돌려 보냈다.
그런데 채나라에서는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재가시켰고, 환공은 이것을 빌미로 공격하였다. 제나라를 공략한 환공은 제후들의 나라를 자주 침범한 초나라의 기세를 꺾기 위해 초나라 국경과 인접한 소릉까지 진군하였다.
이에 놀란 초나라 성왕은 사자를 보내 이렇게 물었다.
"임금은 북해에 있고, 나는 남해에 있어 암내낸 말과 소로 서로 미치지 못하는데(風馬牛不相及),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왔습니까?"
이에 관중이 나서서 공물을 제때 바치지 않은 일과 주나라 의 소왕이 한수에서 익사한 일을 알기 위해 출동했다고 설명했다. 사자는 공물을 제때 바치지 않은 것은 자기 나라의 잘못이지만, 소왕에 관한 것은 한수가로 가서 알아보라고 말했다.
풍비박산(風 飛 雹 散)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 풍지박산은 잘못된 표현.
풍성학려(風 聲 鶴 戾 )
[風:바람 풍. 聲:소리 성. 鶴:학 학. 戾:학울 려.]
바람 소리와 울음소리란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의 비유.
동진(東晉:317∼420)의 9대 효무제(孝武帝) 때인 태원(太元) 8년(383)의 일이다.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전진(前秦)의 3대 임금인 부견( 堅:338∼385)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효무제는 재상 사안(謝安)의 동생인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석(謝石)과 조카인 전봉도독(前鋒都督) 사현(謝玄)에게 8만의 군사를 주고 나가 싸우게 했다. 우선 참모인 유로지(劉 之)가 5000의 군사로 적의 선봉을 격파하여 서전을 장식했다.
이 때 중군을 이끌고 비수( 水) 강변에 진을 치고 있던 부견은 휘하 제장(諸將)에게 이렇게 명했다.
"전군을 약간 후퇴시켰다가 적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돌아서서 반격하라."
그러나 이는 부견의 오산이었다. 일단 후퇴 길에 오른 전진군(前秦軍)은 반격은커녕 멈춰 설 수도 없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동진군은 사정없이 전진군을 들이쳤다. 대혼란에 빠진 전진군은 서로 밟고 밟혀 죽는 군사가 들을 덮고 강을 메웠다. 겨우 목숨을 건진 군사들은 겁을 먹은 나머지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風聲鶴 ]' 소리만 들어도 동진의 추격군이 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주] 부견 : 전진(前秦)의 3대 임금. 이름은 문옥(文玉), 자는 영고(永固). 시호(諡號)는 세조(世祖). 저족( 族) 출신. 2대 임금을 시해하고 즉위한 후 농경(農耕)을 장려하고 법제(法制)를 정비 확립하는 등 내치(內治)에 힘씀. 376년 화북(華北:황하 중 하류 지방)을 평정하고 전진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었음. 국력이 신장되자 천하 통일의 야망을 품고 383년 동진을 쳤으나 비수의 싸움에서 대패함. 나라가 분열된 가운데 38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음. (338∼385, 재위 357∼385).
풍수지탄( 風 樹 之 嘆 )
[風:바람 풍, 樹:나무 수, 之:어조사 지, 嘆:탄식할 탄]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란 말로,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에서 타온 말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하지 않으면 뒤에 한탄하게 된다는 말이다.
공자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 공자의 귀에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곡성의 장본인은 皐魚(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물어보았다. 울음을 그친 고어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세가지 한(恨)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를 한답시고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가보니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째는 저의 경륜을 받아들이려는 군주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바람이 조용히 있고 싶어도 불어온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마찬가지로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고 해도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子欲養而親不待).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는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저는 이제 이대로 서서 말라 죽으려고 합니다."
고어의 말이 끝나자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명심해 두어라. 훈계로 삼을 만하지 않은가"
이날 충격과 함께 깊은 감명을 받은 공자 제자 중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긴 사람이 열세명이나 되었다
풍신수길(豊臣秀吉)[한국사키워드 인물] 일본을 통일시키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로 일본어로 “토요도미 히데요시”
일본 오와리국 하국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다 노무나가의 허드레일꾼으로 일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1582년 주군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살해당한다.
히데요시는 미쓰히데의 잔당을 토벌하여 교토를 장악한다.1585년 후지와라씨로 성을 바꾸었으며 도요토미라는 성은 1586년부터 사용하였다. 1587년 반대세력을 모두 굴복시키고 일본을 통일함으로써 모모야마시대를 열었다.오다 노부나가의 후계가 되자.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대륙정복을 시도했다. 대마도주에게 명령하여 조선에게 명나라정복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4년 동안의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1592년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風雲魚水(풍운어수) 바람과 구름, 물고기와 물(임금과 신하의 아주 가까운 사이)
風雲之會(풍운지회)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남을 말함(또는 豪傑이 때를 만나 뜻을 이룸을 뜻한다.)
風月主人(풍월주인)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하여 노는 한가한 사람. 자연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
風前燈火(풍전등화) 바람 앞의 등불이란 말로, 상황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형태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
풍찬노숙 (風 餐 露 宿 )
[ 바람 풍/ 먹을 찬/ 이슬 노/ 묵을 숙 ] : 바람 속에서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데서,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에서 먹고 자는 것을 말함.
피갈회옥(피갈회옥) 거친 옷을 입고 옥을 지님(덕망이 있는 선비는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
皮骨相接(피골상접) 살가죽과 뼈가 맞붙을 정도로 몹시 마르다.
被髮左衽(피발좌임) 머리를 풀고 옷을 왼쪽으로 여민다(미개한 나라의 야만스런 풍습).
皮肉之見(피육지견) 거죽과 살만 보고 뼈를 보지 못한 것처럼 사물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천박한 견해
避獐逢虎(피장봉호)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난다(작은 해를 피하려다 큰 화를 당함).
被害妄想(피해망상) 남이 자기에게 해를 입힌다고 생각하는 일
疋夫無罪(필부무죄) 착한 사람일지라도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갖고 있으면 재앙을 부르게 된다는 역설적인 뜻
필부지용 (匹 夫 之 勇 )
[匹:짝 필, 夫:사내 부, 之:어조사 지, 勇:날랠 용]
힘으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천박한 용기. 사리 분별 없이 혈기만 믿고 함부로 날뛰는 용기.
秦(진)이 망하고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이 천하를 다툰 결과 劉邦이 이겨 漢(한)나라를 세운다. 項羽의 패인은 用兵術(용병술)에 있었다. 너무 자신의 힘을 과신(過信)한 나머지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天子(천자)가 된 劉邦은 洛陽(낙양)의 宮(궁)에서 대신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天下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知人(지인)과 用人(용인)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작전에는 張子房(장자방-張良), 보급에는 蕭何(소하), 전투에는 韓信(한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셋이나 있다. 나는 그들을 모두 쓸 수 있었지만 項羽(항우)는 단 하나의 걸출한 范增(범증) 조차 쓰지 못했다."
그러자 韓信이 劉邦에게 項羽의 爲人(위인)에 대해 말했다.
"그는 노기를 띠고 호령을 하면 천명이나 기절할 정도지만 用人(용인)에는 서툴러 어진 장군에게 믿고 말하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匹夫之勇(필부지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인정이 있어 병사가 병에 걸리면 흐느껴 울거나 자기가 먹을 음식까지도 나눠 주지만 막상 공을 세운 부하에게 벼슬을 내릴 때면 그것이 아까워 직인(職印)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매만지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婦人之仁(부인지용)에 불과합니다."
匹夫는 한낱 보잘 것 없는 남자다. 따라서 匹夫之勇이라면 심모원려(深謀遠慮)없이 완력으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淺薄(천박)한 용기'를 뜻한다. 물론 금물이다
필부필부 (匹 夫 匹 婦 )
[ 필 필/ 지아비 부/ 필 필/ 며느리 부 ] :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곧, 평범한 남녀. 보통 사람.
必有曲折(필유곡절) 반드시 어떠한 까닭이 있음
하
夏葛冬裘(하갈동구) 여름에는 베옷과 겨울에는 가죽옷. 일이 격에 맞음.
何待明年(하대명년)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함.
河圖洛書(하도낙서) 주역의 팔괘와 書經중 洪範九疇의 바탕이 되었다는 상형도(구하기 힘든 어려운 옛 도서)
하로동선(夏 爐 冬 扇)
[夏:여름 하, 爐:화로 로, 冬:겨울 동, 扇:부채 선]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곧 격이나 철에 맞지 않거나 쓸데 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
후한 시대의 학자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작무익지능 남무보지설)
獨如以夏進爐 以冬奏扇 亦徒耳(독여이하진로 이동주선 역도이)
"쓸모 없는 재능을 내세우고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권하고 겨울에 부채를 내미는 것과 같다"
겨울의 화로와 여름의 부채는 유용하고 환영 받는 물건이지만 겨울의 부채와 여름의 화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그러나 여름의 화로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젖은 것을 말릴 수도 있으며 겨울의 부채라 하더라도 그것을 부침으로써 꺼져가는 불을 살려서 활활 타게 할 수도 있다.
좀 더 비약하면 아무 쓸모 없이 보이는 것이 때로는 어느 것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는 이른바 장자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無用之用)'의 철학에도 생각이 미친다. 장자는 '사람들은 모두 有用의 쓰임을 알지만 無用의 쓰임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버린 돌이 주춧돌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못쓰겠다고 단념하고 내버린 것이 나중에 重用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범속한 인간들의 눈에 무용으로 보이는 것이 도리어 大用으로 쓰일 수도 있다.
[주]왕충 : 후한의 학자. 자는 중임(仲任). 독창성에 넘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지녔으며 선비적 사상
이나 속된 신앙, 유교적인 권위를 비판했음. 《論衡》85편 30권을 저술.
下石上臺(하석상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임시변통으로 이리 저리 둘러맞춤
下愚不移(하우불이)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함.
下意上達(하의상달) 아래의 뜻이 위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일반인들의 심정이 윗사람들에게 통하는 것을 의미 함.
下筆成文(하필성문) 붓만 들면 名文이라는 뜻. (言出爲論 下筆成文원어)
下學上達(하학상달) 낮고 쉬운 것부터 배워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음.
河漢其言(하한기언) 뜻이 심원하여 용이하게 헤아리기 어려움
河海之澤(하해지택) 강이나 바다처럼 넓고 큰 혜택.
鷽鳩笑鵬(학구소붕) 작은 비둘기가 큰 붕새를 보고 웃는다. 되지 못한 소인이 위인의 업적과 행위를 비웃는다는 뜻.
학수고대(鶴 首 苦 待) : 학의 목처럼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리다.
학여불급(學 如 不 及) 학업을 언제나 모자란 듯이 여김
학이지지(學 而 知 之) 배워서 앎.
학철부어(涸 轍 鮒 魚) 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
한강투석(漢 江 投 石) 한강에 돌 던지기.즉, 아무리 애를 써도 보람 없고 쓸모없는 일이라는 뜻.
한단지몽(邯 鄲 之 夢)
[邯:땅 이름 한. 鄲: 땅 이름 단. 之:갈 지(…의). 夢:꿈 몽]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의 비유.
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이야기이다. 도사 여옹이 한단[하북성(河北省)내]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가 옆에 와 앉더니 산동(山東)에서 사는 노생(盧生)이라며 신세 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에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그 베개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崔氏)로서 명문인 그 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했다. 경조윤(京兆尹:서울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을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올랐으나 재상이 투기하는 바람에 단주 자사(端州刺史)로 좌천되었다. 3년 후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조정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노생은 황제를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한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렸다. 변방의 장군과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노생은 포박 당하는 자리에서 탄식하여 말했다.
"내 고향 산동에서 땅뙈기나 부쳐먹고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애써 벼슬길에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걷던 때가 그립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칼을 들어 자결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말리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노생과 함께 잡힌 사람들은 모두 처형당했으나 그는 환관(宦官)이 힘써 준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수년 후 원죄( 罪)임이 밝혀지자 황제는 노생을 소환하여 중서령(中書令)을 제수(除授)한 뒤 연국공(燕國公)에 책봉하고 많은 은총을 내렸다. 그후 노생은 모두 권문세가(權門勢家)와 혼인하고 고관이 된 다섯 아들과 열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한 만년을 보내다가 황제의 어의(御醫)가 지켜보는 가운데 80년의 생애를 마쳤다.
노생이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전히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는 기장밥도 아직 다 되지 않았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
노생은 여옹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고하고 하단을 떠났다.
[동의어]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몽침(邯鄲夢枕), 노생지몽(盧生之夢)
한단지보(邯 鄲 之 步)
[邯:현 이름 한. 鄲:현 이름 단. 之:어조사 지. 步:걸음 보]
본분을 잊고 억지로 남의 흉내를 내면 실패한다. 자기 것을 잃음을 비유.
연(燕)나라 수도 수릉(壽陵)의 어느 소년이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 사람은 걸음걸이가 경쾌하고 우미하다는 말을 듣고 그 걸음걸이를 배우려고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일부러 한단까지 가기로 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한단에 당도한 소년은 온종일 거리의 모퉁이에 서서 한단 사람의 걷는 모습을 주시하고, 어떻게든 그 특징을 파악해 흉내를 내려고 노력했으나 좀처럼 숙달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가, 원래의 걸음걸이가 몸에 베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래의 걸음걸이를 완전히 잊어 버리기로 했다. 그로부터 그는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자기 본래의 걸음걸이를 버리고 새로운 걸음걸이를 습득코자 밤낮으로 고심을 거듭했다. 발음 내딛는 법, 손을 젓는 법, 몸놀림 등등. 그러나 여전히 숙달되지 않았다.
결국 소년은 배우는 것을 체념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자 이전의 걸음걸이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을 알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설설 기어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 발(旱魃)
[旱:가물 한. 魃:가물귀신 발]
가뭄. 가뭄을 몰고 오는 신화 속의 여신
삼황(三皇)이란,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를 말한다. 특히 황제 헌원씨 때에는 사람이 움집이 아닌 집을 만들고 삼베로 옷짜는 것을 고안했다. 약초를 조사하고 의료술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쌓은 황제가 산동성의 태산으로 행차한 적이 있었다. 큰 코끼리가 이끄는 보차(寶車)를 타고 온갖 신들을 거느린 이 행렬을 못마땅히 여긴 것은 호랑이와 이리떼를 대동한 치우(蚩尤)였다. 그는 바람이 신(風伯)과 비의 신(雨師)을 거느린 괴이한 난폭자였다.
치우는 자기와 같은 몸집을 한 괴신(怪神) 72명과 힘을 합쳐 불평을 일삼던 풍백·우사를 불러 반기를 들었다. 황제(黃帝)는 치우의 모반 소식을 듣고 판천에서 맞서 기세를 꺾은 다음 탁록에서 두 번째 결전을 벌였다. 황제의 군사는 사방의 신들을 무장으로 삼아, 곰·큰곰·호랑이 등을 훈련시켜 치우의 군대를 대적케 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치우의 군대는 풍백과 우사의 활동으로 큰 바람을 일으켜 폭우를 뿌렸다. 짙은 안개를 흩트려 놓고 동(銅)머리에 쇠 이마를 지닌 괴인 군과 도깨비.허깨비. 요괴 군들이 안개 속을 헤집으며 신출귀몰하여 날뛰었다. 황제 헌원은 그들과 8전8패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헌원은 안개 속을 헤집으며 적을 공격하는 지남차를 발견하여 적과 맞섰으며, 천상에 있는 딸 발(魃)이라는 여신을 불러내 풍백·우사가 일으킨 풍우와 농무를 흩뜨려 버렸다. 결국 치우는 힘이 소진되어 황제 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발이라는 여신은 용모도 추했지만 대머리였다. 싸움이 끝나자 온 힘을 다해 치우의 군대와 맞섰기 때문에 힘이 빠져 하늘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땅 위에 있자 가뭄이 찾아왔다. 그녀가 있는 곳엔 비 한 방울이 내리지 않는 메마른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한발(旱魃)이란 부르며 원망하게 되었다.
한우충동(汗 牛 充 棟)
[汗:땀 한. 牛:소 우. 充:채울 충. 棟:마룻대 동]
소가 땀을 흘릴만큼 실은 무게와 용마루에 받힐 만큼 쌓인 양이라는 뜻으로 책이 매우 많음을 이름
당(唐)나라의 명문장가로 알려진 유종원(柳宗元)이 같은 시대의 역사학자 육문통(陸文通)을 위해 쓴 묘표(墓表)에 있는 말이다. 묘표란 죽은 사람의 사적과 덕행을 기리는 문장으로 돌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것이다.
"공자《춘추》의 해석을 둘러싸고 1000명의 학자가 온갖 주석을 하고 있지만, 비뚤어진 해석이나 다른 학파에 대한 비난·공격만이 눈에 띈다. 더욱이 그런 패거리들의 저작만이 세상에 횡행하고
其爲書 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기위서 처즉충동우 출즉한우마)
그 저서나 장서의 엄청남이란, 소장하면 건물을 꽉 메우고
꺼내어 운반하면 수레를 끄는 마소도 그 무게에 땀을 흘릴 정도다.
라는 상태다. 한편 공자의 본뜻에 합치한 학설은 세상에 묻힌 채로 있다."
그는 학문계의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한탄했다.
한운야학(閑 雲 野 鶴) 한가로운 구름 아래 노니는 들의 학. 벼슬과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강호에 묻혀 사는 사람.
한중진미(閒 中 眞 味) 한가한 가운데 깃드는 참된 멋
한출첨배(汗 出 沾 背) 땀이 등에 밴다. 몹시 민망하고 창피함.
한화휴제(閑 話 休 題)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둔다는 뜻으로, 한동안 본론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감을 이름
할고담복(割 股 啖 腹) 공복을 채우기 위해 제 허벅살을 뜯어먹는다. 한 때의 곤란만 면하려는 어리석은 잔꾀(=割股充腹)
할반지통(割 半 之 痛) 몸의 반쪽을 베어 내는 고통, 형제자매가 죽은 슬픔
할수기포(割 鬚 棄 袍)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린다는 뜻.
함구무언(緘 口 無 言)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이 없음
함분축원(含 憤 蓄 怨) 분함과 원한을 품음.
함사사영(含 沙 射 影) 모래를 머금어 그림자를 쏜다는 말(암암리에 사람을 해치는 것을 비유한 말)
함포고목(含 哺 敲 腹)
(먹을을 함. 먹일 포. 두들릴 고. 배 목)
배물리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태평한 시대의 모습을 일컷는 말이다. 강구연월과 같은 맥락 아닌가 싶음
함흥차사 (咸 興 差 使)
[咸:다 함, 興:흥할 흥, 差:보낼 차, 使:사신 사]
심부름 갔다가 소식이 없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
故事成語는 중국의 독점물이 아니다. 우리 말 중에도 재미있는 표현이 많은데 咸興差使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咸興은 太祖 李成桂(이성계)의 고향이며 差使란 조정에서 懸案(현안)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냈던 관리를 말한다. 朝鮮 건국후 太祖는 論功行賞(논공행상)을 실시하여 鄭道傳(정도전), 趙浚(조준) 등 개국공신들에게 都評議使司(도평의사사)라는 기구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이 기구는 막강하여 王族과 士大夫들의 불만이 높았다.
게다가 太祖가 繼妃(계비) 소생인 芳碩(방석)을 世子로 책봉하자 불만을 품은 正妃(정비) 소생 芳遠(방원)이 太祖가 병석에 있는 틈을 타 사병을 동원해 芳碩과 함께 그의 스승이었던 鄭道傳, 이복 동생 芳蕃(방번)을 죽이고 芳果(방과)를 世子로 앉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太祖는 무척 상심해 芳果에게 양위하니 이가 定宗(정종)이다.(1398년)
2년 뒤 芳遠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되자 태조는 정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고향 함흥으로 잠적해 버렸다.(1401년) 태종은 평소 태조가 총애하던 成石璘(성석린)을 差使로 보내 가까스로 태조를 모셔오기는 했지만 이듬해 다시 咸興으로 가서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 뒤 太宗이 문안 인사차 差使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差使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조는 수차의 간청에도 돌아오지 않다가 태종이 보낸 無學大師(무학대사)의 간청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咸興差使라면 갔다가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합종연횡(合 縱 連 橫) 攻守동맹의 뜻, 남북으로 합류하고 동서로 연합한다는 뜻으로, 강적에 대항하기 위한 권모술수의 전략
항려지년(伉 儷 之 年) 장가들고 시집갈 나이
항용유희(亢 龍 有 悔)
[亢:목 항, 龍:용 룡, 有:있을 유, 懷:뉘우칠 회]
절정에 이른 용은 자칫 후회하기 쉽다. 영달을 다한 자는 더 이상 오를 수 있는 길도 없으며, 쇠퇴할 염려가 있으므로 삼가라는 말
중국 사람들이 끔직이 섬기는 동물에 '四靈(사령)'이란 것이 있다. 龍(용) · 鳳凰(봉황) · 麒麟(기린) · 거북이다. 각기 상징성을 부여했는데 용은 황제, 봉황은 길상의 상징이다. 기린은 자손과 행복, 거북은 건강과 장수의 상징이다. 사령 중 으뜸인 용은 그 생김새가 호랑이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 독수리의 발톱, 사슴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가공의 동물임에도 중국 사람들이 용에 대한 기대는 대단하고 그들만큼 용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용을 숭상하는 까닭은 용이 지닌 무한한 능력 때문이다. 이놈은 작아지려고 마음 먹으면 번데기만 해지지만 커지려고 하면 천하를 뒤덮을 수 있다. 아래로는 깊은 연못에 잠길 수도 있는 반면 위로는 구만리 창천(蒼天)을 솟구칠 수도 있으며 비구름을 마음대로 부린다. 如意珠(여의주)라도 입에 무는 날이면 온갖 조화를 부린다. 한마디로 無所不能(무소불능)의 존재인 것이다.
중국 첫 황제인 黃帝(황제)의 상징인 黃龍(황룡), 나이가 8백세라는 靑龍(청룡), 赤龍(적룡), 黑龍(흑룡) 등 오색 용은 천지를 이룩하고 있는 용들이다.
[淮南子(회남자)]에 보면 날개 달린 飛龍(비룡)이 뭇 날짐승을 낳았고, 네발이 달린 應龍(응룡)이 뭇짐승을 낳았으며 蛟龍(교룡)이 뭇 고기를 낳았다 했다.
이처럼 중국의 천지와 모든 생물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가면 용으로 귀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앉는 좌상을 龍床(용상)이라 하고 임금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龍架(용가), 임금이 타고 다니는 말을 龍騎(용기),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을 龍旗(용기), 임금의 얼굴을 龍顔(용안), 임금의 자손을 龍種(용종)이라 함을 미루어 봐도 용이 최고 통치권자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왕조의 성을 바꾸는 易姓(역성) 혁명을 할 때 용종 곧 용의 후손임을 입증시켜 쿠데타에 대한 백성의 반감을 수렴하려 했던 사실이 非一非再(비일비재)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용종임을 자처하고 그 물증으로서 龍鱗(용린) 곧 용비늘을 고려 왕조 대대로 계승해 내렸었다. 이 고려의 용비늘에 대한 조선조 중종 때의 기록을 보면, 잘 살펴보니 태모갑을 깎아 용비늘처럼 만든 것이라 했다. 이 용비늘은 명종때 난 경복궁의 불로 타 없어졌다.
周易(주역)의 乾掛(건괘)는 龍이 승천하는 기세,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남성적 기운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운세를 단계별로 龍에 비유하고 있다. 곧 연못 깊이 잠복해 있는 龍(潛龍)은 德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런 다음 땅위로 올라와 자신을 드러내는 龍(見龍)이 되면 비로소 德을 만천하에 펴 훌륭한 君主(군주)의 신임을 받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하늘을 힘차게 나는 龍(飛龍)이다. 이것은 본 掛의 극치로서 제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德을 갖추었으므로 훌륭한 신하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보필한다.
이렇게 하여 절정의 경지에 이른 龍이 亢龍(항룡)이다. 昇天(승천)한 龍인 셈이다. 하지만 物極則反(물극즉반-만물이 極에 차면 기우는 法),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지 않았는가.
'亢龍'에 대한 孔子의 해석은 示唆(시사)하는 바가 크다. 곧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亢龍에 이르면 後悔(후회)하기 쉽상이니 이것이 亢龍有悔라는 것이다.
물론 亢龍有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만과 무시보다 덕을 쌓고 처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잃었던 民心(민심)을 회복하는 길 뿐이다. 요컨대 乾掛(건괘)는 우리에게 변화에 순응할 것과 겸손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항산항심(恒 産 恒 心)
[恒:항상 항, 産:재산 산, 항상 항, 心:마음 심]
재산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김
孟子(맹자)가 遊說(유세)에 실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 山東縣(산동현)에 돌아와 쓸쓸히 만년을 보낼 때의 일이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등(騰)이라는 小國이 있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騰文公(등문공)은 그를 國政(국정)의 顧問(고문)으로 초빙했다. 孟子가 오자 그는 대뜸 治國(치국)의 방책을 물었다.
사실 孟子는 위민정치 이념에 투철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늘 통치자 보다는 백성의 입장에 서서 정치를 논했다. 그는 文公에게 왕도정치를 설명하면서 그 첫걸음은 백성들의 의식주를 만족하게 해주는데 있다고 했다. 제 아무리 仁義(인의)니 도덕을 강조한들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砂上樓閣(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곧 민생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有恒産이면 有恒心입니다(변치 않는 재산이 있으면 변치 않는 마음도 있는 법)."
이 말을 뒤집어 보면 恒産이 없으면 恒心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 속담에도 '쌀 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또 '사흘 굶어서 도둑 안되는 자 없다'는 말도 있다. 治國의 捷徑(첩경), 그것은 民生에 있다. 먼저 백성을 배불리 먹여 놓고 볼 일이다.
해로동혈(偕 老 同 穴)
[偕:함께 해, 老:늙을 로, 同:같을 동, 穴:구멍 혈]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힌다. 생사를 같이 하는 부부의 사랑의 맹세
[詩經]에 실린 黃河 유역에 있던 주민들의 민요에서 유래한 말이다. 먼저 '격고(擊鼓)'라는 詩에,
生死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죽으나 사나 만나나 헤어지나, 그대와 함께 하자 언약하였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겠노라).
전선에 출전한 병사가 고향에 돌아갈 날이 언젤런지 …… 愛馬와도 死別하고 싸움터를 방황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아, 멀리 떠나 우리의 언약을 어기다니"로 끝맺는 슬픈 詩다.
[대거(大車)]에는 다음과 같은 詩가 나온다.
穀則異室 死則同穴(살아서는 집이 다르나, 죽어서는 무덤을 같이 하리라)
謂子不信 有如교日(나를 못믿겠다 이를진데,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하리라)
이 노래는 楚에 의해 멸망한 식국(息國)의 슬픈 이야기다. 군주는 포로가 되고 부인은 楚王의 아내로 지목되어 宮(궁)으로 끌려갔다. 楚王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부인은 포로가 된 남편을 몰래 만나, "죽어도 이 몸을 타인에게 바칠 수 없다."고 하고선 이 시를 짓고는 자결, 남편도 따라서 자결했다고 전한다.
偕老同穴이란 사랑하는 부부가 百年偕老(백년해로)하여 죽어서도 같은 무덤에 묻히는 것을 의미한다.
해불양수(海 不 讓 水) 바다는 모든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河海不擇細流).
해시지와(亥 豕 之 訛) 亥자와 豕자는 字體가 비슷하여 혼동하기가 쉽다는 뜻 책을 간행할 때 비슷한 글자는 잘못 쓰기 쉽다
해어지화(解 語 之 花)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으로, 미인을 이르는 말.
해어화(解 語 花)
[解:풀 해, 語:말씀 어, 花;꽃 화]
말을 알아 듣는 꽃. 용모가 절색인 미인을 가리킬 때에 쓰는 말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알아 듣는 꽃'으로 후에는 미인(美人)을 뜻하게 되었다.
때는 따뜻한 초여름의 어느날,唐(당)나라 서울 장안(長安)태액지(太液池)의 연꽃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玄宗(현종)과 楊貴妃(양귀비)의 행렬은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태액지에 이르렀다.그러나 玄宗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옆에 앉아 있는 楊貴妃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그래서 주위의 궁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연꽃도 解語花보다는 아름답지 않구나,"
楊貴妃를 두고 한 말이었다.처음에는 다들 무슨 영문인가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과연 지당한 말씀'이라고 아뢰었다.
현종은 아들의 부인이었던 양귀비를 보는 순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야 말았다. 현종이 얼마나 그녀를 애틋하게 여겼는지는 다음의 한 귀절에서 짐작할 수 있다.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높이 뜬 뒤에야 일어난다."
사실 玄宗은 할머니 측천무후(則天武后)에 의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唐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개원(開元)의 太平聖代(태평성대)를 이루었던 현명한 군주였다.
총애하던 무비(武妃)가 죽은 후 수왕 이모의 아내 양옥환을 맞아 귀비로 삼았다. 양귀비에 대한 총애가 지극하여 그의 일족들은 모두 영달을 꾀하였으며, 종조형 양쇠에게는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하사할 정도였다. 楊貴妃를 알고부터 그만 政事(정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어 그 결과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당하여 楊貴妃마저 목매어 죽이고 만다.그러고도 그녀를 잊지 못해 자나 깨나 그리는 마음은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에도잘 나타나 있다.대당제국도 차츰 기울기 시작해 마침내 亡하고 만다. 그러고 보면 解語花는 망국화(亡國花)이기도 했던 셈이다.
해옹호구(海 翁 好 鷗)
[海:바다 해. 翁:늙은이 옹. 好:좋아할 호. 鷗:갈매기 구]
바다 노인이 갈매기를 좋아한다는 말로, 사람에게 야심이 있으면 새도 그것을 알고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말임.
바닷가에 사는 어떤 이가 갈매기를 좋아했다. 그는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서 갈매기들과 더불어 놀았는데, 그에게 놀러 오는 갈매기들이 200마리도 넘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더불어 논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갈매기를 잡아오도록 해라. 내 그걸 가지고 놀고 싶구나."
그는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다음날 역시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이날 갈매기들은 그 위를 맴돌며 날 뿐 내려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
뒤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러므로 '지극한 말이란 말을 떠나는 것이고 지극한 행위란 작위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극한 사람은 무언무위(無言無爲)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런 말도 없고 다른 마음을 먹고 있지 않다면 자연에 융화될 수 있다. 갈매기 같은 새들도 사람들이 어떠한 욕망이나 생각 없이 대한다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갖기만 하여도 갈매기들은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해의추식(解 衣 推 食) 옷을 벗어주고 음식을 밀어준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행백리자 반구십(行 百 里 者 半 九 十)
[行:갈 행. 百:일백 백. 里:리 리. 者:놈 자. 半:절반 반]
백리를 가는 것은 구십리가 절반이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 단계가 중요하다.
전국(戰國) 시대의 일이다. 서쪽의 강국 진(秦)나라가 점차 그 우위를 확보하자 진나라 무왕(武王)은 안심하고 자만하는 기색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를 걱정한 신하 한 사람이 왕에게 충고했다.
"지금 대왕께서 위(魏)와 조(趙)를 얻으신 것에 만족하시고 제(齊)를 잃은 것을 가벼이 생각하고 계시는 듯하옵니다. 《시경》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좋게 여물이는 사람은 드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왕께서는 모두 처음과 끝을 다같이 존중하여 대성하셨습니다. 이에 반해 처음을 잘하고도 끝을 완성하지 않은 경우가 역사상에 많이 있습니다. 대왕께서 천하통일의 대업을 착실히 추진하시어 유종의 미를 거두신다면, 천하의 삼왕에 대왕을 더해 사왕(四王)이라 찬양할 수도 있으며, 춘추오패에 대왕을 넣어 육패(六覇)라 해도 우습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대왕께서 끝을 마무리짓지 못하신다면, 사람들은 대왕을 오(吳)왕 부차나 진(晉)의 지백(智伯)과 같이 비참한 말로를 본 자들과 동일시할 게 틀림없습니다.
《시경》또 '행백리자 반구십(行百里者 半九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자만하고 계십니다. 각국은 호시탐탐 틈만 있으면 다른 나라를 엿보고, 어제의 우리편이 내일은 적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증이 없는 난세입니다. 참으로 위급 존망의 때니만큼, 자만하고 태평스레 굴고 있을 때가 아닌 줄로 아옵니다."
행불유경(行 不 由 徑)
[行:다닐 행. 不:아니 불. 由:말미암을 유. 徑:지름길 경]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고 큰 길을 걷는다는 말로, 정정당당히 일함
공자의 제자 자유(子遊)가 무성(武城)이라는 작은 도시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축하 겸 애제자가 일하는 모습을 보러 간 공자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너도 부하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터인데, 이렇다 할 인물이 있느냐?"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가고,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行不由徑).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얻어서 다행이다. 소중히 대하려무나."
공자는 기뻐하며 자유를 격려했다.
행시주육(行 尸 走 肉) 송장의 움직임과 같이 형태만 있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 무식한 사람을 멸시하는 말로 쓰인다.
행운유수(行 雲 流 水) 떠나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
행장진퇴(行 藏 進 退) 지식인이 時勢에 응하여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설 줄도 아는 처신의 신중함.
향우지탄(向 隅 之 歎) 많은 사람들이 다 즐거워하나 자기만은 구석을 향하여 한탄한다.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한탄함
허무맹랑(虛 無 孟 浪) 터무니없이 허황되고 실상이 없음.
허례허식(虛 禮 虛 飾) 예절, 법식 등을 겉으로만 꾸며 번드레하게 하는 일
허심탄회(虛 心 坦 懷) 마음속에 아무런 사념 없이 품은 생각을 터놓고 말함
허유괘표(許 由 掛 瓢) 속세를 떠나 청렴하게 살아가는 모양
허장성세(虛 張 聲 勢) 실속이 없으면서 허세만 떠벌림.
허허실실(虛 虛 實 實) 서로 꾀나 재주를 다하여 적의 실을 피하고 허를 서로 타서 싸움.
혁 명(革 命)
[革:가죽(고칠) 혁. 命:목숨 명]
하늘의 명을 뜯어 고침. ① 이전의 왕조를 뒤집고 다른 왕조가 들어서는 일. ② 종래의 것을 단번에 뒤집어 엎는 일
혁(革)은 본래 《주역》에 있는 괘의 이름이다. 마치 연못 속에 불덩이가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다. 물과 불은 상극이다. 그러므로 무언가가 뒤집어 놓아야 한다. 그런 괘가 혁(革)이다. 그런 의미로 혁명(革命)은 '명을 뜯어 고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이계(夏의 桀王)라는 정신 빠진 군주나 자수신(子受辛:殷의 紂王)의 행동 반경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이계가 날마다 주지육림(酒池肉林) 놀이에 취해 정신 없이 행동하자 좌상으로 있던 관룡봉이 진언했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날마다 주지육림에 빠져 계시면 장차 이 나라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이계는 코웃음을 치며 힐책했다.
"그 무슨 당찮은 소리냐? 무릇 천자란 하늘의 명을 받아 나오는 법이다. 천자가 멸망하는 것은 하늘의 해가 없어져야만 운수가 다했다고 하는 법이야."
놀이가 어디 그뿐인가. 다음에는 포락지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불에 달군 구리 원주 위를 죄인으로 하여금 걸어가게 하여 불길에 휩싸여 타 죽게 하는 것이었다. 사이계가 좌상 관룡봉에게 묻는다.
"어떤가 좌상, 재미있는가?"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데 재미가 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괴로워하는데 폐하 한 사람만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신하는 군주의 지체라 했습니다. 몸이 즐거워하는데 어찌 팔 다리가 재미없다 하겠습니까?"
관룡봉은 곧 근위 무사에게 끌려 나와 불에 달군 구리 원주 위를 걷다가 불구덩이 속에 떨어져 죽었다. 사이계가 흉폭해지자 상부락의 추장 자천을(은의 탕왕)은 이윤과 손을 잡고 하왕조를 공격하여 무너뜨렸다. 하늘의 명을 뜯어 고친 혁명인 셈이다.
현두자고(懸 頭 刺 股) 머리를 노끈으로 묶어 높이 걸어 잠을 깨우고 또 허벅다리를 찔러 잠을 깨운다. 학업에 매우 힘씀
현모양처 (賢 母 良 妻 )
[어질 현/ 어미 모/ 좋을 양/ 아내 처 ] : 어진 어머니이면서 또한 착한 아내.
현상호의 (玄 裳 縞 衣 )
[ 검을 현/ 치마 상/ 명주 호/ 옷 의 ] : 검은 치마와 흰 저고리라는 뜻으로, 학(鶴 )의 모양을 말함. 소식(蘇 軾 )의 후적벽부(後 赤 壁 賦 )에 나오는 말.
변하구변(懸 河 口 辯) 흐르는 물과 같이 거침없이 술술 나오는 말.
현하웅변(懸 河 雄 辯) 현하구변과 같은 뜻
현하지변 (懸 河 之 辯 )
[ 매달 현/ 강 이름 하/ 갈 지/ 말 잘할 변 ] : 거침없이 잘 하는 말. 현하(懸 河 )는 경사가 급하여 쏜살같이 흐르는 강으로, 말을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을 비유한 뜻입니다.
孑孑單身(혈혈단신) 지할 때가 없는 외로운 홀몸.
형설지공(螢 雪 之 功)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함
中國 역사상 12열국 중 하나인 東晋(동진)은 귀족 문화가 어느 나라 보다도 개화한 나라였다. 詩에서는 유명한 도잠(陶潛-陶淵明), 繪畵(회화)에는 고개지(顧愷之), 書에는 왕희지(王羲之) 등이 활약하여 훌륭한 문화 업적을 남긴 나라이다.
이 東晋에 차윤(車胤)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字(자)가 武子(무자)라 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태도가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온갖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독서할 때 밝힐 등불의 기름을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車胤은 여름이 되면 깨끗한 비단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다 수십 마리의 개똥 벌레(螢)를 잡아 넣고 밤이 되면 이것으로 책을 비추어 가며 읽기를 계속했다. 그 결과 후에 벼슬이 尙書郞(상서랑:皇帝의 측근에서 조서를 맡음)에 이르렀다.
또 같은 시대에 손강(孫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性情(성정)이 말고 깨끗하여 세상 사람들과 어울림에 잡스런 데가 없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불을 밝힐 기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겨울이면 눈(雪)에 비추어서 책을 부지런히 읽었다. 그 결과 뒤에 벼슬이 御史大夫(어사대부:대사헌)에 이르렀다. 현재 책상을 雪案(서안)이라 함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형제혁장(兄 弟 鬩 墻) 형제가 담장 안에서 싸운다. 同族相爭을 말한다.
형창설안(螢 窓 雪 案)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문에 힘씀을 비유한 말.
형 처(荊 妻)
[荊:가시나무 형. 妻:아내 처]
남에게 자기 아내를 낮추어 일컫는 말
후한(後漢) 시대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의 처 맹광(孟光)의 이야기다.
맹광은 뚱보인데다 얼굴이 추하고, 게다가 얼굴빛이 새까맸다. 하지만 미녀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쉽게 돌절구를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세었다. 더욱이 마음이 상냥하고 그 언행에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마을에서는 평판이 좋아 사방에서 혼담이 들어왔으나 맹광은 계속 거절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른 살이 되어 버렸다.
맹관은 혼담이 들어오는 족족 퇴박하더니 양홍이라는 돼지치기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맹광의 부친이 양홍을 찾아가서 청혼을 했다.
'댁의 따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
양홍이 청혼을 받아들이자 맹광은 양홍의 희망대로 신변의 일용품만 가지고 시집을 왔다. 이튿날부터 즉시 허술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트레머리로 하고 친정에 있을 때와 같은 복장을 했다. 양홍은 그러한 아내를 보고 흡족해 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의 아내다."
당시는 왕망(王莽)이 정권을 빼앗아 국호를 신(新)이라 칭한 때로, 그의 악정을 견디지 못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천하가 어지러웠다. 양호은 학식이나 인품이 높아 사방의 반란자나 그 부하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혹의 손길을 피해 돼지치기를 그만두고 맹광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산속에다 양홍은 땅을 갈고, 맹광은 베를 짜며 2년간을 살았다.
이윽고 산속에까지 유혹의 손이 뻗치자 두 사람은 오(吳)나라에 가서 이름을 숨긴 채 어느 집의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
양홍은 매일 삯방아를 찧으러 나가고, 그 근소한 수입으로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맹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 치마를 입고서 남편을 따뜻이 맞았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공손히 남편에게 식사를 권했다.
常荊釵布裙 每進食 擧案齊眉(상형재포군 매진식 거안제미)
이 맹광의 고사에서 허술한 옷차림을 가리켜 형채포군(荊釵布裙)이라 하고, 부인이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기는 것을 거안제미(擧案齊眉)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처(荊妻)라는 말도 생겼다.
혜분난비(惠 焚 蘭 悲) 혜초가 불에 타면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의 불행을 슬퍼함
혜전탈우(蹊 田 奪 牛)
[蹊:지름길 혜, 田:밭 전, 奪:빼앗을 탈, 牛:소 우]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그 소를 빼앗다. 가벼운 죄에 대한 처벌이 혹독하다는 뜻
춘추시대 陳(진)나라의 대부 夏徵舒(하징서)가 자기 집에 놀러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임금 靈公(영공)을 弑害(시해)했다. 이 소식을 들은 楚(초)나라 莊王(장왕)이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의 수도를 공략하고 하징서를 죽임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장왕은 내친 김에 진나라를 초나라의 한 고을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장왕이 우쭐해 있을 때 齊(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있던 대부 申叔時(신숙시)가 돌아왔다. 그가 장왕에게 업무 보고만 하고는 그대로 물러나려고 하자 장왕은 불쾌한 표정으로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하징서가 무도하게도 그 임금을 시해했기 때문에 과인이 쳐들어가 그를 죽였다. 諸侯(제후)와 縣公(현공)들이 모두 축하해주는데 그대만 아무 말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신숙시의 대답은 이랬다.
"임금을 시해한 죄는 물론 크지요. 그를 처단하신 전하의 의리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남의 소가 무단히 내 밭을 짓밟았다면 잘못된 일이지요. 그렇다고 남의 소를 빼앗는다면 지나친 처벌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후들이 전하를 칭송하는 것은 죄지은 자를 징벌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를 이 나라의 한 고을로 만든 것은 남의 富(부)를 탐낸 것입니다. 죄 있는 자를 징벌하면서 남의 땅까지 탐낸다면 이게 옳은 일이 되겠습니까?"
장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과인의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군.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되지 않겠는가."
그 신하에 그 임금. 장왕은 빼앗은 진나라를 즉각 원상 회복시켜 주었다.
호가호위( 狐 假 虎 威 )
[狐:여우 호. 假:거짓 가. 虎:범 호. 威:위엄 위]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림
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엽, 초(楚) 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魏:梁) 나라에서 사신이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江乙)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사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나이까. 전하,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
"모르오."
"하오면 들어 보시옵소서.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나이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軍勢), 즉 전하의 강병(强兵)이옵니다."
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貶)하는 이유는 아부로 선왕의 영신( 臣: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호각지세(互 角 之 勢) 서로 비슷비슷한 威勢
호계삼소(虎 溪 三 笑) 학문이나 예술에 열중하여 道程이 먼 것을 잊음(중국 고사에서 취제한 동양화의 화제)
호구고수(狐 裘 羔 袖) 값비싼 호구(호백구)에 염소가죽으로 소매를 단다.(전체적으로 좋으나 한군데 결점이 있음)
호구지계(狐 丘 之 戒)
[狐:여우 호. 丘:언덕 구. 之:어조사 지. 戒:경계할 계]
호구의 경계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망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
초(楚)나라에 호구(狐丘之)에 사는 한 영감이 손숙오(孫叔敖)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세 가지 원망의 대상이 있습니다. 혹시 그걸 아십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사람들은 직위가 높은 사람을 투기하고, 임금은 벼슬이 높은 사람을 미워하며,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은 세인의 원망을 듣습니다."
그러자 손숙오가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직위가 올라갈수록 저의 뜻은 낮추고, 제 벼슬이 높아질수록 저의 마음을 작게 가지며, 저의 녹이 많아질수록 베풀기를 넓게 한다면 이 세가지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
세월이 흘러 손숙오는 병이 들어 죽어갈 때 아들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임금이 나를 자주 봉(封)하려 했지만 내가 받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임금께서는 분명 네게 땅을 봉해 주실 것인즉 너는 절대 이로운 땅을 받지 말아라.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침구(寢丘)라는 지방이 있으니 이곳은 이롭지도 않고 명성이 아주 나쁘다. 초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믿고 월나라 사람들은 상서를 믿으니 오래도록 차지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손숙오가 죽자 임금은 과연 기름지고 아름다운 지방을 그의 아들에게 분봉하려 했으나 그의 아들은 부친의 유언대로 이를 사양하고 침구지방을 받아 그곳에서 자손들이 오래도록 살았다.
호구지책( 糊 口 之 策 )
[풀 호/ 입 구/ 갈 지/ 채찍 책]:입에 풀칠할 방책(方 策 ). 곧,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호기택환(虎 飢 擇 宦) 굶주린 호랑이는 고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이 위급할 때는 무슨 일이든 분별 선택하지 못한다.
호노한복(豪 奴 悍 僕) 고분고분하지 않고 드센 종
호모부가(毫 毛 斧 柯) 수목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禍는 미세할 예방하라)
호복기사(胡 服 騎 射) 호복(胡腹:유목 기마족의 복장)을 입고 기사를 초청한다.(어떤 일에 착수할 만전의 태세를 갖추는 것)
호부견자(虎 父 犬 子) 호랑이 아비에 개아들(나라를 세운 유비에 비하여 그 나라를 주색으로 망쳐버린 아들 유선을 비교)
호사다마(好 事 多 魔) 좋은 일에는 흔히 장애물이 들기 쉬움
호사유피(虎 死 留 皮)
[虎:벙 호. 死:죽을 사. 留:남길 류. 皮:가죽 피. 人:사람 인. 名:이름 명]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명예의 소중함을 강조한 말.
당(唐)나라가 멸망하고 오대(五代)가 교체하던 시기에 양(梁)나라에 왕언장(王彦章)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성품이 우직하고 곧이곧대로 그는 싸움에 나갈 때면 항상 쇠창을 들고 용감히 덤벼들어서 별명이 왕철창(王鐵槍)이었다.
그런데 산서(山西)에 있던 진나라가 국호를 후당(後唐)으로 바꾸고 양나라로 쳐들어갔다. 이때 왕언창도 출전했으나 크게 패해 파면까지 당했다. 그 후 후당이 다시 침입했을 때 재기용되었으나 이번에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후당의 임금이 왕언장의 용맹무쌍함을 높이 사 귀순할 것을 종용하지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
진노한 임금은 그에게 사형을 내렸고, 그는 마치 자신이 살아 생전 늘 입버릇처럼 한 말에 따르기라도 하듯이 의연한 자세로 죽음의 길을 갔다. 그는 평소 속담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즐겼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
한 나라의 장수로서 명예를 소중히 여긴 왕언장의 행동은 의롭다할 만하다.
호시탐탐(虎 視 耽 耽)
[虎:범 호. 視:볼 시. 耽:엿볼 탐]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봄. 기회를 노리고 있는 행위
원문으로 풀어 가면 호랑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 보는 모습이다. 위엄이 있는 그 모습에서 먹이감을 찾는 사나운 눈빛을 떠올릴 수 있다.
《역경》의 <이괘(履卦)>에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虎視耽耽 其欲逐逐 無咎)'에서 나온 말이다. '그 욕심이 마구 일어나지만 허물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욕심 사나운 짓거리가 옳은 일이면 어느 누구도 허물할 수 가 없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에 그런 일들이 발생한다. 어쨌든 호시탐탐(虎視耽耽)은 침략적인 야욕이나 준비하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호언장담( 豪 言 壯 談 )
[ 호걸 호/ 말씀 언/ 씩씩할 장/ 말씀 담 ] : 호기스런 말과 자신있는 말.
호연지기( 浩 然 之 氣 )
[浩:넓을 호. 然:그럴 연. 之:갈 지(…의). 氣:기운 기.]
[준말] 호기(浩氣). [동의어] 정대지기(正大之氣). 정기(正氣).
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 ②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 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③ 사물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
전국 시대의 철인(哲人) 맹자(孟子)에게 제(齊) 나라 출신의 공손추(公孫丑)란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이 제나라의 재상이 되시어 도를 행하신다면 제나라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선생님도 역시 마음이 움직이시겠지요?"
"나는 40 이후에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용(勇)'이다. 자기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고, 이것이야말로 '대용(大勇)'으로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최상의 수단이니라."
"그럼, 선생님의 부동심(不動心)과 고자(告子)의 부동심은 어떻게 다릅니까?"
고자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하여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지도 악(惡)하지도 않다'고 논박한 맹자의 논적(論敵)이다.
"고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애써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말을 알고 있다[知言]는 점에서 고자 보다 낫다. 게다가 '호연지기'도 기르고 있다."
'지언'이란 피사( 辭:편벽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회피하는 말)를 간파하는 식견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란 요컨대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는 것으로서 천지간에 넘치는 지대(至大), 지강(至剛)하고 곧으며 이것을 기르면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천지까지 충만 한다는 원기(元氣)를 말한다. 그리고 이 기(氣)는 도와 의(義)에 합치하는 것으로서 도의(道義)가 없으면 시들고 만다. 이 '기'가 인간에게 깃들여 그 사람의 행위가 도의에 부합하여 부끄러울 바 없으면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도덕적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호유기미(狐 濡 其 尾) 처음에는 쉬워도 나중에는 곤경에 빠짐, 준비가 없으면 일을 추진할 수 없음
호의현상(縞 衣 玄 裳) 흰 옷과 검은 치마.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말로 학과 같은 깨끗함.
호의호식(好 衣 好 食 )
[좋을 호/ 옷 의/ 좋을 호/ 밥 식 ] :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이란 뜻에서, 잘 입고 잘 먹는 것을 말함.
호접지몽(胡 蝶 之 夢 )
[胡:오랑캐 어찌 호. 蝶:나비 접. 之:갈 지(…의). 夢:꿈 몽.]
나비가 된 꿈이란 뜻. 곧 ① 물아 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물아의 구별을 잊음의 비유. ②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심경. ③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④ 꿈.
전국 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이름은 주(周), B.C. 365∼290]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물(物)의 시비(是非) 선악(善惡) 진위(眞僞) 미추(美醜) 빈부(貧富) 귀천(貴賤)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한 사람이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그 나비인 자기가 꿈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장자(莊子)》의 이런 우화(寓話)는 독자를 유현(幽玄)의 세계로 끌어들여 생각게 한다.
[주]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요즈음에도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음.
유현 : 사물(事物)의 이치(理致) 또는 아취(雅趣)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음.
호중천지(壺 中 天 地)
[壺:항아리 호.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天:하늘 천]
별천지 · 별세계 · 선경(仙境)의 뜻으로 쓰이는 말. 항아리 속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술에 취하여 세속을 잊어버리는 즐거움을 이르는 말.
후한(後漢) 시대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장의 관원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장에 약장수 할아버지가 한 분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가게 앞에 항아리를 놓아 두고, 시장이 끝나면 얼른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시장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비장방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 할아버지를 찾아 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를 항아리 속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항아리 속에는 훌륭한 옥으로 만든 저택이 장엄하고 화려하게 솟아 있고, 그 저택 안에는 좋은 술과 맛있는 요리가 꽉 차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마음껏 술도 마시고 요리도 먹고 나서, 그 항아리 속에서 밖으로 나왔다.
호천고지(呼 天 叩 地) 매우 애통하여 하늘을 부르며 땅을 침
호천망극(昊 天 罔 極) 끝없는 하늘과 같이 부모의 은공이 끝이 없음.
호치단순(皓 齒 丹 脣) 아름다운 여자의 붉은 입술과 흰 이를 말한다.
호형호제(呼 兄 呼 弟) 서로 형. 아우라 부를 정도로 가까운 친구사이
호호선생(好 好 先 生) 무엇이던지 '좋네, 좋아'라고 답하는 사마휘의 별명.(우유부단하다는 말 들으나, 남의 원망은 안 산다)
혹세무인(惑 世 誣 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
혼비백산 (魂 飛 魄 散 )
[ 넋 혼/ 날 비/ 넋 백/ 흩을 산 ] : 어떤 일로 몹시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일컬음.
혼승백강(魂 昇 魄 降) 죽은 사람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시체는 땅으로 내려감
혼야애걸(昏 夜 哀 乞) 깊은 밤, 사람 없는 틈을 타서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애걸하는 일
혼연일체(渾 然 一 體 )
[ 흐릴 혼/ 그러할 연/ 한 일/ 몸 체 ] : 어떠한 차별(差 別 )이나 균열(龜 裂 )이 없이 한 몸이 됨.
혼연일치(渾 然 一 致 )
[ 흐릴 혼/ 그러할 연/ 한 일/ 보낼 치 ] : 어떠한 차별(差 別 )이나 구별(區 別 )이 없이 한 가지로 합치(合 致 )함.
혼정신성 (昏 定 晨 省 )
[ 어두울 혼/ 정할 정/ 새벽 신/ 살필 성 ]
혼정(昏 定 :밤에 잘 때에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安 寧 )하시기를 여쭙는 일)과 신성(晨 省 : 이른 아침에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 候) 를 살피는 일). 자식이 조석(朝 夕 )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 정성(定 省 ).
홀연홀몰 (忽 顯 忽 沒 )
[소홀히 할 홀/ 나타날 현/ 소홍히 할 홀/ 가라앉을 몰 ] (忽 顯 忽 沒 ) :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짐.
홍로점설 (紅 爐 點 雪 )
[ 붉을 홍/ 화로 로/ 점 점/ 눈 설 ] : 빨갛게 달아오른 화로(火爐) 위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듯이, 사욕(私 慾 )이나 의혹(疑 惑 )이 일순간(一 瞬 間 )에 꺼져 없어짐을 뜻하는 말임. 또는, 큰 일을 하는데 있어서 힘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어서 아무런 보람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말함.
홍문연회(鴻 門 燕 會)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두고 다툴 때 항우와 유방이 참석했던 연회(겉과 속이 다른 짓을 일음)
홍익인간(弘 益 人 間)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함. 단군의 건국이념이다.
화광동진(和 光 同 塵) 和光은 빛을 부드럽게, 同塵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자기의 智德의 빛을 싸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
화광충천(火 光 衝 天)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맹렬함(불기둥, 구름기둥)
화룡점정 (畵 龍 點 睛 )
[畵:그림 화. 龍:용 룡. 點:점 찍을 점. 睛:눈동자 정.]
용을 그리는데 눈동자도 그려 넣는다는 뜻. 곧 ①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킴. 끝손질을 함. ② 사소한 것으로 전체가 돋보이고 활기를 띠며 살아남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고 하니 벼슬길에서도 입신(立身)한 편이지만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
어느 날, 장승요는 금릉[金陵:남경(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절의 벽에다 검을 구름을 헤치고 이제라도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두 마리의 용을 그렸다.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갑옷의 비늘처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에도 생동감이 넘치는 용을 보고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은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장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는 성화독촉(星火督促)에 견디다 못한 장승요는 한 마리의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로 했다. 그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니 점을 찍었다. 그러자 돌연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장승요:양(梁)나라의 궁정화가. 육조삼대가(六朝三大家)의 한 사람, 뛰어난 솜씨로 사물의 진실을 묘사하고, 서쪽에서 전래한 색깔의 바림법으로 입체감을 표현했으므로, 그가 그린 꽃은 요철화(凹凸花)라 일컬어짐.
화복무문(禍 福 無 門) 악한 일을 하면 그것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 되고, 착한 일을 하면 그것이 복이 들어오는 문이다
화불단행(禍 不 斷 行) 재앙은 끝이 없이 밀려온다. Troubles never come singly.
화사첨족 (畵 蛇 添 足 )
[ 그림 화/ 뱀 사/ 더할 첨/ 발 족 ]
뱀을 그리면서 발을 보태어 넣는다는 데서,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함.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 사족(蛇 足 ).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때, 초(楚)나라가 제(齊)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제나라 왕이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진진에게 초나라의 제상인 소양을 설득시켜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진진이 소양을 찾아가 말하였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술 한 대접을 놓고, 뱀 그림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그 술을 마시기로 하였습니다. 잠시 후, 한사람이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술잔을 집어 들고 말했습니다. ‘이술은 내 것이네, 나는 뱀의 발까지도 그렸다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뱀 그림을 마저 그리고 나서 술잔을 빼앗더니 ‘원래 뱀은 발이 없네. 자네가 그린 그림은 뱀이 아니군’.이라고 말하며 술을 쭉 들이켰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진진이 다시 말하였습니다.
“장군은 초나라 최고의 벼슬에 올라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제나라를 치다가 실수라도 하다면 뱀의 발까지 그리려다 전부를 잃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말없이 진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양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군사를 모두 철수 시켰습니다.
이처럼 “화사첨족”은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 라는 의미로 쓰이며, 줄여서 사족(蛇 足)이라고 합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화서지몽 (華 胥 之 夢 )
[華:빛날 화. 胥:서로 서. 之:갈 지(…의). 夢:꿈 몽].
화서의 꿈이란 뜻으로, 좋은 꿈이나 낮잠을 이르는 말
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黃帝:공손헌원(公孫軒轅)]는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 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경(理想境)을 보았다.
그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하다. 또 물 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고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는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 충만한 이상경인 것이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번뜻 깨닫는 바 있어 중신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짐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자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소. 그런데 짐은 이번에 꿈속에서 비로소 그 도(道)하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
그 후 황제가 '도'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화씨지벽(和 氏 之 璧)
[和:화할 화. 氏:각시 씨. 之:갈 지(…의). 璧:둥근 옥 벽].
천하 명옥(天下名玉)의 이름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형산(荊山)에서 봉황이 돌 위에 깃들이는 걸 보고 그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 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초산 기슭에서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피눈물을 흘렸다. 문왕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 까닭을 물었다.
"세상에 발 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은 사람은 적지 않다. 그대만이 그처럼 슬퍼하며 통곡하는 이유가 뭔가?"
그러자 화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발 뒤꿈치가 잘렸다고 운 건 아닙니다. 천하의 보옥인데도 돌덩이로 단정하고 그것을 바친 정직한 저를 사기꾼으로 몬 것이 슬퍼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和氏之璧'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화씨지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갔던 인상여(藺相如)가 천하의 보옥을 그냥 뺏길뻔 한 것을 기지(機智)로 흠집 하나 없이 온전히 가지고 돌아왔다고 해서 완벽(完璧)이라는 성어가 생겨났다.
진(秦) 26년 초(楚)를 멸망시키고 이 옥을 얻은 시황제(始皇帝)는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도장을 깎게 하고 재상 이사(李斯)에게 여덟 자를 전서(篆書)로 쓰게 해서 처음 옥새로 사용하게 되었다.
受命於天(수명어천) 명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니
旣壽永昌(기수영창) 오래 가고 크게 뻗으리라
※일종의 야광주(夜光珠) 화씨벽이 그토록 유명했던 것은 구슬이 있는 백보 안에는 파리와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고 여름엔 부채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화용월태(花 容 月 態)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容態를 이르는 말
화이부동(和 而 不 同)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
화이부실(華 而 不 實) 사람이나 사물이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알맹이가 없음을 비유한 말
화재적악(禍 在 積 惡) 禍의 근원은 惡을 쌓는 데 있다
화종구생(禍 從 口 生) 화는 입으로부터 생긴다. 말을 조심하라
화중군자(花 中 君 子) 꽃 중의 군자라는 뜻. 곧, 연꽃을 달리 일컫는 말.
화중지병(畵 中 之 餠) : 그림의 떡. 멋은 있으나 내게 득이 될 건 하나도 없다.
화촉(華 燭)
[華:빛날 화, 燭:촛불 촉]
결혼을 상징하는 붉은 색 양초
華(화)는 가지에 피어 있는 예쁜 꽃의 모습으로 본디 뜻은 꽃이다. 그래서 '화려하다' '빛나다'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華麗(화려)·華奢(화사)·繁華(번화)·富貴榮華(부귀영화)·豪華(호화)라는 말이 있다.
燭(촉)은 火와 蜀의 결합인데, 蜀은 해바라기 벌레를 말한다. 變色(변색)에 뛰어나 판단을 흐리게 하므로 물(水)을 흐리게 하는 것이 濁이고, 기어가는 모습이 뿔(角)을 쳐들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觸(뿔로 들어 받을 촉)자가 나왔다. 또 욕심이 많아 혼자 먹는다 하여 짐승을 뜻하는 犬자를 덧붙여 獨(독)자를 만들었는데, 본디 승냥이같이 생긴 일종의 '野生 개'를 뜻한다. 燭은 蜀처럼 갉아먹듯이 하면서 불(火)을 밝힌다는 뜻으로 '초'나 '촛불'을 의미한다. 燭光(촉광)·燭臺(촉대)·燭數(촉수)·雙燭(쌍촉)이 있다.
따라서 華燭이라면 '화려한 촛불'로 붉은 색의 초를 뜻하는데, 중국에서는 六朝時代부터 결혼식과 같은 경사스런 날에 華燭을 사용했다. 붉은 초에 흰 불이 타들어 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華燭이라면 '結婚'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華燭을 밝혔다'는 표현을 접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華燭은 결혼 의식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첫날밤을 지내는 신혼방에서도 사용했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華燭洞房(화촉동방)이다. 곧 洞房(신혼방)에 華燭을 밝혀 놓고 첫날밤을 보낸다는 뜻이다.
화풍난양(和 風 暖 陽) 화창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 곧 좋은 날씨.
화호유구(畵 虎 類 狗)
[畵:그림 화, 虎:범 호, 類:같을 유, 狗:개 구]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다. 곧 서툰 솜씨로 어려운 일을 하려다 도리어 잘못되는 것. 결과가 목적과 어긋남
後漢(후한) 建武(건무) 16年(A.D. 40), 복파 장군 마원(馬援)은 交趾(교지) 정벌에 나섰다. 交趾에는 징측(徵側), 징이(徵貳) 두 자매가 있었는데, 漢의 속국 정책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馬援은 여기서 3년간이나 교전(交戰)하게 된다. 馬援이 交趾 정벌중, 조카들에게 훈계를 하면서 보낸 편지가 있다. 글 가운데 '畵虎類狗'란 말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너희들이 남의 잘못에 관하여 듣는 것은 좋으나 먼저 말을 꺼내서는 안되며, 국정을 가벼이 평해서도 안된다. 용백고(龍伯高)는 인물이 중후하고 신중 겸손하고 질박(質朴)하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소중하게 아끼니 너희도 그를 본받아 주기를 바란다.
또 두계량(杜季良)은 호걸하고 의협심이 많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근심을 함께하고, 남의 즐거움 또한 같이 한다. 그래서 그의 부친이 별세하였을 때는 여러 고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조의(弔意)를 표하였다. 나는 그를 좋아하여 소중히 여기고는 있으나 너희에게 본받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용백고를 본받으면, 그 사람과 같지는 못 될지언정 적어도 묵직한 선비는 될 것이다. 따오기(鵠·혹)를 그리려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집오리(鵝·아)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刻鵠類鵝:각혹유아). 그러나 杜季良을 흉내를 내다가 이루지 못하면 경박(輕薄)한 자가 될 것이다. 마치 범을 그리려다 잘못 그리면 개와 같이 되는 것과 같다(畵虎類狗).
환골탈태 (換 骨 奪 胎)
[換:바꿀 환, 骨;뼈 골, 奪:빼앗을 탈, 胎:아이벨 태]
뼈를 바꾸고 태를 벗겨 면모를 일신함
원래는 고인(故人)이 지은 詩文의 뜻을 취해 어구나 결구(結句)만을 바꾸어 자기 작품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가리켰다. 요즘은 용모나 차림새가 몰라보게 좋아졌을 때 많이 쓰는 표현이 되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를 바꾸고 胎를 벗긴다는 뜻으로 본디 도가(道家)에서 나온 말이다.그들에 의하면 사람과 신선이 외형상에서 다른 점은 뼈와 胎에 있다고한다.따라서 神仙이 되기 위해선 人間이 가지고 있는 속된 뼈(俗骨)와 평범한 태(凡胎)를 일신(一新)하지 않으면 안된다.물론 그것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神仙術을 익히면서 神靈스런 단약(丹藥)을 먹어야 가능하다.또 이상한 술을 마셔도 되었다.왕자교(王子喬)는 본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직간(直諫 )을 서슴지 않아 평민으로 폐위(廢位)되고 말았다.
어느날 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데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배가 두둥실 떠내려오고 있었다.배 위에는 모두 일곱 명의 도사(道士)가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道士가 그를 끌어 올려 배에 태우더니 이상한 술병을 가져 왔다.둘은 실컷 술을 마셨는데 王子喬가 따르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술이 道士가 따르면 끝없이 흘러 나왔다.換骨奪胎되는 술이었던 것이다.물론 후에 그는 神仙이 됐다고 한다.여기서 換骨奪胎는「면모를 일신하다」는 뜻을 가지게 됐다.즉 종전의 낡고 평범한 틀을 모조리 갈아치움으로써 보다 새롭게 재탄생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환과고독(鰥 寡 孤 獨) 홀아비, 홀어미, 어리고 어버이 없는 아이, 늙고 자식 없는 사람.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처지의 사람.
환부작신(換 腐 作 新) 낡은 것을 바꾸어 새 것으로 만듦
한불조지(恨 不 早 知) 일의 기틀을 일찍 알지 못한 것을 뉘우침
환호작약(歡 呼 雀 躍) 기뻐서 소리치며 날뜀
황견유부(黃 絹 幼 婦) 絶妙라는 뜻의 은어
황구소아(黃 口 小 兒) 어린아이라는 뜻. 참새 새끼의 황색 주둥이에서 연유
황당무계(荒 唐 無 稽) 말이나 행동이 허황되어 믿을 수가 없음
회계지치(會 稽 之 恥) 춘추시대 越王 勾踐이 吳王 夫差와 會稽山에서 싸워 포로로 잡혔다가 굴욕적인 강화를 하고 풀려남
회귤고사(懷 橘 故 事) 오의 육적이 원술의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가하였을 때, 모친을 생각하여 귤을 품어 달아났다는 고사
회벽유죄(懷 璧 有 罪)
[懷:품을 회. 璧:구슬옥 벽. 有:있을 유. 罪:재앙 죄]
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죄가 된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재앙이 온다.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지면 자칫 재앙을 부르기 쉬움.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우공(虞公)은 아우 우숙(虞叔)이 가지고 있는 명옥(名玉)을 탐냈다. 우숙은 처음엔 아까워서 건네지 않았으나, 이윽고
'속담에도 필부무죄 회옥기죄(匹夫無罪 懷玉其罪:소인은 그 몸에 죄가 없더라도,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죄다)라고 했다.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화를 부를 따름이다.'
는 생각이 미쳐 형에게 바쳤다. 그러자 우공이 이번에는 검(劍)을 요구했다. 우숙이 생각했다.
'형님은 만족이라는 걸 모른다. 요구하는 대로 다 주다가는 결국 이 목숨마저 요구할 게 틀림없다.'
그는 그 요구를 거절하고, 역으로 우공을 급습했다. 우공은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회사후소(繪 事 後 素)
[繪:그림 회. 事:일 사. 後:뒤 후. 素:흴 소]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말로, 본질이 있는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뜻함.
공자(孔子)의 제자 자하(子夏)가 물었다.
"시경(詩經)에 '방긋 웃는 그 입술 곱기도 하며, 아리따운 눈동자 샛별 같아라. 얼굴이 희어서 더욱 고와라'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하느니라(繪事後素)."
"예(禮)는 뒤에 하라는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일으키는 자는 그대로다. 비로소 너와 함께 시(詩:시경)를 말할 만하게 되었구나."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표현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공자의 말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나 형식적인 예보다는 그 예의 본질이 인한 마음이 중요함으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회자(膾 炙)
[膾:날고기 회, 炙:구운 고기 자]
육회와 불고기처럼 사람들이 즐겨 입에 대는 것. 곧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맹자' 盡心章句(진심장구) 하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춘추시대 인물인 증삼과 그의 아버지 증석은 다 같은 공자의 제자였다. 증석은 고욤나무의 열매인 고욤을 좋아했는데 증석이 죽고 난 뒤 효자인 증삼은 고욤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전국시대의 공손추가 이런 사실을 떠올리고 스승 맹자에게 물어보았다.
"육회와 불고기(회자)와 고욤 중 어느 것이 더 맛이 있습니까?"
"회자가 더 맛이 있지."라는 맹자의 대답에 공손추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증삼은 어찌하여 회자는 먹으면서 고욤은 먹지 않습니까?"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회자는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지만 고욤은 아버지 혼자만 좋아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부르기를 꺼리지만 姓은 부르기를 꺼리지 아니함은 성은 다 함께 쓰는 것이지만 이름은 혼자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膾炙라는 말은 훨씬 뒤에 나온 '선화서보(宣和書譜)'라는 책에도 보인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인 한악은 많은 시가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수백편의 시는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往往膾炙人口)"
이때부터 '人口에 膾炙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게 된 것이다.
회자인구 (膾 炙 人 口) : 널리 사람 사이에 퍼져 입에 오르내리다.
회자정리 (會 者 定 離) : 모인 사람들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 (=去者必反)
회총시위(懷 寵 尸 位) 임금의 총애를 믿고 물러가야 할 때에 물러가지 않고 벼슬자리만 헛되이 차지함을 가리키는 말.
획지위뢰(劃 地 爲 牢) 감옥 대신 땅에다 금을 그어놓고 죄인을 그 안에 가두어도 도망하지 않는다는 뜻(태평한 시대)
횡성수설(橫 說 竪 說) 조리가 없는 함부로 지껄임
효 시(嚆 矢)
[嚆:울 효. 矢:화살 시]
휘파람 소리를 내는 신호용 화살. ① 어떤 일에 대한 '시작'. ② 온갖 사물의 맨 처음으로 됨의 비유
노자(老子)는 유가(儒家)의 인물들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며 빈정거렸다. 그의 독설 가운데 "증삼(曾參)과 사어(史魚)는 하걸(夏桀)이나 도척(盜척)의 효시일 뿐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증삼은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가. 또한 사어는 춘추전국시대 위(衛)나라의 어진 신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성인 군자라 하는데 왜 노자는 하걸과 도척에 비유를 했을까? 설명이 쉽지 않은 독설이다.
전쟁터에서 이쪽과 저쪽의 사정을 알릴 때에 사용되는 화살이 있다. 신호용 화살 '효시(嚆矢)'다. 이 말은 곧 어떤 사물에 대한 시작점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를 테면 폭군의 대명사인 하걸이나 천하에 따를 자 없는 도척이라는 도적놈에게 혀를 놀릴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는 것이다.
하걸은 사람의 간을 빼내어 회를 쳐먹고 가난한 사람들의 다리를 잘라 다리 구조에 흥미를 가졌던 괴물과 같은 왕이다.
그런가 하면 도척은 악당의 대명사였다. 이런 얘기가 있다. 도척의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그것은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겠느냐였다. 그의 말이 맹랑했다.
"실중(室中)에 소장된 물건을 불의로 넘겨 보지 않는 것은 성(聖)이고,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勇)이며, 가장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義)이며, 가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知)며, 골고루 나눠가지는 것이 인(仁)이다."
아무래도 노자는 인의(仁義)라는 것이 도적과 폭군에게 이용되어 분쟁과 폐해만 유발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자의 눈과 맹자의 시선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孟子》의 <진심장구 상>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닭이 울 무렵 일어나 꾸준히 선(善)을 추구하는 자는 순(旬)의 무리다. 닭이 울 무렵부터 일어나 꾸준히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다. 순과 도척의 구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느냐 선을 추구하느냐의 구별에 달려 있다."
효학반(斅學半)
[斅:가르칠 효. 學:배울 학. 半:절반 반]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에게도 학력을 더하는 이익이 된다.
은나라 재상 부열(傅說)이 말했다.
"모든 일을 배우는 데 있어서,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다든가 스스로 분별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현자(賢者)의 가르침을 들어 그 실행을 민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이 뛰어나게 되는데, 뛰어난 것을 언제나 생각하여 왕으로서 실행할 도를 몸에 쌓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람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斅學半). 사람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할 것을 가르쳐도 사람이 듣는 것이 아니니,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기가 수양을 쌓아야 할 것이며,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 자기 몸을 닦을 때 처음에 선한 일을 했어도 후에 태만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므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선행을 힘쓰되 도중에서 해이해져는 안 되며, 끊임없이 배운다는 것에 힘쓰되 도중에서 해이해져서는 안되며, 끊임없이 배운다는 것에 힘써 정진하기만 하면 덕이 닦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진보해 간다. 또한 언제 자기가 진보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나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덕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 많은 사람을 교도할 수 있게 된다."
후목분장(朽 木 糞 牆)
[朽:나무 썩을 후. 木:나무 목. 糞:똥 분. 牆:담장 장]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벽은 칠할 수 없다는 말로, 지기(志氣)가 썩은 사람은 가르칠 수 없음을 뜻함
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대낮부터 침실에 들어가 있었다. 대낮부터 침실에 있는 것은 낮잠을 자고 있던가, 아니면 이성과 함께 있던가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생각되었다.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오也 於予與何誅(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 어여여하주)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썩어 문드러진 흙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는 것이니
재여를 나무란들 무엇하랴!
정신이 나태해져 있다고 간주된 재여는 스스으로부터 가망이 없다고 버림받은 것이다.
또 《한비자》<현학편(顯學篇)>에 이런 말이 있다.
"담태자우(澹台子羽)는 군자의 용모라 중니(仲尼)가 보고 이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있어 보니 행동이 그 용모와 같지 않았다. 재여의 글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중니가 보고 이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있어보니 지혜가 그 변설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용모로써 사람을 취함은 자우(子羽)에게서 그르쳤고, 언변으로써 사람을 취함은 재여에게서 그르쳤다고 했다."
후생가외 (後 生 可 畏)
[後: 뒤 후. 生:날 생. 可:가히 가. 畏:두려울 외]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 곧 젊은 후배들은 선인의 가르침을 배워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히 두렵다는 말. 젊은이가 지닌 가능성을 존중하는 말
춘추 시대의 대철학자 사상가인 성인(聖人) 공자는 말했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워할 만하다[後生可畏].' 장래에 그들이 지금의 우리를 따르지 못하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焉知來者之不知今也]? 그러나 40세, 50세가 되어도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바 없느니라[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이 말은 공자가 젊은이를 격려하고, 노력의 소중함, 그 장래성을 강조한 말이다.
[주] '후생가외'는 공자가 제자 중 학문과 덕행이 가장 뛰어난 안회[顔回:자는 자연(子淵), B.C. 521∼490]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함.
후시지탄( 後 時 之 歎 )
(뒤 후/때 시/갈 지/탄식할 탄)
때늦은 시기를 원통해하며 한탄한다는 뜻으로, 후시지탄( 後 時 之 歎 )이라고도 한다. 시기가 지나 기회를 잃고 탄식(歎 息 )하는 것을 말한다.
후안무치(厚 顔 無 恥)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운 줄을 모름.
후회막급(後 悔 莫 及)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다.
흉유성죽(胸 有 成 竹)
[胸:가슴 흉. 有:있을 유. 成:이룰 성. 竹:대 죽]
대를 그리고자 할 때, 마음속엔 이미 대가 그려져 있다는 말로, 매사에 착수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복안이 서 있음의 비유
문동(文同, 文與可)은 북송 시대의 사람이다. 인품이 고결하고 학자로서 유명했으며, 동시에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고, 전(篆)·예(隸)·행(行)·초(草)의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그의 집 앞뒤에는 대가 우거져 있어서 꽤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는데 개중에는 길이가 고르지 않은 대도 적잖게 있었다. 그것은 문동이 직접 심어서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문동은 틈만 있으면 죽림(竹林)에 들어가서 대가 자라는 모습, 가지 치는 상태, 잎이 우거지는 법, 그리고 죽순이 나는 법과 자라는 모습 등을 정성들여 꼼꼼이 관찰해 대에 대한 모든 것을 터득했다. 그리고 흥에 겨우면, 집으로 되돌아가서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렸다. 아무튼 충분히 연구 관찰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그리는 대 그림은 박진감이 있다고 평판이 높았다.
그 자신은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의 대를 그리고 있었을 뿐, 아무런 특별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세간은 절찬하며 귀중품 취급을 하고 있었다. 대를 그리면 천하 일품이라는 이름이 높아짐에 따라 사방팔방에서,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화포용의 무늬 없는 흰 명주를 손에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져 문적약시(門前若市)를 이루었다
문학자로 시인인 조보지(晁補之)는 문동의 친구였다. 그가 찾아오면 문동은 반가이 맞아들여 죽림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었다. 조보지는 문동이 즉석에서 대를 그리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문동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은 청년이 조보지에게 문동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與可畵竹時 胸中有成竹(여가화죽시 흉중휴성죽)
여가가 대를 그리고자 할 때, 흉중에는 이미 성죽이 있다.
흉중생진(胸 中 生 塵) 가슴에 먼지가 생긴다. 사람을 잊지 않고 생각은 오래 하면서 만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이다.
흑우생백독(黑 牛 生 白 犢)
[黑:검을 흑. 牛:소 우. 生:날 생. 白:흰 백. 犢:송아지 독]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는 말로, 재앙이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이 재앙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새옹지마'와 유사함.
옛날 춘추시대 宋나라에 한 착한 노인이 있었다. 하루는 그 집의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 이상하게 여겨 점쟁이에게 점을 치게 하니 吉祥(길상)의 징조라며 희생물로 바치라고 했다. 착한 노인은 그대로 했다. 하지만 1년쯤 지나 노인을 까닭도 없이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흰 송아지를 낳는 것이 아닌가. 노인은 다시 아들을 점쟁이에게 보내 점을 치게 했다.
"믿을 수 없는 점쟁이인데 무엇하러 가나요?"
아들을 잘 타일러 보냈더니 점괘는 전과 똑같이 나왔다. 물론 노인은 이번에도 그대로 했다. 그러나 다시 1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아들마저 눈이 멀게 되었다.
얼마가 지난 옆의 楚(초)나라가 쳐들어와 성을 포위했다. 양식이 떨어진 성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로 잡아먹는 참극이 벌어졌다. 장정은 전사하고 노인, 병자들만 남아 지키다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대로한 楚王은 이들을 모두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눈이 멀어 미처 성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노인 부자는 이 禍를 면할 수 있었으며 다시 얼마가 지나자 눈이 멀쩡하게 밝아졌다고 한다.
흥망성쇠(興 亡 盛 衰) 흥하고 망함과 번성함과 쇠약함.
흥미진진(興 味 津 津) 흥미가 넘칠 만큼 많다.
흥진비래 (興 盡 悲 來 )
[ 일어날 흥/ 다 될 진/ 슬플 비/ 올 래 ] :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온다는 데서, 순환하는 세상의 이치를 가리키는 말.
희노애락(喜 怒 哀 樂)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곧 사람의 온갖 감정
희불승애(喜 不 勝 哀) 기쁨은 슬픔을 이길 수 없다
희색만면 (喜 色 滿 面 )
[ 기쁠 희/ 빛 색/ 찰 만/ 낯 면 ] :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함.
희생 (犧 牲)
[犧:희생 희, 牲:희생 생]
종묘에 제사 지낼 때 바쳤던 소. 어떤 사물 ·사람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음
犧와 牲은 약간 다르다. 犧는 소(牛)의 기운(羲)이라는 뜻이다. 祭祀(제사)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神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일지라도 얼룩소는 禁物이었다. 곧 犧는 털에 雜色(잡색)이 섞이지 않은 소를 뜻한다.
한편 牲은 소(牛) 중에서도 살아있는(生) 소를 뜻한다. 그것은 소를 잡아 고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를 바쳤다는 뜻이다.
곧 犧牲은 天地神明(천지신명)이나 宗廟(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제물로 올렸던 소를 의미한다. 다만 암컷은 바치지 않고 튼튼하고 우람한 수컷만을 골라 바쳤다. 그런데 犧牲에는 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디 '三牲'이라 하여 양이나 돼지도 제물로 쓰곤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축 대신 사람이 犧牲이 된 적이 있었다.
夏(하)나라의 暴君 桀王(걸왕)을 정벌한 湯王(탕왕)은 殷(은)나라를 세웠다. 天下를 잘 다스렸지만 때아닌 旱魃(한발)로 백성의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무려 5년간 비가 오지 않아 草根木皮(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할 판이었다. 백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犧牲이 되어 기우제를 올렸다. 그는 머리를 깍고 사지를 묶은 다음 犧牲이 되어 제단위에 섰다. 그의 정성에 감격한 天神(천신)이 큰 비를 내렸음은 물론이다.
이 때부터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것도 犧牲이라고 하게 되었다.
희희낙락(喜 喜 樂 樂) 매우 기쁘고 즐거워함